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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모성의 공간, 해운대 바다

문화∙생활 게시물 상세 정보
작성자 소통협력과 작성일 2020.12.01

박태성의 세상 이야기

코로나19로 인해 가족과 지내는 시공간 많아
사이버 소통이 아닌, 구체적 인간들 느낄 기회
모성 일깨우는 특별한 해운대 바닷가들의 의미
차분한 송년으로 가족과 공동체 돌봄 깨닫기를

지난 여름, 찰찰거리며 흐르던 개울물 소리도 이제 앙상한 여운만 남았다. 올해도 지는 해를 보내야 한다. 봄에는 가벼운 걸음으로, 여름에는 빠른 걸음으로, 그러다가 가을에는 느릿느릿하게, 겨울에는 멈춰 서버리는 듯한 계절의 바뀜은 경이롭다. 저마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지난 한 해를 반추하는 시간을 가진다.
올해는 유독 코로나19 사태로 과거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어려운 일상들이 반복되고 있다. 정부는 각종 송년모임으로 연말에 코로나19 사태가 훨씬 더 심각해질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사회와 자녀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올해에는 흥청망청 보낼 게 아니라, 가장 가까운 이들과 오붓하게 한해를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성찰은 외부를 지향하는 게 아닌, 일상과 내면 그 자체에 머물러 생각하는 것이기에 더 그렇다.
우리의 일상은 귀한 보석과도 같다. 일상에 대한 애정 없이는 어떤 새로움도 한낱 신기루에 불과할 뿐이다. 그 새로움도 어느 순간 더 이상 자극을 주지 않는다. 철학자 사르트르는 "또 다른 자유를 갈구하는 순간, 또 다른 구속이 기다릴 뿐"이라며 자유의 모순에 대해 언급했다. 여건에 만족하지 않고 욕심을 내면 불평들이 계속 생기기 마련이다.
올해 코로나19로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시공간들이 유달리 많았다. 그런 와중에 때로는 다투기도 하고 송곳보다 날카로운 말로 상대를 아프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이번 사태가 스마트폰이라는 기계로 정체모를 소통을 하며 겪었던 부작용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사이버 공간에서 완벽한 연결을 추구하면 완벽한 공허가 찾아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실재하는 구체적인 인간들과 손을 잡고 그 촉감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설령 삐긋거리는 잡음이 신경을 거슬리게 하고 때로는 덜커덕거릴지라도, 바로 곁의 사람의 살아 있는 목소리와 몸짓에 우주가 바로 담겨 있다.
작고한 최인호 소설가는 아이의 치아가 조금씩 자라는 모습에서 우주의 신비를 느낀다고 했다. "제 고향 산밭의 옥수수 줄기에 열린 옥수수마다 들어있는 하모니카 소리에서 우주의 하모니를 들을 수 있는 귀를 얻기 위하여…"라고 말한 어느 시인의 말도 가슴에 와 닿는 한 해의 끝자락이다.
가장 아픈 시기에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은 정체모를 사람들이 아닌, 가까운 사람과 가족들이다. 아무리 많은 인파가 시장에 몰려 있어도 자기 자식 목소리는 금방 알아낸다. 엄마가 아이에게 아~ 하고 입을 벌리며 밥을 떠먹이려 하는 것은, 아이도 따라서 입을 벌린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서다. 이처럼 의식적인 논리 이전에 느낌으로 아는 게 곁의 인간들이다.
가족은 식구(食口)라고 했듯, 같은 시공간에서 함께 희로애락을 나누는 공동체도 결국 가족이다. 코로나19로 정말 어려움을 겪었을 주위 분들은 없는지 살펴보자. 각자 편안이 타인의 어려움에 눈 감고 귀를 닫은 데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성찰하며 한해를 보내는 것도 의미 있다. 돌봄의 공동체야말로 인간이 동물에 비해 더 우수한 이유 중의 하나다.
최근 중고 사이트 아동 매물 사건을 비롯, 끔찍한 아동 학대 사건들이 기사화되고 있다. 동물보다 못한 인간이란 말이 떠오른다. 약육강식의 아프리카 초원에서 사자와 치타 같은 동물들조차도 진정한 모성애가 무엇인지를 잘 안다. 그들의 새끼 지키기 본능은 통째로 움직이며 소리와 몸을 함께 사용하는 언어여서 더 절절하다.
부부가 함께 자식을 기르는 대표적 동물은 새들이다. 새들은 암컷과 수컷이 혼자 자식을 기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남극 영화 70도의 겨울 강추위에도 꼼짝 않은 채 필사적으로 알을 품고 봄에 올 암컷을 기다리는 황제펭귄 수컷은 그야말로 감동적인 부성애다. 일부 아프리카 텃새들은 몸 가누기조차도 버거운 혹독한 건기에 10킬로미터 거리 물웅덩이까지 겨우 날아 날개에 물을 적셔 새끼들에게 수분을 공급한다.
갈매기 부부는 거의 12시간씩 집안일과 바깥일을 교대로 한다. 먹이 찾는 것과 알을 품는 일이다. 겨울에는 따뜻한 곳으로 이주했다가 번식기에 다시 돌아온다. 먼저 도착한 갈매기는 지난해 함께 자식을 길렀던 짝을 찾아 쉼 없이 울어댄다. 갈매기는 거친 여정에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다. 영영 돌아오지 못할 연인을 목이 멜 정도로 불러대는 갈매기의 울음이 서글프다.
낳자마자 움직이는 동물들에 비해, 인간은 생후 1년이 넘어서야 겨우 걸음마를 할까 말까 할 정도다. 20년 정도 넘어야 부모로부터 독립한다. 다른 종에 비해 더 집중적이며 장기적인 돌봄이 필요하다. 그래서 인간은 서로 협력하면서 자손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전략을 구사하는데, 이를 파트너 애착 혹은 짝 유대라고 한다. 독립하면 영원히 이별하는 다른 종과 달리, 죽는 순간까지 곁에 있으면서 인연을 잊는다. 같은 피붙이가 아니어도 그렇다.
부산 해운대에는 모성의 본능을 일깨우는 특별한 바닷가들이 많다. 쓸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에 발을 담구면 물과 세포가 하나가 된 아늑한 느낌이다. 바다가 없었다면 지구 생명체는 아예 존재하지 못했다. 45억 년 전에 지구 역사가 시작하면서 대지는 뜨거운 용암과 강한 자외선으로 생명체 존재가 불가능했다. 바다 속은 생명체 탄생이 가능한 모성의 공간이었다.
자연의 신비한 현상 역시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모성의 공간인 해운대에 살면서도 바닷가 발자국을 남겨본 지가 가물가물한,의식 속의 먼 곳이 돼 버린 것은 아닌지….
요란스러운 송년 모임은 가능한 사양하고, 적당한 날을 골라서 갈매기 울음소리 정겨운 해운대, 송정, 청사포를 거닐자. 심심한 채로, 가까운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도 의미 있는 송년이 될 것이다.

박 태 성
· 부산대 불어불문학과 졸업 / 영국 스태퍼드셔주립대학교(사회문화학과) 석사/ 부산일보사 기자·논설위원(1986~2017년)/부산시민회관 본부장(2017~2019년)
· 저서 유쾌한 소통(산지니 출판사), 예술, 거리로 나오다(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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