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구는 해운대를 이야기가 흐르는 문화도시로 만들고자 국제신문,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와 함께 지역 내 숨은 이야기를 발굴하고 있다. 아래 내용은 국제신문에 게재된 글로, 7회에 걸쳐 해운대 불멸의 신화를 연재한다.
오효자, 일효부 효행 이야기 듣고 자란 천석대는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못 살린 게 원망스러웠다 폐암 걸린 아버지 살리려고 거리서 시집 팔자 검은 양복 장정들 가판대 부수고 마구 폭행했다 어무이요, 천만 원 수술비가 어디서 났능교? 참 이상 체, 누가 수술비를 내고 갔다 카더라 폭행 동영상 온라인 퍼지자 시집 불티나게 팔려 정려각서 동래학춤 추자 효자꽃 향기 진동했다
이 세상 어느 길도 효도만큼 아름다운 길이 없네/ 내 각지고 모난 삶의 허리를 굽혀/ 천배 만 배 절을 올리며 이제야 아네/ 지극한 그 효심에 앙상한 나뭇가지들도 /감동하여 불멸의 효자꽃을 다투어 피우네/ 부모님을 공경하는 그 갸륵한 효행의 발자국 소리에/가시풀도 이를 알고 엎드려 길을 비키네.
#1.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효도에의 길 천석대는 배낭에서 꺼낸 시집 불멸의 효자꽃을 정려각(영양 천 씨, 천찬석의 6대손인 성태, 세모(아들), 술운(손자), 상련(증손), 우형(현손) 등 다섯 손자와 우형의 처인 효부 김해 김 씨 등 5대에 걸친 효행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함) 댓돌에다 올려놓았다. 향사 때 이 외는 별로 찾는 이가 없는 탓일까. 잡풀 우거져 스산한 마당에 엎드려 일 배 이배 백배 절을 하다가 그는 무슨 큰 잘못을 한 죄인처럼 털썩 주저앉아 흐느끼었다. 소의 눈처럼 큰 석대의 눈에서 주룩주룩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천석대가 중학생이 되는 그해 봄, 석대의 할아버지는 갑자기 쓰러져서 응급차에 실려 가셨다. 담당의사는 당장 입원해서 수술해야 한다고 했지만 석대의 집에는 돈이 없었다. 석대 아버지, 천성수 씨는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석대목공소는 구멍가게나 다름이 없었다. 담보 대출도 할 수가 없었다. 어릴 적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오효자 (五孝子), 일효부(一孝婦) 조상님의 깊은 효행 이야기를 듣고 자란 석대는 아버지가 왜 손가락을 끊어서라도 할아버지를 살리지 못하는지 답답하고 원망스러웠다. 자신이 커서 부모님이 아프다면, 허벅지 살을 베어서 목숨을 구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석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온 인류를 구한 나이, 서른세 살이 되었으나, 인류를 구하기는커녕 풍전등화 같은 아버지의 목숨을 구하기도 힘든 것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것이 아버지의 탓 같아서,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가출도 했던 석대. 탕자처럼 돌아와서 이제 아버지에게 목수 일을 배우며 쓰고 싶은 시도 쓰면서 살겠다고 모처럼 새 마음을 냈다. 그러나 60년 동안 먹은 나무톱밥이 수십 가마니라고 늘 말씀하시던, 아버지가 폐암선고를 받은 것이다.
