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의 나무> 동백섬 동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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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협력과 작성일 2023.04.03

"향기 대신 색으로 말하는 것 같아요"

동백섬은 애달프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목메어 불러봐도 멀어진 사람은 대답이 없다. 봐도 봐도 수평선. 수평선도 멀고 마음의 수평선 넘어간 사람도 멀다. 꽃 피는 봄이건만 수평선 너머 멀어진 사람은 대답이 없다.
꽃도 그걸 안다. 그걸 알아서 수평선 쪽은 아예 보려고도 않는다. 가능하면 수평선을 등지려고 한다. 그러나 그게 쉽나. 바닷바람 핑계 대고 수평선을 슬쩍슬쩍 훔쳐보며 바다에서 뜨고 지는 해와 달 핑계 대고 슬금슬금 훔쳐본다.
꽃은 동백꽃. 필 때도 붉고 질 때도 붉다. 뜰 때도 붉고 질 때도 붉은 해와 달 같다. 그래서 동백꽃은 해를 닮고 달을 닮았다. 붉은 것도 닮았고 둥근 것도 닮았다. 질 때는 매정하게 지는 것 역시 닮았다.
동백꽃은 매정하다. 질 때는 꽃잎 한 잎 한 잎 지는 게 아니라 꽃 하나가 통째로 진다. 속에 무엇을 품었는지 매정하기 그지없다. 매정한 척하는지도 모르겠다. 수평선 슬쩍슬쩍 훔쳐보고 슬금슬금 훔쳐보는 그 마음이 어찌 매정하기만 할까.
수평선도 잘한 것은 없다. 야단 좀 들어야 한다. 매정한 거로 따지면 수평선은 동백꽃보다 몇 곱절 매정하다. 자기를 훔쳐보다 지쳐서 한 잎 한 잎 아니라 꽃 하나가 통째로 지는데도 훤한 대낮은 물론이고 짙은 밤 어느 때고 가까이 오려고 않는다, 단 한 번도. 한 일 자 굳게 다문 입술 같은 엄한 표정으로 바다 가장 먼 자리, 늘 그 자리다. 야단 좀 들어야 한다.
이 모든 걸 봐온 동백섬. 동백섬은 안다. 동백꽃은 보기에는 매정해도 심성이 여리다는 걸, 수평선은 보기에는 초연해도 심성이 칼이란 걸. 그걸 알아서 수평선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수평선이 아무리 다가오려 해도 튕겨낸다. 수평선은 꽃을 애달프게 하고 섬은 수평선을 애달프게 한다.
동백섬과 동백꽃. 섬이 더 유명할까, 꽃이 더 유명할까. 오십보백보다. 섬은 꽃을 만나서 더 알려졌고 꽃은 섬을 만나서 더 알려졌다. 동백섬이 있기에 동백꽃이 있고 동백꽃이 있기에 동백섬이 있다. 섬도 그걸 알고 꽃도 그걸 안다. 그걸 알아서 섬은 꽃에 자리를 내어주고 그걸 알아서 꽃은 섬에 향기를 내어준다.

"향기 대신 색으로 말하는 것 같아요. 톡 쏘는 붉은색에 끌려서 눈길이 가고 발길이 가게 되네요."

섬에 향기를 내어주는 꽃. 꽃이 내어준 향기 한가득 품고서 풍선처럼 부푼 섬. 같은 동백이라도 꽃은 다 다르다. 향기가 절정에 이른 꽃, 절정을 지나서 평온에 든 꽃, 봉오리 안에서 향기가 벌름벌름하는 꽃.
동백 향기는 얼마나 진할까 진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무향이다. 동백은 천성적으로 향기를 내지 않는다. 동백의 숙명이다. 동백섬 일주도로를 자주 산책한다는 해운대 주민은 그걸 안다. 그걸 알아서 향기 대신 동백의 색깔을 어루만진다.
동백 색깔은 깊다. 왜 깊은가. 향기가 원래 그렇다. 코로 맡는 향기도 깊지만 눈으로 보는 향기는 곱절이나 깊다. 색깔은 눈으로 보는 향기. 눈으로 보는 향기는 마음으로 보는 향기다. 몸집은 작아도 마음은 너른 동박새가 꽃향기 깊숙이 파고들어 꽃가루를 실어 나른다. 동백꽃과 동박새. 이름만큼이나 꽃도 새도 닮았다.
섬과 꽃과 새. 섬도 작고 꽃도 작고 새도 작지만 그 마음마저 작을까. 그것들에 무슨 마음이 있느냐며 의문을 품는 그대. 동백섬에 가서 새소리 들리는 동백꽃 아래 서 보시라. 수평선 저 너머 멀어진 사람이 생각지도 않게 생각나면 그게 섬과 꽃과 새의 마음이려니. 그것들의 마음이 그대에게 스며든 것이려니. dgs1116@hanmail.net
동길산 시인

<해운대의 나무> 동백섬 동백꽃

<해운대의 나무> 동백섬 동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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