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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박태성의 세상 이야기>가을산책에서 배우는 것들

문화∙생활 게시물 상세 정보
작성자 소통협력과 작성일 2021.10.01

소슬바람과 가볍게 산책하면서 느끼는 가을 정취
생명의 신비와 죽음, 영적인 어떤 것들을 떠올려
야생의 삶이란 정신적 태도여서 근처에서도 가능
진정한 삶은 자연과 함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해

여름에는 열정적인 사랑을, 가을에는 책을 읽으면서 사랑을 한다. 단풍나무 잎사귀에는 프로펠러 모양의 씨앗들이 바람에 실려서 여행을 떠날 준비를 막 끝낸 듯하다. 겨울 준비에 분주한 나무들은 서로가 껴안을 수는 없어도, 땅 밑 뿌리로 발을 부비며 겨울동안의 안부를 전한다. 완전히 죽은 것 같은 나무들과 풀들은 봄에 다시 일어서서 대지를 양탄자 같이 부풀어 오르게 할 것이다.
우리 주위에 친근한 식물의 역사는 무려 약 4억4천만 년 전에 시작되었다. 꽃을 피우는 개화식물은 1억 4천만 년 전쯤의 일이다. 겨우 20만 년 정도의 역사를 지닌 현생인류 호모사피엔스는 대선배들이 뿌려 놓은 대지의 화폭 위에서 자연의 법칙을 배운다.
소슬바람에 들뜬 나뭇잎을 바라보며 가볍게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가을의 정취를 느낀다. 자연공동체의 진정한 일원이 아닌데도, 자연은 성장하면서 잃어버린 야생의 유전자를 되살려준다. 성인이 된 후에도 남아 있는 기억들은 어릴 때 주로 자연에서 뛰어놀던 기억들이다. 바닷가 물놀이, 강물로 첨벙 뛰면서 발가락을 간지럽히던 은빛 지느러미의 물고기들과 은빛 백사장, 산속에서 방향을 잃었을 때의 기억, 공원에서의 소풍놀이 같은 것들이다. 자연은 하늘로부터 물려받은 최고의 성장공간이어서 거기서의 경험은 워낙 강렬해서 그런 것일까.
아이들 역시 자연과 함께 있으면 생존공간을 확보하는 법을 배우며 새로운 것에 눈을 뜨게 된다. 청소년기는 청소년기대로, 정서적 안정을 준다. 그런데도 공부에 매달려 자연과의 교감을 잊어버리는 우리 아이들이 안쓰럽다.
최근 한 조사에 다르면, 학생들에게 기업 상표 20개와 지역의 흔한 생물 20종을 주었더니 상표 이름은 대부분 맞히는데 비해, 생물종은 단 한 개도 맞히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발터 베냐민의 표현을 빌리면, 동물원과 TV, 또는 사이버공간에서 봤던 복제시대의 자연을 오직 접하니 씁쓸할 뿐이다.
학교에서 우리가 배웠던 생물, 지리학, 화학, 물리, 과목 수업 방식에는 적지 않은 결함이 있다. "여기 이런 사실들이 있다. 외워라고 명령하는 암기 과목들에 불과했다. 아주 작은 한 톨의 씨앗에서 기적 같은 꽃을 피우며, 산속 다람쥐가 그 순간에 집중하며 장난하는 것은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 식물과 다람쥐를 총체적으로 느끼지 못하며 인간의 언어로서 구별하며 대상화시켰던 것이다. 그것도 암기라는 정말 예의 없고 인정머리 없는 행동으로….
최근 생명의 기원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학교 다닐 때 지긋지긋했던 자연과학이 호기심과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흥미로운 분야란 것을 발견한다. 우주와 생명의 기원, 영적인 것, 신의 존재를 하나둘씩 자연과학적인 지식을 근거로 상상하니, 인간들과 바깥과의 친밀성은 더 깊어졌다. 하늘로 붕 날아다니며 물위를 걸어 다니는 게 기적이 아닌, 우리가 땅에 서서 걷는 게 기적이란 사실도 알았다. 또 "그대가 태어났을 때, 그대는 울고 세상은 기뻐했다. 그대가 죽을 때는 세상이 울고, 그대가 웃을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라고 말한 화이트 엘크의 인생론에도 공감을 하게 된다.
죽을 때 웃을 수 있는 인생의 철학자. 영국 중부 지역 한 호숫가를 서재로 삼았던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의 영혼불멸송 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아무것도 꽃과 풀 속의 영광된 시간을/ 돌려놓을 수 없지만 우리는 슬퍼하지 아니하며/ 오히려 그 속에 담겨있는 주의 권능을 발견한다/ 언제나 함께 했던 태곳적부터의 동정심 속에/ 고통을 체득하고 나온 위로의 마음속에/ 죽음 앞에 바뀌지 않는 믿음 안에/ 우리를 살아있게 해주는 심장 덕분에/ 그 심장의 따뜻함과 기쁨과 두려움 덕분에/ 바람에 날리는 가장 연약한 꽃 한 송이조차/ 눈물로 흘려보내기에 너무 깊은 사념을 준다.
바람에 흩날리는 연약한 꽃잎조차 그냥 눈물로 흘려보내기에는 너무 깊은 사색을 준다는 구절. 사색의 계절에 생명의 신비와 죽음, 영적인 어떤 것을 생각할 수 있는 멋진 구절이다.
사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도 인간 사회와 멀리 있는 곳은 의외로 많다. 야생의 삶이란 어떤 정신적 태도가 아닐까. 외진 공간에 멋지게 지은 전원주택에 살아도 전혀 야생적이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시에서 살아도 전혀 도시적이지 않은 사람이 있다.
"왜 아무 것(nothing)도 없지 않고, 무엇인가(something)가 있을까?"라고 한 철학자 라이프니츠의 구절을 이 가을에 떠올리며 인생을 음미하자.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삶은 자연과 함께 있을 때 오직 가능하다.

박 태 성
· 부산대 불어불문학과 졸업/영국 스태퍼드셔주립대학교(사회문화학과) 석사/부산일보사 기자·논설위원(1986~2017년)/부산시민회관 본부장(2017~2019년)
· 저서 유쾌한 소통(산지니 출판사), 예술, 거리로 나오다(서해문집)

<박태성의 세상 이야기>가을산책에서 배우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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