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곤의 해운대 이야기 - 동네서점이 문화사랑방으로

매직쇼 인형극 기타연주…서점은 놀이터
해운대구 동네서점 살리기 운동 결실 하나둘
고사 위기였던 12개 서점 도약 날개 활짝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의 훌륭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과 같다.
철학자 데카르트의 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성인 10명 가운데 9명은 하루 10분도 읽지 않고, 네 명 가운데 한 명은 1년에 단 한권도 읽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니 한국인의 독서량은 세계 192개국 가운데 166위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나왔다.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서울의 어느 스타벅스 매장을 찾은 고객 99명 가운데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25명은 스마트폰을 만지고, 8명은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나머지는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다는 조사도 나왔다. 반면 영국 런던의 매장에서는 3분의 1이 책을 읽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급속히 줄어들던 동네 서점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단다. 온라인 서점과 대형 서점의 자본력에 눌려있던 동네 서점이 2014년 도서정가제의 시행에 힘입어 전국적으로 200곳 정도 늘어났다고 한다. 커피나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이색 서점의 등장도 서점가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특히 해운대 지역의 동네 서점은 해운대구의 지원으로 도약의 날개를 활짝 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해운대구가 지난 2014년 고사 위기인 동네 서점을 살리기 위해 12개 서점과 함께 해운대 동네 서점 살리기 운동본부를 꾸려 다양한 지원을 해온 덕분이다. 부산 자치구 가운데 유일하게 해운대구만 실시하는 문화 살리기 운동인 셈이다.
동네 서점 살리기 운동에 동참해온 재송동 주문서점을 찾아갔다.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으로 가는 가파른 이면 도로를 한참 올라가니 책을 펴자. 미래를 열자라는 로고를 내건 서점이 눈에 들어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박영호 대표가 반갑게 맞아준다. 삼면 서가에 책이 빽빽하게 꽂혀있다. 학생용 참고서가 많이 보였지만, 인문 사회과학 서적들도 상당하다. 모두 2만 여 권을 소장하고 있단다. 박 대표는 직장생활을 하던 중 1996년 지인의 소개로 서점을 시작했다고 한다. 큰 돈 벌기는 어려워도 자녀들 정서와 교육에 도움이 되고 지역 문화발전에 기여했다는 보람을 느낀다는 소감이다. 단골 고객이었던 학생이 육군사관학교에 합격했다며 박 대표에게 인사하러 온 적이 있다고 소개한다.
동네 서점 살리기 운동 이후 반여도서관, 재송어린이도서관 등 구립 도서관이 부산서점협동조합을 통해 도서를 구입하면 그 수익금 일부를 서점 살리기 운동 기금에 보탰다. 각급 학교에서 구입하는 도서는 학교 장터라는 인터넷을 통해 입찰하면 납품금액의 일부를 협동조합 기금으로 출연한다. 2개월에 한 차례씩 회원 서점을 순회하며 동네 서점 문화놀이터 행사를 개최하는데, 어린이들을 위한 매직쇼, 인형극, 작가와의 대화, 통기타 연주, 청소년 체험 부스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졌다. 올해만 여섯 차례 개최했다. 서점 홍보물을 포함 모든 경비는 구청의 지원과 사업기금으로 충당한다. 주문서점도 임정진 동화작가를 초청해 지역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주문서점은 지난해 두 배나 넓은 공간으로 이전할 수 있었고, 좌동의 대승서점도 확장 이전하는 경사를 누렸다. 아파트에 헌책 수거함을 마련해 깨끗하게 손질한 뒤 판매해 기금에 보태거나 저소득층에 전달한다고 한다.
박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책을 예약 주문하는 전화가 수시로 걸려오고, 책을 구입하려는 고객들이 들어온다. 재송동에 거주하다가 연산동으로 이사갔다는 한 아주머니는 딸이 읽을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찾는다. 연산동에 살면서 왜 재송동 서점에 오느냐고 물었더니 정이 많이 든 곳이라고 답한다. 파리만 날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동네 서점과는 확실히 달랐다. 박 대표는 해운대구의 지원에 감사드린다면서 완전 도서정가제가 시행되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재송동에 오기 전 둘러봤던 센텀시티에 소재한 대형서점 반디앤루니스와 교보문고는 눈이 휘둥그레해질 정도로 놀라웠다. 카페나 PC방을 연상시킬 정도로 커피 향기가 가득했고 곳곳에 노트북이 놓여있었다. 수많은 장서와 고객들로 성시를 이루었다. 새로운 형태의 대형 서점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동네 사랑방 같은 동네 서점은 풀뿌리 문화를 확산 성장시키는 소중한 자산이다. 그러니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양주동 선생은 맹자의 인생 삼락(三樂)에 독서와 면학의 기쁨을 추가하여 인생 사락(四樂)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으로 지당한 말씀이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