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우면 山月이요, 앉으면 海月이라…<사포> 품은 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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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광문화과 작성일 2015.04.09

해운대구는 해운대를 이야기가 흐르는 문화도시로 만들고자 국제신문,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와 함께 지역 내 숨은 이야기를 발굴하고 있다. 아래 내용은 국제신문에 게재된 글로, 7회에 걸쳐 해운대 불멸의 신화를 연재한다.


<2> 해운 팔경


뙤약볕이 내리쬐던 날, 팬티만 걸쳐 입은 벌거숭이 소년들은 집에서 달려 나와 5분도 걸리지 않아 백사장에 닿았다. 수십 만 피서객들이 교통지옥을 겪으며 해운대를 찾았을 때, 우리는 이 천혜의 해변을 동네 놀이터로 삼았다. 동백섬이나 장산폭포는 초등학교 시절 소풍 다녔던 곳. 최치원 선생이며 해운대 팔경을 알게 된 건 까까머리 신세를 벗어날 무렵이었다.
해운대는 흔히 사포지향(四抱之鄕)이라고 불린다. 아름다운 산과 바다, 하천을 품은 고장을 삼포지향이라고 하는데, 거기다 온천을 더했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여덟 가지 수려한 풍광을 꼽으니 해운대 팔경이 되었고, 모두 어우러져 대한 팔경의 하나로 이름 떨쳤다.
빼어난 경치에 이름붙인 팔경은 중국의 소상 팔경이 그 원조다. 동정호(洞庭湖)를 거쳐 장강(長江)으로 흘러드는 소수(瀟水)와 상수(湘水) 주변의 절경 여덟 가지다. 아지랑이 낀 산골 마을, 어촌의 저녁 햇살, 동정호의 가을 달, 이런 식이다. 11세기 북송 때 산수화 소상팔경도가 나온 이후, 수많은 문인과 화가들에 의해 높은 정신세계를 담은 이상적 자연경관으로 묘사되었다. 비록 중국식 풍류의 벤치마킹이었다고 할지라도, 이름과 실경이 일치된다면 어찌 나무랄 수 있으랴.
최치원 선생이 남긴 해운대 석각(石刻)이 위치한 동백섬 동남단에서 바라본 절경을 해운대상(海雲臺上)이라고 한다. 자연경관을 감상하는 명소를 일컫는 말로 정대누각(亭臺樓閣)이 있다. 정은 지붕이 있고 사방이 뚫린 건축물, 곧 정자다. 대는 흙이나 돌을 쌓아 높고 평평한 곳, 누는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다층 건물, 다락집. 각은 지면에서 띄워 올려 경치를 감상하거나 물건을 보관하는 곳을 일컫는다.
조선 성종 때 펴낸 동국여지승람에는 해운대는 산이 바다에 든 것이 누에머리 같으며, 동백꽃이 땅에 쌓여 말발굽에 밟히는 것이 3~4치나 된다고 기록되었다. 또 1763년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왔던 조엄은 해사일기에서 대 앞에 기암이 층층으로 층이 지고 곡곡으로 굽어졌는데 해천만리가 높이 열린 것 같아 흉금을 활짝 열고 만상을 접할 수 있더라고 전하였다. 이 두 기록을 미루어 볼 때 해운대상의 해운대는 동백섬을 뜻하는 게 분명하다. 동으로는 와우산, 달맞이길, 미포, 백사장, 서로는 이기대, 광안대교가 한 눈에 들어온다. 남으로는 오륙도와 탁 트인 수평선을 보노라면 가슴 깊은 곳까지 시원해진다.
