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곤의 해운대 이야기- 반송 삼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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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광문화과 작성일 2015.05.06

4대에 걸친 우국충정 기려


임란 때 순절한 양지 양조한 양통한 세 분 위패 모신 사당


키가 작고 가지가 옆으로 퍼져 소반처럼 생긴 소나무가 많이 자란다고 하여 이름 지어진 동네, 반송(盤松).
1970년대부터 부산의 대표적 정책 이주촌이었으나 아파트가 들어서고 도시철도가 놓이면서 도시의 면모가 달라지고 있다. 충절(忠節)의 상징인 소나무처럼 이 지역의 정신을 면면히 이어오는 곳이 바로 삼절사(三節祠)다.
반송2동 본동마을 아파트 밀집지역 가운데 임진왜란 때 순절한 양지(梁誌), 양조한(梁朝漢)과 의병장이었던 양통한(梁通漢) 등 남원 양씨 세 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양지는 조선 세종 때 고려사 편찬에 참여했고 대제학, 대사헌을 지냈던 양성지의 6대손. 임란이 일어난 1592년 삭녕 군수를 거쳐 경기감사 종사관으로 봉직하던 중, 삭녕(지금의 연천)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1796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충민공(忠愍公) 시호를 받았다.
양조한은 동래향교 훈도로서 향교에 모셔졌던 성현들의 위패를 동래읍성 정원루로 옮기고는 송상현 부사, 노개방 교수, 문덕겸 등과 함께 순절하였다. 그의 외아들 양홍(梁鴻)도 이 전투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양조한의 순난비(殉難碑)는 동래 송공단 경내에 송상현 부사비 오른쪽에 세워졌다.
양통한은 큰 형 양조한과 조카 양홍이 순절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 양의, 양숙과 함께 세 부자가 의병이 되어 북상하는 왜적을 추격했다. 경주, 팔공산 회맹을 이끌었으며, 정유재란 때는 곽재우 장군과 함께 창녕 화왕산성 전투에 참여하였다.
양통한은 13세 때 일본에 끌려갔던 양조한의 손자 양부하(梁敷河)가 32세가 되어 돌아오자 재산을 나누고 장가를 보내 가문을 이어가도록 했다고 한다.
그런데 양부하는 일본에서 명나라 사신 심유경과 함께 도요토미 히데요시 독살에 관여했다는 기록이 염헌집, 연려실기술, 성호사설 등에 남아있다. 포로로 끌려가 최고 권력자의 잔심부름을 했던 그는 심유경이 양약이라고 속이고 건네준 독약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먹도록 함으로써 서서히 죽어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역사가들의 고증이 더욱 뒷받침되어야 하겠지만, 4대에 걸쳐 나라를 지킨 위대한 가문임에 틀림없다.
삼절사는 양조한 형제의 종숙부인 양지를 포함해 한 집안 세 분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고을 선비들의 건의와 임금의 윤허로 1839년 동래부사 이명적에 의해 남원 양씨 집성촌인 반송에 건립되었다.
1986년 부산시문화재자료 1호로 지정되었고, 그 해 공사를 다시 하여 1990년 준공되었다.
이 사당의 출입문은 상절문(尙節門)이며, 역사관 겸 관리실이 모현관(慕賢館), 강당은 세한당(歲寒堂)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세한당 위쪽에 사당인 삼절사가 자리잡고 있다. 세한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나오듯, 날이 추워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안다(歲寒然後知松柏不彫)라는 논어의 구절에서 따왔다.
세한당 편액 글씨는 1867년부터 1869년까지 동래부사였던 정현덕이 썼다. 세한당으로 오르는 돌계단에는 난리를 당하여 나라를 잊지 않음이 충이요, 백성들의 상처를 슬퍼하는 마음이 민(臨亂不忘國曰忠 使民悲傷曰愍)이라고 새겨, 양조한의 시호인 충민의 뜻을 풀이해 놓았다. 계단 옆엔 수령이 100년은 넘어 보이는 모과나무 고목이 예쁜 꽃을 피우고 있다. 모과는 못생겼으나 향이 좋고 한약재로 쓰이며, 그 나무는 훌륭한 목재라고 한다. 곽재우 장군의 사당 충익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모과나무가 있는데, 사당과 모과나무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1608년 동래부사로 부임한 이안눌(李安訥)은 4월15일이라는 시를 통해 임난 직후의 백성들의 참혹한 모습을 사월 열닷새 날 아침에 집집마다 곡소리가 들리더니/천지가 쓸쓸해지고 서늘한 바람이 숲의 나무를 흔들었네/.../임진년 왜적이 이르러 그날 이 성이 함락됐는데/송상현 부사께서 성을 지키다 충절을 다했지요/인근 주민들이 성에 몰려들어와 함께 순국했는데/쌓인 시체 아래 몸을 숨겨 천 백 중에 한두 사람이 살았지요/그래서 이 날이 되면 제사상을 차려놓고 그 죽음을 곡합니다... 라고 문집인 동악집에 남겼다.
남원 양씨 일문의 제사는 음력 2월과 8월 두 차례 유림제로 봉행된다. 삼절사에 얽힌 사연을 알고 나면, 부산을 어찌 뿌리 없는 고장이라고 폄하하겠는가. 선열들의 거룩한 희생정신을 널리 알리고 기리지 못한 후손으로서 고개 숙일 수밖에. 


* 언론인


박병곤의 해운대 이야기- 반송 삼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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