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곤의 해운대 이야기-보고 또 보면 보이는 <근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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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광문화과 작성일 2014.06.05

문화불모지 오명 씻어낸 시립미술관 국보 보물급 작품 한 자리에…


클림트를 보면 베토벤이 들린다고? 세계적인 화가와 음악가 25쌍을 짝지어 그들의 명화와 명곡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한 책 제목이다. 가수 보아의 큰 오빠이자 피아니스트인 권순훤 교수가 펴낸 책은 이름부터 도발적이면서도 흥미롭고 유쾌하다. 그림을 보면 음악이 들리는 경지가 놀랍고 부럽다.
그런데 미술에 문외한인 필자도 유사한 경험을 하였다. 한국 근현대 회화 100선 전시회가 열린 부산시립미술관에서다. 운보 김기창 화백의 1967년 작품인 아악의 리듬을 보고 있으면 마치 조선시대 궁궐 안에서 아악 연주를 듣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다. 주홍, 주황색 두루마기를 입은 연주자 7명 주위로 하얀 학이 몇 마리 날아다닌다. 청각장애인이었던 운보는 학을 그려 넣음으로써 소리를 표현하였고, 연주에 생동감을 불어넣었으리라.
구본웅 화백의 친구의 초상도 인상적이었다. 절친한 친구였던 시인 이상이 군청색 모자를 쓰고 담배 파이프를 물며 골똘히 생각에 잠긴 모습이다. 그런데 이상은 현실에 대해 조소적이며 분노하고 광기어린 표정이다. 이상이 그림 밖으로 뛰쳐나와 세상을 향해 독설이라도 퍼부을 것만 같다.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점과 선, 그리고 무수한 공간이 연결되어 있다. 그물코처럼 이어져 서로가 서로를 비추어주는 반사경이 되는 우주의 인드라망 인가. 1970년 작가가 뉴욕에서 고독한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친구인 김광섭 시인이 보낸 저녁에라는 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하략), 같은 제목의 가요로 만들어져 많은 사랑을 받았던 시가 아닌가. 작가의 고향인 전남 신안 앞바다 같기도 하고, 뉴욕의 야경 같기도 하고. 어찌 되었든 이런 명작이 부산시립미술관으로 찾아와 부산시민들과 만나게 된 인연이 고맙기만 하다.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야 했던 이중섭 화백의 길 떠나는 가족은 작가 자신 뿐 아니라 6.25 전쟁 시절의 우리 국민 모두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해운대구 우2동 승당마을 앞바다, 즉 수영만 매립지 한 켠에 부산시립미술관이 들어선지 벌써 16년, 부산은 문화의 불모지라는 오명을 씻어내는데 상당한 기여를 해왔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말처럼 100년 후에는 모두 국보, 보물로 지정될 문화재 100점을 한 자리에 전시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문화공간이다. 부산시립미술관에서는 근현대 회화전 이외에도 부산 근대작가 특별전, 로레 베르트-플라톤의 다면체와 예술, 발랄한 돋보기 전시회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미술관은 전시가 기본이겠지만, 조사 연구와 수장, 보존, 국제교류, 교육, 텍스트 및 도록 발간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시립미술관의 소장품은 2013년 말 현재 모두 2,296점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재일교포 사업가 하정웅 선생이 447점을, 공간화랑을 운영해온 신옥진 선생이 313점을 기증하였다. 상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구입한 작품을 사회에 환원하여 함께 공유하겠다는 정신은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시립미술관 1층 로비에 두 분의 흉상을 설치하여 기부문화의 표상으로 삼은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대가들의 명성은 익히 들었어도 작품을 이해하기 힘들어 하는 시민들도 있을 수 있다. 미술관은 작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한편, 대중들과의 소통에도 힘써야 한다. 부산시립미술관의 시민미술강좌 여러 프로그램이 한 달이나 앞두고도 모두 마감되었다는 소식은 무척 고무적이다. 미래 세대에게 예술적 감성의 씨앗을 심어줄 수 있는 어린이 미술관은 그야말로 백년대계다.
여섯 살 때 오스트리아 쇤부른 궁전에서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앞에서 연주를 하였던 천재 모차르트는 서른 여섯 나이에 이름 없는 묘지에 쓸쓸히 묻혔다. 훗날 그 사실을 뼈저리게 후회했던 비엔나 시민들은 베토벤의 장례식 때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한다. 예술가들을 진정 사랑하는 방식은 그림이든 음악이든 그들의 작품을 자주 접해주는 게 아닐까. 그런 측면에선 해운대는 정말 복 받은 고장이다. 오늘 우리가 접한 무명의 화가 가운데 세계 미술시장 최고가를 자랑하는 클림트나 피카소, 빈센트 반 고호 같은 대가가 나올 수 있는 게 아닌가.
 언론인


박병곤의 해운대 이야기-보고 또 보면 보이는 <근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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