12세 때 당나라로 유학 갔던 최치원 선생은 18세 때 과거에 급제했고 23세 때 토황소격문(討黃巢激文)을 지어 명성을 떨쳤다. 28세 때 귀국했으나 부패한 귀족 정치에 밀려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43세 때 가야산 입산 길에 해운대를 찾게 되었다. 선생은 해운대에서 어떤 감회를 가졌을까. 봄날 새벽에(春曉偶書)라는 시 가운데 어지러운 세상에 경치는 주인 없는데/부질없는 인생, 부귀와 공명은 더욱 아득하네(亂世風光無主者 浮生名利轉悠哉)라는 구절이 바로 선생의 심정이 아니었을까. 선생의 자(字)는 고운(孤雲), 해운(海雲). 구름처럼 자유롭게 세상을 유랑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2013년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된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치원 선생의 한시 범해(泛海)를 인용해 화제가 되었다. 돛 걸고 배를 푸른 바다에 띄우니/긴 바람 만리나 멀리 불어온다/…봉래산이 지척에 보이고/나는 또 신선 노인을 찾아간다. 시 주석은 바다를 건너는 적극적 자세로 한중 우호를 다져 가자는 취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2014년 서울대 강연에서 또 최치원 선생을 언급했고, 올해는 서울에서 열린 중국 방문의 해 행사에 동쪽 나라의 화개동은 호리병 속의 별천지(東國花開洞/壺中別有天)라는 최치원 선생의 시구를 인용한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쯤 되면 시 주석은 고운 선생의 열렬한 팬인 셈이고, 선생은 한중우호의 상징적 인물로 떠오른 것이다.
동백섬의 또 다른 명소는 APEC 누리마루하우스다. 2005년 21개국 정상들이 제2차 정상회의를 개최했던 곳이다. 한국 전통건축인 정자를 현대적으로 표현했으며 지붕의 형태는 동백섬의 능선을 형상화하였다. 해운대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명소다.
해운대 주변의 포구는 모두 7곳이었다. 재송포, 승당포, 운촌, 미포, 청사포, 구덕포, 그리고 가을포(加乙浦)라고 불리던 송정. 재송과 승당은 포구의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고 운촌은 옛 자연마을의 모습이 크게 바뀌었다. 어업이 이 지역 주민들의 주요 생업이었던 시절, 만선(滿船)을 이룬 고깃배들이 흰 돛을 펼치며 오륙도를 뒤로 하고 귀항하던 모습이 오륙귀범(五六歸帆)이다. 돛단배 위로 갈매기가 맴돌고, 뱃전에 부서지는 파도는 하얀 포말을 내뿜으며, 황금빛 저녁노을이 바다를 물들이니, 만선의 기쁨이 더욱 커지는 황홀한 순간이었으리라.
춘원 이광수의 시조 해운대에서도 오륙귀범이 등장한다. 누우면 산월(山月)이요 앉으면 해월(海月)이라/가만히 눈 감으면 흉중(胸中)에도 명월(明月) 있다/오륙도 스쳐가는 배도 명월 싣고 가더라. 세월이 흘러 가수 조용필의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에서는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로 어선이 아니라 연락선으로 바뀌었다. 오륙도와 석양, 그리고 해운대의 바다 풍류를 즐기려면 미포에서 오륙도를 오가는 관광 유람선을 이용하면 된다. 바다에서 바라보는 해운대의 풍광! 오랫동안 잊지 못할 추억의 한 장면이 되리라.
바다 바람을 쐬었으니 이제 산으로 가보자. 해운대 대천공원에서 석태암, 장산사, 폭포사를 지나면 자그마한 폭포가 나온다. 높이 9m, 소(沼)의 깊이는 3m. 서너 갈래로 나뉘어져 떨어지는 물줄기가 바위에 부딪히면 하얀 포말을 내뿜고 물보라가 피어오른다. 마치 구름이 피어나는 것 같아 양운(養雲)폭포라고 이름 붙여졌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이 곳에 소풍을 왔는데, 담임선생님과 함께 찍은 빛바랜 사진이 앨범 한 구석에 남아 있을게다. 추억 속의 양운폭포는 꽤 높았고 물소리도 우렁찼던 것 같은데 요즈음 보면 왠지 초라해 보인다. 금강산의 구룡폭포나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의 웅장한 폭포들을 구경했기 때문일까. 신도시가 개발되기 이전 장산 일대는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일반인들의 출입이 제한되었다. 이 때문에 인적이 드문 청정지역이었고, 양운폭포 또한 비경(秘景) 대접을 받았다. 장산 정상 주변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장산계곡과 구곡계곡으로 나뉘어져 흐르다가 체육공원 아래에서 합쳐져 폭포를 이루고 다시 춘천으로 이어진다. 장산 곳곳에는 화산 폭발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는 너덜겅이 도사리고 있다. 이 거친 산에 삼한시대 장산국이라는 부족국가가 존재하였으니, 선인들의 생활력이 얼마나 강인했는지 짐작할 만 하다.
