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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독자마당-거북보다 느리고 겨자씨보다 작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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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협력과 작성일 2023.03.02

어느덧 일흔 중반이 됐다. 그동안의 인생을 돌아보면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을 만큼 수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힘든 고비가 찾아 올 때마다 잘 넘기며 살아올 수 있었던걸 보면 사람들로부터 세상으로부터 하늘로부터 받은 은혜가 너무 많은 것 같다.
매주 수요일 아침 눈을 뜨면 정갈하게 씻고 아침 겸 점심으로 평소보다 조금 많이 먹는다. 그리고 어깨에 메는 가방 안에 앞 쪽 가슴에는 믿음직한 평생 동행을 뒤쪽 등판에는 상록자원봉사단이란 글귀가 새겨진 초록색 조끼를 입고 길이 30cm가 조금 넘는 집게와 비닐봉지, 500ml 작은 생수병을 챙겨 문을 나선다.
1년 365일 맑음보다 흐림이 많은 내 육체적 건강, 파스냄새가 배어 있는 일흔 넘은 세월을 등에 진 조금은 무거운 발걸음이지만 해초내음이 코끝을 스치는 해운대역에 내려 조심조심 지팡이를 짚고 계단을 오른다.
오전 10시, 해운대 아틀리에 칙칙폭폭으로 변신한 예전의 해운대철도역 팔각정 앞 광장 바닥에서 담배꽁초를 주우며 봉사를 시작한다. 100년 은행나무의 넉넉한 미소 굽어보는 광장에서 그 어느 누구의 입술에 닿아 위로가 되고 화풀이의 친구도 되다 토사구팽된 담배꽁초를.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 해운대역 팔각정 앞 광장은 공무원퇴직자 모임인 상록해운대 자원봉사 밥 퍼 봉사단원들이 매주 수요일 노숙인, 홀몸어르신 등 500~600명에게 점심제공 봉사를 했던 아름답고 보람이 많던 곳이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즐거운 마음으로 했지만, 결코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식사를 하는 분 중 정신과 몸이 불편한 분들이 광장 주변에 소변을 보기도 하고 쓰레기를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분들까지 살갑게 다독여 웃음으로 챙기는 봉사자들을 볼 때면 저분들이 바로 천사라고 느끼곤 했다.
그랬던 광장이 이제는 허전하고 쓸쓸하다. 힘들고 아프고 배도 고플 그 어르신들 다 어디 가셨는지? 코로나19는 30여 명 밥 퍼 단원들의 발걸음조차 뜸하게 하며 광장을 더욱 허전하고 쓸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코로나19도 봉사단의 정신까지는 빼앗아 가지는 못했다. 이제 스몰 원 팀 해운대상록환경정화자원봉사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빨 주 노 초 파 남 보로 물든 구남로 꽃밭 사이사이의 쓰레기를 주우며 생각한다. 쓰레기를 버린 사람들이 누군지 그 얼굴이 정말 궁금하다. 누군지는 몰라도 분명 양심에 털이 난 사람들임에 분명하다.
사람과 세상과 하늘로부터 받은 은혜가 너무 크고 많기에 오늘도 봉사할 수 있는 이 시간이 좋다. 봉사의 발품이 거북보다 느리고 겨자씨보다 작아서 조금은 속상하지만, 그래도 이 또한 남은 삶 제2의 인생 소확행이라 여기며 오늘도 내일도 하늘이 부르는 그날까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 한다. 코로나의 위협이 대한민국에서, 지구촌의 인류에게서 벗어나 저 먼 먼 우주 밖에서 완전 소멸되기를 간절히 정말 간절히 기도를 하며.
박경영(반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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