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 내 인생 최고의 꼰대
| 작성자 | 홍보협력과 | 작성일 | 2026.03.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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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시간이 흐르는 대로 살아가는 분이 아니었다. 시간을 계획하고, 지배하며 살아가셨다. 새벽 4시 정각이면 눈을 뜨고, 따끈한 조간신문을 읽은 뒤, 서예 붓을 들고 정좌하셨다. 이어서 가벼운 스트레칭, 국민체조, 걷기까지…. 하루를 움직이는 톱니바퀴처럼 정밀하고 빈틈이 없었다.
약속이 있는 날이면 더 철저했다. 반드시 30분 전에 도착해야 마음이 놓인다는 분. 단 1분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늘 아버지보다 늦게 움직였고, 그때마다 조용한 질책이 따라왔다.
그러나 미리 준비하는 습관은 또 다른 차원의 고통이었다. 시험이 한 달 남았다고 하면, 하루도 빠짐없이 아버지의 질문이 이어졌다. "공부는 얼마나 진척되었니?" 처음엔 대답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피곤하고 귀찮았다. 소풍을 10여 일 앞두고 준비물 이야기를 또 꺼내시는 아버지께 퉁명스레 말했다. "전날 준비해도 돼요. 왜 이렇게 자꾸 물어요?"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 모든 질문과 잔소리에는 아버지의 삶이 녹아있었다. 교사였던 아버지는 제자들에게 늘 모범을 보이셨다. 그러다 보니 누구보다 스스로를 엄격하게 다듬으셨고, 그것이 결국 가족에게도 전해졌던 것이다. 요즘 같으면 꼰대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 시절의 나는 아버지를 그렇게 여겼다. 답답하고, 지나치게 앞서가는 분이라고.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깨닫는다. 그 꼰대스러움이 내 삶에 얼마나 단단한 뿌리를 내려주었는지.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약속을 어기거나 늦는 일이 없어졌고, 무슨 일이든 사전에 준비하는 습관 덕분에 여유를 갖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신뢰했고, 나 역시 내 삶을 더 잘 다스릴 수 있었다.
나는 안다. 아버지의 철저함은 사랑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바란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꼰대로 기억될 수 있기를. 자기만의 시간을 고집스럽게 지키며, 소중한 것을 미리 준비하는 사람으로…. 김동석(반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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