폭포 뒤쪽 체육공원에서 등산로를 따라 10여분 올라가면 애국지사 강근호 선생의 집인 모정원이 나온다. 청산리대첩과 6.25 때 참전했던 선생의 넋이 깃든 곳이다. 대천공원 쪽으로 내려가면 폭포사 입구에 유학 이모준(幼學 李帽俊) 송덕비를 볼 수 있다. 미포 입구 섬밭마을에 살던 유학자 이모준은 과객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온정을 베풀어왔다고 한다. 1931년 섬밭마을 입구에 세워진 이 송덕비는 오산마을 야산에 파묻혔다가 1993년 후손들에 의해 이 곳으로 옮겨졌다.
제4경은 구남온천(龜南溫泉)이다. 장산에서 바다를 바라볼 때 대천부락에서 운촌까지 춘천의 오른쪽이 구남벌이다. 갈대가 자라는 습지대에 거북이 서식하고 철새가 날아들던 곳이다. 장산의 남쪽이어서 구남이라고 불렸다. 다리를 절던 학이 따뜻한 물에 2~3일 몸을 담근 뒤 날아가는 모습을 목격하고 온천을 발견했다고 한다. 어릴 적 천연두를 앓았던 신라 51대 진성여왕이 해운대에서 온천욕을 한 뒤 깨끗이 나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진성여왕에게 나라를 개혁할 방안 시무(時務) 10조를 건의했던 최치원 선생이 벼슬을 마다하고 해운대를 거쳐 유랑에 나섰는데, 여왕은 해운대에서 숙환을 치료했으니 참 묘한 인연이다.
해운대온천은 1900년대 초 일본인들에 의해 개발되었다. 1923년 해운대온천기업합자회사가 설립되었고 1935년 온천호텔, 온천풀장, 공중욕장 등이 들어섰다. 온천풀장은 수영장과 연회장, 동물원, 정원을 갖춘 위락시설로 지금의 해운대구청 자리에 있었다. 온천호텔은 조선 총독이 즐겨 찾았는데, 나중엔 국제호텔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신혼여행객이나 수학여행 숙소로 각광받았다. 온천의 주 성분은 식염이며 라듐 등 무기 영양소가 풍부한, 마실 수 있는 물이다.
우1동 못안마을이나 운촌, 우2동 롯데아파트로 올라가면 간비오산(干飛烏山) 봉수대를 만난다. 큰 나루(津)가 있는 산을 한자로 표기한 결과 생소한 이름이 붙여졌다. 해발 259m, 간선도로에서 도보로 20여 분 걸린다. 해발 634m인 장산의 새끼 봉우리인 셈이다. 센텀시티, 황령산, 해운대 앞바다, 와우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마린시티의 마천루 너머로 광안대교도 살짝 보인다. 낮엔 연기로, 밤엔 횃불로 적의 침입 여부를 알렸던 봉수대다. 서쪽으론 황령산, 동쪽으론 기장 남산 봉수대를 거쳐 한양까지 연결되는 국가안보의 요충지였다. 봉수대의 불길이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을 훤히 밝힐 때 얼마나 장관이었을까. 이름하여 봉대점화(烽臺點火)다.
해운대의 경승지를 살펴보면서 가장 아쉬운 곳은 와우산(臥牛山) 주변, 지금의 달맞이 길 일대다. 일본인들에 의해 조성된 골프장이 옮겨간 1970년대부터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하여, 최근엔 수십 층 높이의 초고층 건물들이 들어섰다. 이른바 난개발이다. 소가 누워있는 형상의 산인데, 마구잡이로 파헤치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이 세우니 소가 놀라 잠을 깨지 않았을까. 이탈리아의 나폴리 못지않은 해안 절경이었는데 안타깝다. 
