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이 사람>정형동 장수(長壽)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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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협력과 작성일 2023.05.01

100세에도 손바닥만 한 책 읽죠
매일 독서하며 생각 새롭게 하는 것이 장수 비결

정형동 장수(長壽) 어르신

<예기 곡례(禮記/曲禮)>는 "인간 나이 100세를 기(期)라고 적고 있다(人生百年曰期,  .). 기(期)는 100세, 일기일회(一期一會)처럼 일생(一生)이란 뜻이 있다. 상에 제기를 올려놓고(其) 달(月)을 보며 기원하는 모습을 본떴단다.
이(  )는 기르고 가꾼다.는 뜻이다. 주역 27번째 괘 산뢰이(山雷  )는 사람의 위턱과 아래턱, 윗니와 아랫니를 형상화했다. 입과 치아는 음식을 먹고 말을 하는 기관이며, 먹고 말하는 것은 사람을 성장(養/育)시키는 기본요소이다. 옛사람들은 인생 100세를 하늘이 내려주는 나이로 여겼다. 그래서 상수(上壽), 기이지수(期 之壽)라고 하며 최고의 나이로 쳤다.

하늘이 내려준 나이 상수(上壽)
좌3동에 살고 계신 정형동 어르신은 지난달에 100세 생신을 맞으셨다. 여전히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한다는 어르신은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이면 좌3동 행정복지센터 2층으로 행차하신다. 서예교실이 열리기 때문이다. 꼿꼿이 서서 1시간 정도는 가볍게 붓글씨를 쓰시는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100년을 살아보니 어떠신지 여쭤봤다.
"그렇게 물어보면 내가 뭐라고 답하겠어요? 허허허 감개무량이지."
감개무량(感慨無量). 국어사전에는 "마음속에서 느끼는 감동이나 느낌이 끝이 없다."라고 해놓았다.
어르신은 여전히 말씀이 또렷하고 힘 있으시다. "저게 내가 쓴 건데 나중엔 저렇게 돼요." 벽에 걸려 있는 글씨를 가리키며 말씀을 이어가신다. "저걸 벗어나서 뭐 좋은 거 하겠다고 욕심내면 못살아요. 머리는 가버렸지, 힘은 없지. 자기 갈등에 못 이겨서 가는 거야."
人間一生如草露 功名勳業如浮雲 열네 자가 벽에 걸려 있었다. 풀잎 위에 맺힌 이슬 같은 인생, 빛나는 업적을 이루고 이름을 떨쳐도 뜬구름 같이 없어진다. 세상과 삶에 겸손하란 뜻일까?

평생 공부가 건강 비결, 포켓북 즐겨 읽어
100세 시대를 사는 요즘, 병 없이 건강하게 100세 맞기가 쉽지 않다. 정형동 어르신이 대뜸 안주머니에서 손바닥만한 포켓북을 한 권 꺼내서 보여주신다. 일본에선 노년정신의학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와다 히데키 교수의 老人入門. 부산에선 구하기 힘들어 서울까지 직접 가셔서 사오셨단다.
"필요한 책 있으면 한 번씩 서울 대형서점에 가서 사와요. 집에서 매일 읽는 일본 책이 댓권 정도 돼요." <2021년 국민 독서실태>를 보면 우리나라 성인은 1년에 4~5권의 책을 읽는다고 한다.
"책을 읽어야 노인이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겠다는 대책을 세울 수 있잖아요. 쓸모없는 늙은이로 살아선 안 되잖아요. 세상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나 같은 백세동이도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스스로 노년을 개척해 나가야 해요. 책을 읽으면 참 자미(재미)가 있어요."
매일 같이 장산공원을 산책하신다는 정형동 어르신의 건강 비결은 책읽기와 붓글씨. 20년 넘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기도 쓰신단다. "자꾸 생각을 새롭게 바꿔보는 거예요. 지나간 것에 매달리지 않아요. 신문이랑 국내외 잡지도 보고. 그렇게 안 하면 머리가 비어요. 나이가 들수록 공부를 해야 해요. 그래야 젊은 사람과도 대화가 될 거잖아요."

인생 100년 제일 기뻤던 때 해방된 날
인생 100년 사시면서 제일 기뻤던 날은 언제였을까? 어르신은 망설임 없이 우리나라가 해방된 날이라고 하셨다.
"진짜 그거는, 해방된 그 시간은, 온 국민이 다 똑같았어요. 하나같이 좋아했어. 내 것, 네 것이 없었어요. 우리나라 생긴 이후에 그렇게 기뻤던 건 처음일 거야, 아마. 어느 집에 가도 밥 주고, 술 주고, 막 떠들고 놀고, 그때가 제일 기뻤지. 해방된 날." 그때를 생각하시며 감정이 울컥하시는 듯했다.
정형동 어르신은 소싯적에 공직생활을 잠시 하셨다. 6.25 전쟁통엔 농림부에서 근무하셨단다. 공직을 그만두곤 외서(外書) 수입업을 하셨다.
"그땐 문교부 허가를 받아야 책을 들여올 수 있었어요. 교수들이 교재와 연구에 필요한 책을 적어주면 수입을 했는데 몇 백 권 되는 책을 일일이 읽어볼 순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외국 도매상이 공짜로 보내오는 책 사이에 좌익서적이 간혹 딸려 오는 경우도 있었죠. 한번은 내가 수입한 책 가운데 좌익서적이 발견된 거라. 난리가 났죠. 알고 지내던 신문사 주필이 빨리 피하라고 연락을 줘서 잠잠해질 때까지 숨어 지낸 적이 있어요."

책을 사랑하게 된 이유
당시엔 전쟁 이후라 경찰 사찰계가 좌익 서적을 찾아내려고 혈안이 돼 있던 시절. 잘못 걸리면 재기불능 상태로 만들어 버렸단다. "무슨 고프, 무슨 린, 스키라고 적혀 있는 책은 무조건 좌익서적이라고 하던 시절이었어요. 음악 책에 차이코프스키가 적혀 있단 말이지. 아니나 다를까 책을 죄다 뺏기고, 돈 좀 모아놓은 것도 다 날려버리고 엉망이 됐지. 몇 년 간 아무 것도 못하고 지냈어요." 이 일을 계기로 정형동 어르신은 책의 가치와 중요성을 새롭게 느끼셨단다. 아직도 책을 늘 가까이 하는 이유인 듯했다.

부산에서 100세 장수 어르신 제일 많은 해운대
우리 해운대엔 100세 이상 장수 어르신이 쉰여섯 분이나 계신다. 부산시에서 장수 어르신이 제일 많다. 광복과 전쟁 등 근·현대사와 함께 하며 세상의 희로애락을 다 겪고 난 뒤에 맞이하는 인생 100세는 아마도 사람답게 살아가야 할 세상의 온갖 지혜를 알고 있는 때가 아닐까?
"글씨를 멋지게 써보겠다, 명필이 되겠단 생각은 없어요. 내 기분대로 써보는 거예요. 옳은 글인가, 사람을 감동시키는 글인가에 더 집중을 하죠. 이태백이 명필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그의 글은 수백 년 세월이 흘러도 감동을 주잖아요. 안 그래요? 허허허"
글 원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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