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시설에서 생태공원으로
300년 노거수 느티나무 이팝나무 덜 외로울 듯 손자 같은 나무 지켜보면서 얼마나 흐뭇할까 시민들에게 숲의 좋은 기운 듬뿍 전해주길
폭염의 기세가 수그러들 줄 모른다. 낮 최고기온이 섭씨 30도를 웃돌고 아침 최저기온이 25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무더위가 벌써 20일 이상 지속되었다. 소나기만 한두 차례 잠깐 내렸을 뿐 비다운 비도 감감 무소식이다. 이럴 땐 산들바람이 부는 나무그늘이 그립다. 마침 말복. 수령 300여년 된 느티나무와 이팝나무가 장승처럼 지켜주는 석대동 추어탕 집으로 달려갔다. 승용차를 타고 비좁은 골목길을 지나 겨우 주차했는데, 밀려드는 차량 행렬 때문에 여간 북새통이 아니다. 식당 마당에는 번호표를 받아든 손님들이 줄지어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만,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하나. 오랜 세월 이 마을을 지켜온 터줏대감인 이팝나무와 느티나무에 인사드린 후 돌아서고 말았다. 이팝나무는 해마다 5월이면 쌀알 같은 하얀 꽃이 피어난다. 꽃피는 모습을 보고 그해 농사의 풍흉(豊凶)을 점쳤다고 한다. 수분 공급이 원활하면 꽃이 잘 피는데, 그즈음은 벼 못자리를 조성하느라 물이 많이 필요할 시기이기 때문이다. 나무 이름의 유래는 쌀밥(이밥)을 먹기 힘든 시절, 쌀알 같은 꽃을 보고 풍년을 기원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절기상 입하(立夏) 전후에 피었기 때문에 발음이 비슷한 이팝나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석대동의 이팝나무는 여기저기 가지가 잘린 흔적이 있고, 길을 만드느라 흙을 파내고 돌담장에 갇혀있는 상태다. 그래도 지난 5월엔 하얀 꽃이 풍성하게 피었다고 한다. 높이는 15m, 둘레 4.4m, 1980년에 보호수로 지정되었는데,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보호대책이 필요하다. 바로 옆 느티나무는 수세가 왕성하고 웅장하다. 하늘을 가릴 정도로 가지가 뻗어있다. 짙은 그늘과 함께 매미 울음소리 쩌렁쩌렁 요란하게 들린다. 한여름 무더위를 씻을 만하다. 수고(樹高)는 15m, 역시 1980년에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느티나무는 살아가는 방식이 느긋하고 늠름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느티나무 그늘은 마을의 쉼터로 안성맞춤이다. 그러니 마을공동체를 지탱해주었고, 당산목(堂山木)으로 대접받는 경우가 많았다. 신록의 계절에 하늘 높이 치솟은 느티나무에 새 잎이 돋아나는 모습은 당당하고 아름답다. 재질이 단단하여 여러 가지 도구로 활용된다. 이양하 선생은 나무는 훌륭한 견인주의자(堅忍主義者)요, 고독의 철인(哲人)이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현인(賢人)이라고 칭송한 바 있다. 분수에 만족할 줄 알며, 남의 탓을 하지 않는다. 비바람과 폭염, 혹한을 견딘다.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 맛있는 열매를 제공한다. 온갖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기도 하고,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 어르신들의 쉼터나 어린 아이들의 놀이터로 변신하기도 한다. 심지어 제 몸을 내놓아 대들보나 기둥이 되고 때로는 불쏘시개도 된다. 모든 노거수(老巨樹)가 마찬가지지만 석대동의 이팝나무와 느티나무는 존경받고 예우 받아야 마땅하다. 300년 동안 얼마나 많은 풍상(風霜)을 겪었으며, 이런 저런 생채기가 났을까. 마을 사람들의 대소사를 지켜봤을 테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좋다 싫다, 쓰다 달다,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마을을 수호해왔다. 두 노거수가 자리 잡은 곳에서 멀지 않은 옛 석대쓰레기매립장은 해운대수목원으로 변신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부산 전역의 온갖 쓰레기가 매립돼 악취가 나고 침출수가 유출되었던 자리에 대규모 수목원이 조성된다. 약 63만㎡에 150여종 8만여 그루 나무와 꽃 8만여 본이 심어졌고 생태연못, 체육 및 편의시설이 들어선다. 인공적으로 만든 도심 수목원으로는 전국 최대라고 한다. 1단계 공사는 올 연말, 2단계는 2019년 연말 완공된다. 혐오시설에서 시민들의 사랑을 받을 생태공원으로 바뀌게 되면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300년 된 느티나무와 이팝나무도 이젠 덜 외로울 것이다. 손자, 증손자 같은 어린 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얼마나 흐뭇해할까. 또 수목원을 찾는 시민들이 숲의 좋은 기운을 듬뿍 받아가도록 기원해주리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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