달맞이길이나 소의 꼬리에 해당하는 미포(尾浦)에서 바라본 해넘이가 우산낙조(牛山落照)다. 늦은 오후의 햇살을 가득 받은 바다는 황금빛 물결로 출렁인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면서 하늘은 진홍색, 검붉은 색으로 변신한다. 오륙도와 동백섬 상공은 수묵화를 보는 듯 흑백의 조화가 놀랍다. 바다도 하늘도 칠흑으로 바뀌고 나면 송정 쪽에서 집어등을 밝힌 어선들이 나타난다. 밤은 휴식하고 내면으로 침잠해야 하는 시간, 오늘 해가 짧음을 슬퍼할 일이 아니다. 해가 지고 나면 볼수록 유정한 해운대 저녁달이 나그네의 벗이 될 차례다.
우1동 지금의 해운대도서관 우동분관 자리는 마을 저수지였다. 1300여 평 규모의 저수지 주변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1970년대 말 이었던가, 저수지가 매립돼 도서관이 세워졌고 주변은 주택가로 탈바꿈했다. 이 지역은 못안 마을, 또는 지내(池內) 부락이라고 불리었다. 이 못에서 흘러내린 물은 장지마을을 지나 31번 버스 종점과 글로리콘도호텔 옆을 거쳐 춘천에 합류된다. 장지천의 맑은 물이 제방 위의 소나무, 개나리, 버드나무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었는데, 이를 장지유수(長旨流水)라고 하였다. 못안 마을의 위쪽 마을은 장지 마을. 장지는 불법(佛法)을 펼친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그래서인지 이 마을의 해운정사는 40여 년 만에 대가람으로 커졌고, 창건주 진제 스님은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을 맡고 있다.
장산에서 발원한 춘천은 양운폭포, 절골을 지나 대천공원, 그리고 노보텔 호텔, 오션타워 앞을 거쳐 동백섬 입구 바다로 흘러들어 간다. 춘천의 맑은 물에 물고기가 뛰노는 모습을 춘천약어(春川躍魚)라고 표현하였다. 
은어와 피라미가 뛰어놀던 춘천의 맑은 물은 1960년대까지 식수원으로 공급되었다. 오월 단오에는 부녀자들이 이 냇물에서 창포를 띄우고 머리를 감았으며, 한여름에는 소년들이 멱을 감던 수영장 구실도 하였다. 춘천은 전체 10㎞ 가운데 하류 쪽 5㎞를 1970년대 초 복개함에 따라 머리 감고 물고기 뛰어놀던 그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언젠가 복개도로를 걷어내고 옛날 모습 그대로의 생태하천으로 되살아나기를 기대해본다.
해운대 팔경 가운데 일부는 세월의 변화에 따라 옛 모습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본래 모습을 기억하고 보존, 복원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선인들의 정신 또한 후손에게 면면히 이어지지 않을까.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이상향 샹그릴라가 티베트어로 내 마음속의 해와 달이듯이.
 ■ 박병곤 해운대구 스토리텔링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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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상(海雲臺上) 동백섬 남단 위에서 바라보는 해운대의 전경
오륙귀범(五六歸帆) 석양을 지고 오륙도 쪽에서 어선들이 돌아오는 풍경
양운폭포(養雲瀑布) 물거품이 구름을 피워내는 것 같은 장산에 있는 폭포
구남온천(龜南溫泉) 신라 말 진성여왕이 휴양하고 약수를 먹었다는 온천
봉대점화(烽臺點火) 화산이 치솟는 광경을 연상하게 하는 비오산의 봉화
우산낙조(牛山落照) 소가 누워있는 형상을 한 달맞이 언덕에서 보는 낙조
장지유수(長旨流水) 못골에서 흘러내리는 물과 버드나무가 우거진 풍경
춘천약어(春川躍漁) 해수욕장 뒤 맑은 춘천에서 물고기들이 노니는 모습


누우면 山月이요, 앉으면 海月이라…<사포> 품은 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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