#2. 불멸의 효자꽃 잔뜩 찌푸린 하늘은 손가락으로 툭 건드리며 비가 쏟아질 듯하였다. 동남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신대륙백화점 앞에서 운봉거사와 석대는 가판대를 설치하고 불멸의 효자꽃 시집을 팔고 있었다. 시집 한권 구입하시고 성불하세요라고 석대가 외치면 운봉거사는 목탁을 두드렸다. 석대가 운봉거사를 알게 된 것은 집을 나가서 노숙생활 할 때 서울역 광장에서 만난 사람이었다. 생년월일이 같아서 친구가 되었다. 이봐, 천시인, 나 목 좀 축이고 오겠네. 그가 목을 축인다는 것은 어디 가서 막걸리 한 병 비우고 오겠다는 소리였다. 석대는 그제야 생각난 듯이 배낭에서 비둘기 모이를 꺼내 구구구 비둘기들을 불러 모았다. 며칠 전 이곳에 왔을 때였다. 비둘기 한 놈이 발목에 낚싯줄을 칭칭 감고 있는 것이 너무 안쓰러웠다. 오늘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걸 풀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모이를 뿌리자 보이지 않던 비둘기들이 날아왔다. 모이를 주는 사람을 알아보는 듯 비둘기들은 석대의 머리와 팔과 손바닥에 올라앉았다. 석대는 손바닥에 앉은 걷기 불편해서 절름거리는 비둘기의 발목의 낚싯줄을 주머니 속에 넣어 온 손톱 가위로 조심조심 잘랐다. 그러자 비둘기는 재빨리 어디론가 날아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지나가는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그 모습을 찰칵찰칵 담아갔다. 그때였다. 검은 양복의 장정들이 전후 설명도 없이 시집이 쌓인 가판대를 구둣발로 마구 부수었다. 석대는 그들을 향해 사정했다. 제발 이러지들 마세요. 아버지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섭니다. 한 번만 봐주세요. 그러나 검은 양복들에게 석대의 애원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주먹으로 구둣발로 석대를 마구 때렸다. 사람들은 구경만 할 뿐 매를 맞는 것을 말려주지 않았다. 얼마나 어떻게 맞은 것인지 그는 사지를 꼼짝 할 수가 없고 소리도 지를 수 없었다. 소낙비가 쏟아졌다. 석대는 쏟아지는 빗물에 지구가 어디론가 떠내려가는 것 같았다.
#3. 호랑이 등에 올라 탄 효자 석대는 무섭게 달려가는 백호(白虎)의 등에 올라타 있었다. 그때 하늘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너무나 선명하게 들려왔다. 지금 너는 후생의 자신 목숨을 구하려고 달려가는 길이니 그리 알거라. 그는 꿈속에서 꿈을 꾸듯이, 저승사자의 탈을 쓴 호랑이에게 어디론가 끌려가는 것 같았다. 아, 이렇게 아버지의 수술비도 구하지 못하고 죽는구나 싶었다. 호랑이는 얼마나 속력을 내서 달리는지 주위가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백호가 석대를 내려놓고 사라진 곳은 온통 사방이 하얀 방이었다. 검은 옷을 입은 네 명의 장정이 서 있었다. 그들은 그런데 얼굴이 없었다. …흐흐흐…우리가 필요한 것은 너의 깨끗한 콩밭이다. 그리고 넌 네 아비의 수술비 천만 원이 필요하다. 자, 시간이 없다… 이것 보시오. 난 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면 내 두 눈이라도 주겠소.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어디 있습니까? 그들은 동시에 손가락을 가리켰다. 뿌연 안개가 깔린 나무 아래 침대가 놓여 있었다. 그 위에 석대의 아버지가 죽은 시신으로 누워 있었다. 석대는 죽을힘을 다해 아버지에게 다가가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러자 시커먼 장정들이 앞으로 가로 막았다. 이놈을 빨리 끌고 가서 콩밭과 두 눈을 파고 구덩이에 파묻어 버려! 석대가 네 명의 장정들에게 의해 어디론가 질질 끌려가는데, 그때 천성수 씨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서 이 고얀 놈들 우리 아들은 안 된다!라고 소리쳤다. 그 순간 장정 하나가 천성수 씨의 복부에 칼을 꽂았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고, 석대는 몸을 날려 피투성이로 쓰러진 아버지를 안았다. 그런데 그 얼굴은 자신의 얼굴이었다. 