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곤의 해운대 역사와 인물 - 대보름달 미소 배우며 소원 빌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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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통협력과 작성일 2020.02.07

활활 타오르는 화염 위로
달이 이지러졌다 펴지고
간간이 구름에 가려진다

뜨거운 불기와 매운 연기가
나쁜 운과 악귀를 내쫓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아쉽게도 축제 취소돼

꽃 사이에 앉아 혼자 마시자니/달이 찾아와 그림자까지 셋이 되었다/달도 그림자도 술이야 못 마셔도/그들 더불어 이 봄밤 즐기리…
술의 시인이자 달의 친구 이백(李白)의 시 독작(獨酌) 첫 머리다. 두보의 표현을 빌리면 이백은 술 한 말에 시 백 편을 짓는 혈기 넘치는 천재였다. 당 현종과 양귀비 앞에서 거나하게 취해 시 청평조사(淸平調詞) 세 수를 지어 올렸다가 훗날 모함에 의해 쫓겨난 자신의 신세를 달에 비유했던 것일까.
고려가요 정읍사(井邑詞)에 나오는 달에는 행상을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지아비의 무사 귀환을 비는 애틋한 마음이 담겨있다. ㄷ ㄹ하 노피곰 도ㄷ 샤/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어긔야 어강됴리/아으 다롱디리…
옛글을 컴퓨터 자판으로 옮기기 힘들 정도로 세상은 달라졌다.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의 애태우던 마음도 변한 건 아닐까. 달님이시여, 높이높이 돋으시어/멀리멀리 비춰주소서/시장에 가 계신가요/진 데를 디딜까 두렵습니다/어느 곳에나 짐을 놓으십시오/임 가시는 곳에 날이 저물까 두렵습니다 달은 천지신명이자 남편의 광명이었다. 달의 귀환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여인은 망부석이 되었다고 한다.
농경사회에서 1년 가운데 첫 보름달이 뜨는 음력 정월 대보름은 상징성이 매우 강하였다. 태양이 남성, 즉 양(陽)의 기운이라면, 달은 여성을 뜻하는 음(陰)이다. 따라서 여성-출산-식물-풍요를 상징한다. 우리나라의 세시풍속 가운데 20% 이상이 풍작을 기원하는 대보름날에 집중된 까닭을 이해할만하다.
올해 부산을 대표하는 우수 축제로 선정된 해운대 달맞이·온천축제는 2월 6~8일 열릴 예정이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아쉽게도 취소됐다. 예정대로 열렸다면 올해로 38회째다. 정월 대보름의 유구한 역사에 비하면 일천하지만, 전통을 재현한 대도시 풍속으로는 꽤 연륜이 쌓였다. (사)해운대지구발전협의회가 주최하는 민간 주도 형식이다. 통일신라시대 진성여왕이 즐겼다고 하는 해운대 온천을 대보름과 함께 내세운 것은 지역 특성 때문이라고 이해하자.
구청 열린정원에서 펼쳐지는 창작무용극 등의 달맞이 앞풀이에 이어 월영기원제를 올리고 드디어 월출 시각, 달집에 불이 붙으면 분위기는 절정에 다다른다. 활활 타오르는 화염과 검은 연기에 달이 이지러졌다가 다시 펴지고, 간간이 구름에 가려지기도 한다. 뜨거운 불기와 매운 연기가 오감을 자극해도 소원을 빌고 악귀를 내쫓는다. 노동에 얽매여 놀이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던 조상들도 카타르시스를 느꼈으리라. 근심과 걱정이 모두 사그라진 새해엔 넉넉함만 기다리리. 달맞이 뒤풀이, 살풀이춤과 화선무에 이어 강강술래와 대동놀이로 축제를 매듭짓게 된다.
강강술래는 수십 명의 젊은 여인들이 손을 맞잡고 둥근 원을 만들어 노래 부르며 춤을 추는 민속놀이다. 주로 추석에, 그리고 대보름날과 같은 보름날에도 풍작을 기원하면서 원무(圓舞)를 추었다. 지난 1996년 무형문화재 8호로 지정되었고,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해마다 출연한 해운대 동백강강술래단은 영남지역 유일의 강강술래 연희단이며 지난해 전국대회에서 뛰어난 기량으로 우수상을 받았다.
진익곤 감독은 올해로 24년째 달맞이축제의 총연출을 맡아왔다. 해운대 정월대보름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다. 진 감독은 "달집을 짓는데 1t 트럭 수십 대 분량의 나무가 동원된다"며 "달집의 크기보다 채화, 점화 과정의 정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달집에 대나무를 넣어두면 따 따 따 딱~하는 소리가 나기 때문에 음향효과가 더해지며 넓은 백사장을 무대로 강강술래를 공연하니 달집태우기의 흥취가 더해졌다고 한다. "그동안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감독을 맡아왔는데 이젠 관광 선진국답게 콘텐츠를 향상시킬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이 늘어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필자가 초등~중학생이었던 시절 미포에서 청사포로 향하는 동해남부선 철길 고두백이(고두말)까지 인파가 몰려 방금 떠오른 대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빌었다. 달맞이객들은 귀가 길에 수비삼거리 또는 수영까지 줄지어 걸어가야 할 정도로 북적였다. 가족이 건강하고 화목하며 자식이 잘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은 요즈음도 같을 것이다.
해운대는 달과 불가분의 사이다. 달을 맞이하는 해월정, 바다에서 떠오른 달이 부처님의 밝은 지혜라는 해월정사, 해운대 저녁달은 볼수록 유정하더라고 노래한 가요 대한팔경의 본고장이다. 달맞이고개가 포함된 와우산 계곡에서 사냥을 하던 양반집 도령과 나물캐던 처녀가 우연히 만났다가 정월 대보름날 다시 만나 천생배필이 되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백제의 미소라고 불리는 서산 마애삼존불상과 신라 천년의 미소인 얼굴무늬 수막새는 모난 곳 하나 없이 인자하게 웃는다. 둥글디 둥근 보름달의 원만한 이미지이면서 우리 조상들의 모습 그대로다. 비록 축제는 열리지 않지만 각자 대보름달을 보며 원만구족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보자.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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