박병곤의 해운대 역사와 인물-한국 스포츠 역사 장식한 요트의 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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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통협력과 작성일 2020.07.09

"부산을 해양레저 메카로…"
부산 요트협회 류재동 고문
상설 요트학교 운영 등
국내 요트 대중화에 앞장

국제대회서 선전 중인
구청 실업팀의 숨은 버팀목

부산에선 요트가 스포츠이자 문화다. 해운대 역사의 한 페이지를 굵은 획으로 장식하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렸을 때 요트만은 서울이 아닌 해운대 요트경기장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88올림픽 때 요트에서 한 걸음 떨어져 포항에서 사업에 몰두해 있었으나 그 후 대한 요트협회 기술위원장, 부산 요트협회 부회장과 부산 요트학교 교장, 부산시 체육회 이사를 지내고 지금은 부산 요트협회 고문을 맡고 있는 류재동(柳在東) 씨를 만나 부산 요트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들어보았다.
1975년 한양대 신입생 시절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는데 도움이 된다는 지도교수의 적극적 권유로 학내 동아리 창립 멤버가 되었다. 전국대회에 출전하여 몇 차례 수상하였으나 국가대표선수가 된 적은 없었다고 한다. 맹자(孟子)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열혈청년이라면 호연지기를 길러야지, 메달 숫자만 쫓아다니는 물신주의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지.
요트 종목 올림픽 개최는 무(無)에서 유(有)를 만든다고 할 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1986년 수영만 요트경기장이 완공된 후 수영강의 수질오염이 심각하여 요트는 일본에서 개최하려고 했을 정도였다. 긴급 개선조치가 이루어진 이후 겨우 성사되었는데, 류 고문은 포항에서 가슴만 졸이고 있었다.
인구 대비 요트와 보트 보유 세계 1위라는 뉴질랜드를 다녀온 이후 요트에 대한 필자의 편견이 조금은 달라졌다. 최근 대회인 2017년 요트의 월드컵이라고 할 수 있는 아메리카스 컵에서 뉴질랜드 팀이 우승을 차지했다. 우리 국민이 축구, 야구 경기에 환호하듯이 국민적 스포츠였기 때문이다. 그런 요트를 10여 년 전 몇몇 문인과 함께 해운대 앞바다를 류 고문의 안내로 잠시 항해하는 호사(?)도 누렸다.
지금 부산 요트의 위상은 어떨까 궁금해졌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1988년 아시아에서 두 번째 올림픽 요트 경기,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2005년 세계 청소년 요트대회, 2013년 여자 매치레이스 세계 요트대회 등 굵직한 대회가 열려 요트인들은 부산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요트는 바람만 있으면 어느 바다라도 갈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무기항 무동력 무원조 세계일주를 다녀온 김승진 선장 같은 요트인들이 있지만 서양에서는 아예 집으로 삼아 10년 이상 항해하는 사람들도 많다. 넓은 세상을 향해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얻고 험한 바다를 헤쳐 나갈 지혜를 갖게 된다. 용기와 지혜가 있으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몰고 온 재앙도 너끈하게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요트는 무동력인 딩기 요트와 동력이며 선실을 갖춘 크루즈 요트로 구분된다. 전직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했던 요트는 올림픽 종목인 무동력 딩기 요트. 고급 스포츠와는 거리가 멀었다. 동호인 활동을 통해 대중 스포츠로 인식이 바뀌는 중이다.
부산은 국내의 다른 도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여건이 좋아졌다. 다만 우리보다 20년 후 올림픽을 개최한 중국의 칭따오(靑島)가 부산을 추월할 정도로 집중투자하고 있다. 환경이 좋은 부산이 기회를 놓쳐 안타깝다. 부산 요트협회는 올림픽 이후 상설 요트학교를 운영 중이다. 초등1년부터 중3까지 대상인 주니어 요트클럽에서도 저렴하게 배워 즐길 수 있다. 도쿄올림픽 출전권 가운데 세 종목(국제레이저, 윈드서핑, 470)에서 출전권을 확보했다. 아시아권 국가로는 매우 어려운 일을 해냈다. 모두 부산 출신이며 해운대구청, 부산시청 소속 선수들인데 두 종목이 10위권 안으로 전망된다. 하지민 선수(국제레이저급)는 아시아에서 12년 동안 상대가 없는, 아시안게임 3연패를 이룬 선수다. 조원우 선수(윈드서핑)는 세계청소년대회 2연패를 이루어 세계 요트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모두 해운대구청 소속으로 영어에 능통하며 선진기술을 익혀 기량이 아주 뛰어나다.
류 고문은 요트장 재개발을 하면서 해상방파제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안벽에 계류장을 설치하면 수도권 동호인이 KTX에서 내려 부산역 앞에서 요트를 타고 요트경기장까지 올 수 있다. 수영강이나 동천을 활용해 관광선과 요트가 강과 바다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으면 타 지역과 차별화된 관광산업으로 발전하리라 본다.
류 고문은 스스로 조그마하다는 기업을 경영하면서 경남 함양의 시골집과 부산 아파트를 오가고 있다. 자연에서 낙(樂)을 찾는 류 고문에게서 부산 요트의 희망을 찾아본다.

필자의 갑작스런 타계로 박병곤의 해운대 역사와 인물은 이달로 끝을 맺습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신 독자님께 감사드리며 연재해 주신 박병곤 님, 두고두고 기억하겠습니다. <끝>

박병곤의 해운대 역사와 인물-한국 스포츠 역사 장식한 요트의 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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