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곤의 해운대 이야기- 우산낙조 구덕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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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광문화과 작성일 2015.01.05

해는 지고 또 뜨고 새해 날마다 좋은 날 되세요


우산낙조(牛山落照)라! 소가 누운 형상의 와우산(臥牛山)에서 바라본 황혼이 해운대 팔경의 하나라고 배운 지 수십 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던 풍광을 10여 년 전 직접 목격한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해 질 녘 미포나 달맞이 고개의 저녁노을은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다.
멀리 오륙도, 이기대, 동백섬, 그리고 그 너머 광안대로 사이로 해가 넘어갈 때, 하늘은 하늘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그림 솜씨를 뽐냈다. 하늘의 푸른빛이 옅어졌다가 주홍빛으로, 다시 진홍, 황갈색으로, 그리곤 붉은 기운이 점점 사라지더니 어두워졌다. 해운대 앞바다에 비친 반영(反影)은 파도의 물결 따라 마치 춤추듯 시시각각 달라졌다.
전북 부안의 채석강 해넘이가 이름났지만, 와우산보다 더 황홀하랴. 낮이 다하면 밤이 찾아오는 법,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다. 낮엔 태양의 에너지와 기(氣)를 받아 만물이 생장(生長)하고, 밤엔 명상하고 휴식해야 한다. 그래서 노자는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길이 오래갈 것(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이라고 했던가. 그러니 이 해가 다함을 서러워하지 말 일이다.
미포(尾浦)는 와우산의 꼬리에 해당된다고 붙여진 지명이다. 동해남부선 철로 아래 해안에 자리 잡은 전형적인 어촌마을이다. 연근해 어업을 하거나 돌미역을 채취해왔는데, 지금은 횟집을 비롯한 여러 음식점이 들어서 부산의 맛을 자랑하고 있다. 오륙도를 왕복하는 유람선도 이곳의 명물이다. 미포는 윤제균 감독의 해운대를 비롯, 여러 영화에 등장해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미포에서 삼포길이나 동해남부선 폐선 철로를 걸으면 청사포에 이어 구덕포로 연결된다. 구덕포는 약 300년 전에 형성된 어촌인데 마을 터가 협소한 탓인지 옛 모습 그대로이다.
횟집 건물이 몇 채 들어섰고, 최근엔 레스토랑과 카페가 문을 열었을 뿐이다. 대도시에서 이런 한적한 풍경을 즐길 수 있다니 반갑다. 수령 300년이 넘은 와송(臥松)이 마을의 역사를 대변해 주는 듯하다.
무 자르듯 엄격하게 구분하긴 어려우나, 미포와 해운대가 남해라면 구덕포는 동해에 가깝다. 이 때문에 구덕포의 해맞이는 또 다른 맛이다. 송정해수욕장 죽도공원 쪽 동해에서 떠오르는 아침 해는 구덕포를 몰랐던 외지인들에게 색다른 감동을 안겨 주리라.
박두진 시인은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라고 노래했다.
역경을 딛고 절망을 헤쳐 나가 우리가 만나야 하는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해마다 양력 1월 1일이면 해맞이를 하는 게 세시풍속으로 뿌리 내렸다.
십 수 년 전 토함산 일출을 보겠노라고 오전 4시 쯤 부산서 출발했는데 교통체증 때문에 경주 시내에서 중천에 뜬 해를 쳐다봐야 하는 낭패를 겪었다. 그만큼 한국인들에게 현실은 고달프고 희망 찾기가 절실했던 게 아닐까.
지리산 천왕봉에서나 중국 황산에서도 일출을 볼 수 없었다. 3대에 걸쳐 공덕을 쌓지 못했던 까닭이었을까. 지난해 이맘때 뉴질랜드 오클랜드 브라운스베이에서 아쉬움을 달래긴 했지만. 오래 전에 봤던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 주제가가 떠오른다.
해가 뜨고 해가 지고. 세월은 화살같이 날아간다. 행복과 눈물을 싣고 한 계절이 다른 계절로 바뀐다. 이제 그 작은 소년이 신랑이 되었고, 이제 그 작은 소녀가 신부가 되었지. 그래, 흐르는 세월이야 어쩌랴. 제임스 힐튼의 소설로 유명해진 이상향 샹그릴라는 티베트어로 내 마음 속의 해와 달이라고 한다.
세월이 덧없이 흘러도 마음 속의 해를 고이 간직하면 언제 어디서나 샹그릴라를 만날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리하여 새털같이 많은 새로운 날들을 날마다 좋은 날로 만들자.
*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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