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곤의 해운대 이야기-옛 송정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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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광문화과 작성일 2015.09.03

추억 되살리며 문화를 누리는 쉼터


일제강점기 선조들의 애환 서린 역사
시민갤러리 예술공연장으로 탈바꿈


역(驛)은 설렘을 부른다. 떠나는 사람이나 도착하는 사람 마찬가지다. 낯선 풍경과 새로운 얼굴을 찾으려거나, 정든 거리와 그리운 사람들에게 돌아가려 해도, 가슴이 마구 뜀박질한다. 역은 만나고 헤어지는 곳이다. 만날 때 헤어질 줄 알았고, 헤어질 때 다시 만날 줄 믿었기에 희비(喜悲)를 초월한다.
송정역, 고향집처럼 소박하고 아담한 역사 덕분에 오랫동안 기억되는 곳. 1934년 12월 간이역으로 출발하여 1941년 6월 보통 역으로 승격되었다. 일제강점기였던 1935년 12월 군수물자와 동해안의 해산물을 수송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통된 동해남부선의 꼬마 역이었다.
1976년부터 화물업무가 중단되었고, 2013년 12월 동해남부선 복선화 공사가 완료돼 철도 노선이 바뀜에 따라 역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하지만 지난 2006년 송정 역사 1동과 노천대합실 1동, 철로 및 승강장 300m가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302호로 지정됨에 따라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역사 옆 창고는 철제 기둥이 자연물의 형태처럼 길게 굽어진 아르누보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오래된 것은 무조건 철거와 재개발의 대상이었던 그동안의 관행에 비해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송정역에서 더이상 기적소리는 들리지 않으나 추억은 켜켜이 쌓여있다.
일제강점기나 6.25 때는 이별의 정거장이 아니었을까. 동해남부 산과 들, 바다에서 수확한 농수산물을 동래장이나 부전시장에 내다팔던 우리 어머니들에게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을 것이다. 낡은 교복이나마 차려입고 무거운 책가방 들고 통학하던 중고생들에게는 희망의 관문이었으리라. 동해바다를 만나러 온 젊은이나 동아리 수련회에 참석했던 대학 새내기들에겐 젊은 날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박인환 시인이 그랬던가, 세월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이라고. 송정역은 이제 기성세대에겐 추억을 확대 재생산해주고, 신세대에겐 문화 쉼터라는 새로운 추억을 제공한다. 올해 4월부터 부산창조재단이 위탁관리를 맡아 역사는 시민갤러리로, 철로 주변은 휴식 공간과 공연장으로 탈바꿈했다.
폭염이 한풀 고개 숙인 8월 하순, 송정 앞바다를 가득 메운 서퍼들을 뒤로 하고 송정역사 정문으로 들어섰다. 바로 시민갤러리다. 눈길을 사로잡다라는 이름으로 시각장애인 사진작품 10점이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 옆면은 시민공모전 입상 작품과 부산창조재단 소개 동영상이 보인다. 옆 전시실로 들어서니 향토 작가 김경남 씨의 개인전 평면에 선을 드리우다가 진행 중이다. 갤러리 개관 이후 몇 차례 개인전과 시민공모전을 개최했다고 하니, 문화 향유의 공간이 확충된 셈이다.
역사 후문을 나서면 철로와 플랫폼이 나온다. 나무판자로 만든 날개 모양의 조형물과 하트 모양의 조형물 앞에 벤치가 놓여있다.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생이라고 소개한 젊은이 10여 명이 하트 조형물을 둘러싸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경기도 부천에서 왔다는 여대생 2명도 열심히 셔터를 눌러댄다. 송정역이 사진 찍기 좋은 곳이라고 인터넷에 소문이 났다고 전한다.
동아대 안재철 교수가 기획하고 디자인한 모바일 파빌리온이 철로 한 가운데 설치되어 잇다. 녹색 철망 한가운데 유리로 덮인 침목과 철길이 동해남부선의 향수를 간직하고 있다. 철망에는 100일 후의 나에게, 1년 후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넣는 우체통이 사연들을 기다린다.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기부 벤치도 이색적이다. 플랫폼과 레일 위에 나무로 만든 벤치는 하나에 10만 원씩 기부를 받아 제작되고 기부자의 이름표가 설치되어 있다. 54명이 참여해 제작된 벤치 57개가 나그네를 기다린다. 토요문화예술 공연 때는 이 벤치가 관람석이 된다.  다만 이름표가 틀에 박힌 듯 정형화돼 아쉽다. 작고하신 부모님을 그리워하거나, 결혼기념일을 맞아 사랑의 언약을 새기는 등 다양하게 만들면 어떨까 싶다. 철길 한가운데 예비 부부 한 커플의 웨딩 촬영이 한창이다. 창조재단은 웨딩 사진이 없는 부부들의 사연을 받아 1개월에 한 쌍 촬영을 지원해준다고 한다.
플랫폼에 주저앉아 대니 보이를 하모니카로 연주하는 장년의 신사를 발견했다.
크기가 다른 하모니카를 3개나 지녔다. 청사포에 화실을 차린 서양화가 박흥식 화백이다. 송정서 구덕포까지 산책하면서 송정역에서 하모니카로 몇 곡 연주한다고 한다. 박 화백은 열차 신호등 등 옛 철도시설물들이 좀 더 보전되었더라면 좋았을텐데라고 여운을 남긴다.  
송정은 이미 서핑의 메카, 동해남부선 철로 부지가 어떤 형태로든 보존되고 재활용된다면, 송정 옛 역사는 영원하리니.
*언론인


박병곤의 해운대 이야기-옛 송정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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