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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주요 소식

구민과 걸어온 40년 영광스러운 길, 앞으로도 함께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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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통협력과 작성일 2020.07.08

내 이름은 해운대다. 올해 마흔이다.
열심히 살아왔다.
하나라도 더 이루려 했고 한 발짝이라도
더 나아가려 했다. 나만 보지 않고
남도 봤으며 여기만 보지 않고 저기도 봤다.
힘은 여전히 넘친다.
할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다.
잠시 멈춰 서서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
보이는 것 하나하나 내 손길이 스몄고
내 숨결이 스몄다. 보이는 것 하나하나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

1980년 4월 1일. 내가 태어난 날이다. 이날 비로소 나는 출장소란 거추장스러운 외투 대신 구청이란 반듯한 정장을 입었다. 이날을 기다린 사람은 많았다. 다들 같은 마음으로 발품을 팔았고 소매를 걷었다. 모두의 기다림과 모두의 하나 된 마음으로 나는 태어났다. 오래 기다렸다가 맞는 신생의 기쁨은 컸다. 기쁨이 얼마나 컸던지 첫돌이던 1981년 4월 집까지 새로 지었다. 지금 구청이 그때 그 집이다.
내친김이었다. 세 살이던 1983년 6월 수영만 요트경기장을 착공했다. 해운대해변로 84번 수영만 요트경기장은 국제경기 수훈 갑이었다. 1986년 4월 준공 이후 굵직굵직한 국제 요트경기를 여기서 치렀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을 비롯해 1988년 서울올림픽, 2002년 부산아시아게임의 요트경기대회를 여기서 치렀다. 수영만 요트경기장은 세계인이 부산을 다시 보게끔 한 일등공신이었다.

달맞이동산도 내 기억 앨범에서 생글생글 웃는다. 지금은 달맞이고개로 불리는 그 길을 단장하느라 참 많은 공무원이 애썼다. 그때가 1983년 봄에서 여름 사이였다. 해운대구 공무원이 조를 짜서 작업했다. 길을 내고 자연석을 쌓고 벚나무를 심었다. 마침내 그해 7월 30일 달맞이동산을 조성한 기념비를 세웠다. 부산은 물론 세계적 명소가 된 달맞이고개 벚꽃 길은 그때 터를 닦았기에 가능했다.

해마다 4월이면 바람에 날리면서 생글생글 웃는 벚꽃들. 그런 벚꽃을 보노라면, 그런 벚꽃 길을 걷노라면 은근히 뿌듯해지고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벚꽃 명소 달맞이고개는 문화 명소이기도 하다. 고개 곳곳에 들어선 갤리러며 추리문학관은 부산, 나아가 한국 현대예술의 명소가 된 지 오래다. 해운대 씨처럼 80년대생이 넘쳐나던 달맞이고개 AID아파트도 오래오래 기억되리라.


마흔 살 해운대
해야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아

오늘보다 나은 내일
모두가 두루 잘사는
사람중심 미래도시
하루하루 나아가다



1988년은 겹경사 해였다. 나라는 서울올림픽을 치렀고 해운대는 자치구로 우뚝 섰다. 부산시 산하 기관에서 독립해 그해 5월 자치구로 승격했다. 이로써 지방자치라는 탄탄대로로 나아가게 되었고 이로써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시대적 대의를 다지게 되었다. 이로써 해운대는 예속과 간섭에서 벗어나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자존감을 회복하게 되었고 이로써 시민이 주인 되는 진정한 민주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자치구 승격은 1991년 4월 해운대구 초대 구의회 개원, 1995년 7월 제2대 구의회 개원·민선 초대 구청장 취임으로 이어졌다.
구민과 함께하는 열린 선진 의회. 해운대구민은 현재 40만 6천여 명. 지자체 단위로는 부산 최고다. 인구가 많은 만큼 다양한 주의와 주장이 분출한다. 해운대구민이 뽑고 해운대구민을 받드는 해운대구의회는 이러한 다양한 주의와 주장을 화합과 상생으로 이끌면서 해운대를 미래지향으로 이끈다. 구의회 홈페이지에서 밝혔듯 40만 구민과 함께하며 미래로 나아가는 열린 의회가 우리 해운대구의회다. 특히 현재 임기 중인 제8대 해운대구의회는 원 구성할 때부터 타협과 양보로 극대치를 도출해 구민의 큰 박수를 받았다. 해운대 씨도 이참에 박수 "짝짝짝!"

1990년대 들면서는 해운대 씨, 키가 부쩍 커졌고 힘도 세졌다. 나날이 의젓해졌고 다달이 어른스러워졌다. 사람들은 그런 해운대 씨를 보려고 가까이서 멀리서 찾아왔다. 그런 해운대에 살려고 가까이서 멀리서 찾아왔다. 그것의 절정이 해운대 신시가지였다. 1992년 8월 기공식을 하고 1997년 개발이 마무리된 해운대 신시가지는 부산 최초의 계획도시였다. 부산 최초의 계획도시를 품은 해운대는 이로써 부산의 중심으로 우뚝 섰고 부산의 맨 앞에 우뚝 섰다.
해운대는 역사도 부산의 맨 앞이었다. 해운대 여기저기 발굴한 구석기 유적이 그것을 입증한다. 구석기 유적은 좌동 신시가지에서도 나왔고 중동 청사포에서도 나왔다. 신시가지 땅을 고르고 터를 닦고 하던 1992년 연말에서 이듬해 봄, 그 무렵이었다. 유적이 유적인 만큼 부산시립박물관이 도맡았다.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났고 다들 신이 났다. 발굴 유적은 부산박물관에 가면 관람할 수 있다. 구석기 유적이 여기서 나왔다는 건 해운대가 부산은 물론 한국 역사의 맨 앞에 있다는 증명이다.

1990년대 중반 웅자를 드러낸 벡스코(BEXCO) 역시 대단했다. 해운대구가 한국 관광의 대표 주자라서 안 그래도 외국인이 몰리던 터에 국제행사와 국제 규모 전시회의 총아인 벡스코가 1996년 개장하면서 해운대구는 명실공히 세계의 해운대구가 됐다. 2001년 12월에는 2002 FIFA 한일 월드컵 본선 조 추첨이 이곳에서 열렸다. 그때 그 감격을 떠올리면 해운대 씨는 지금도 눈물이 찔끔찔끔 난다. 축구장 3배 크기 부산전시컨벤션센터를 둘러싼 부산시립미술관, 세계적 화가인 이우환 공간, 부산국제영화제 중심지 영화의 전당, 세계 최고를 표방하는 신세계백화점과 롯데백화점 등등은 해운대 씨가 가진 또 다른 매력덩어리다.

드디어 새천년 밀레니엄. 해운대 씨는 성년을 맞았다. 영어도 술술 했고 세상을 보는 눈은 더욱더 깊어졌다. 외국인 친구가 많이 생겼고 해운대 씨의 활력과 매력에 반한 외국인 친구들은 수시로 찾아왔다. 말도 다르고 눈동자 빛깔도 다 달랐지만 우리는 하나라는 마음은 다 통했다. 2000년대 들어 사귄 외국인 친구를 일일이 소개하려면 몇 날 며칠이 걸린다. 세계인의 이목이 쏠렸던 굵직굵직한 몇몇 국제행사만 들먹여도 숨이 가쁘다. 2005년 부산 APEC 정상회담, 2006년 제14차 ILO(국제노동기구) 아-태지역 총회, 2019년 한국 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등등이 해운대구 누리마루 APEC 하우스와 벡스코 일대에서 열렸다.

이제 내 나이 마흔. 젊다면 젊다. 나도 젊고 구청장도 젊어 궁합이 척척 맞는다. 아홉수를 맞은 2019년, 마흔을 앞두고 펼친 일이 한둘 아닌데도 하나같이 성공적이었다. 마음이 척척 맞아서였다. 해운대 성장을 바라는 마음은 나도 구청장도 같았다. △소통하는 균형발전 △막힘없는 교통체계 △원칙 있는 안전도시가 그거였다. 반여 2·3동 도시재생 뉴딜사업 공모, 해운대터널(가칭) 건설사업, 빌딩풍 피해 예방을 위한 학술용역 등등 참 무던히도 애썼다.
물론, 이게 다가 아니다. △세계적인 관광도시 △일자리 풍부한 경제도시 △더 행복한 복지도시 △신뢰 받는 공감행정으로 나아가는 데도 손발을 맞췄고 마음을 맞췄다. 수영강변 야간경관 조성사업(1단계), 지역·산업 맞춤형 일자리 창출 지원사업, 인생 2막 지원 해운대 원더풀 미래대학 운영, 현장 중심의 효율적 조직개편, 공무직과 기간제 근로자의 공정하고 투명한 채용 시스템 구축 등등은 역동하는 해운대, 더 젊은 해운대로 나아가려는 뜨거운 몸짓이었다.
마흔 살 해운대 씨. 힘은 여전히 넘치고 의욕도 여전히 넘친다. 둘러보면 할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다. 자다가도 일어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궁리한다. 나도 잘되고 내 이웃도 잘되고 이웃의 이웃도 잘되는, 골고루 잘 되는 세상을 궁리하고 모색하고 그리하여 궁극을 찾으려고 한다. 잘되는 데는 잘되고 안 되는 데는 안 되는 해운대구가 아닌 모두가 잘되는 해운대구를 소망한다.
지금 해운대 씨 앞에는 지도 한 장이 놓여 있다. 제목은 2020 해운대구 정책지도. 해운대구 미래가 담긴 지도이자 청사진이다. 해운대구 동별로 2020 현재 하는 일을 담은 이 지도는 해운대구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조감하고 조망한다. 지도를 보노라면 그림이 저절로 그려진다. 사람이 중심인 해운대구, 누구나 마음에 들어 하는 해운대구,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해운대구, 사람과 사람이 함께하고 사람과 자연이 함께하는 해운대구가 저절로 그려진다.

"길이 끝난 곳에서 길이 다시 시작된다고 합니다. 그동안 걸어온 길을 토대로 더 나은 길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 길은 누구도 가보지 않았던 길이었지만 두려움 없이 구민의 응원을 받고 뚜벅뚜벅 걸어왔습니다" 구청장은 젊은 기운이 넘친다. 가까이 가면 젊은 기운이 활활 옮겨붙는 것 같다. 하는 말도 그렇다. 듣고 있노라면 주먹에 힘이 불끈불끈 들어간다. 나이 마흔은 또 다른 시작. 구청장 말대로 다시 시작하는 길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느낌이 좋다. 앞으로 100년, 200년은 더 정정하지 싶다. 100년, 200년이 뭔가. 이 해운대 씨, 천년만년도 가지 싶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선선하다. 천년만년 전에도 저랬고 천년만년 후에도 저러리라.

동 길 산
시인

구민과 걸어온 40년 영광스러운 길, 앞으로도 함께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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