석대는 너무 놀라 앗 비명을 지르다가 깨어났다. 때마침 빈 휠체어를 끌고 병실로 들어선 반송댁이 아들의 얼굴을 보고 심하게 나무랬다. 아이고, 이 불효막심한 것아! 너 또 누구랑 싸웠냐? 어무이요. 내가 아홉 살 짜린교? 싸우긴 누구와 싸우능교? 아버지는 왜 안 보이능교? 석대는 반송댁과 대화를 하면 절로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너그, 아부지는 수술이 너무 잘돼서 회복실에 있다 아니가? 참, 니 시집 낸 출판사 배사장이라 카면서 니 핸드폰이 안돼서 미치겠다고, 너 때문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카더라. 도대체 무슨 소리고? 어무이요. 그보다는 천만 원 수술비가 어디서 났능교? 참, 이상 체? 누가 수술비를 내고 갔다 카더라? 안 그래도 나도 궁금해 죽겠다. 어무이, 자세히 좀 말해보이소. 혹시, 니랑 어울려 다니는 운봉 거사가 병원비를 낸 거 아니가? 그 사람이 무슨 돈이 있어서요. 순간 무의식적으로 석대는 배에 손이 갔다. 소스라쳐 주머니를 뒤졌다. 꼬깃꼬깃한 명함에는 인체의 눈, 콩밭 등을 사고팝니다. 070-XXX-4444라고 적혀 있었다. 일주일 전이었다. 부산역의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챙 모자로 얼굴을 가린 사내가 건네주기에 받은 명함이었다. 명함에 적힌 내용이 너무 끔찍했지만,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간직한 것이었다. 석대야. 그럼, 천 씨 문중 사람들 중에 누가 낸 거 아닐까? 어무이, 모두들 자기 살기도 바쁜데 누가 그 큰돈을 내줘요? 그렇긴 하다. 우선 아버지의 목숨을 구했으니 은인을 천천히 찾아보자. 석대는 어머니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휑하니 병실 문을 열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반송댁은 곁에 아들이 있는 줄 알고 침대를 정리하면서 거의 습관이 된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니 인자 시 그만 쓰면 안 되나? 그게 밥이 되나 돈이 되나? 제대로 된 직장을 찾던가 아버지 목공소를 반듯하게 맡아서 하던가…
#4. 하늘이 알고 돕는 효(孝) 겨우내 꽁꽁 얼었던 석대천 물소리가 실타래처럼 풀려 흘러갔다. 정려각 올라가는 길가의 전봇대와 전봇대 사이 걸린 현수막 (천석대 시인의 불멸의 효자꽃출판 기념회 및 시화전) 이 바람에 나부꼈다. 효자촌(하리마을)사람들이 나와서 행사장으로 올라가는 손님들을 안내하였다. 그들 속에는 큰 카메라를 울러 맨 방송국 사람들도 보였다. 교복을 입은 청소년들도 있었다. 석대는 아버지가 수술을 받고 예전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 기적 같았다. 이 모든 것이 반송댁 어머니의 말씀처럼 하늘이 돕고, 조상님이 도운 거같았다. 그러니까 신대륙 백화점 앞에서 석대가 비둘기 발목에 낚싯줄을 풀어주는 모습과 아버지의 수술비를 구하기 위해 출판사 창고 안에 쌓인 시집을 팔러 나온 석대가 익명의 존재들로부터 억울하게 폭행을 당하는 모습 등을 운봉 거사가 인터넷 카페에 사진과 동영상을 올렸다. 이를 인터넷 매체 시민 기자가 기사화한 것을 네티즌들이 블로그와 카페와 페이스 북을 통해 전파한 것이다. 하룻밤 자고 나니 유명인이 되었다는 말처럼, 아마추어 시인 천석대의 시집은 불티나게 팔려나간 것이다. 천석대가 굳이 출판기념회와 시화전을 정려각 마당에서 개최하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할아버지의 살아생전 소원은 정려각 마당에서 동래학춤 추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죽은 조상도 섬기며 돌보아야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신 분이셨다. 웅성거리는 인파 속에 휠체어 타고 계신 아버지의 모습도 보이고, 7년간이나 만났지만 사랑한다는 고백 한번 안하는 머저리 같은 남자랑 더 만나고 싶지 않다고 결별의 문자를 날리고 소식을 끊어버린, 여친 인영이의 모습도 보였다. 가난했지만 부모님을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았던 오효자(五孝子)일효부(一孝婦)의 아름다운 정신의 향기를 사모하는 시민들도 정려각을 향해 모여들었다. 장단에 맞추어 어렵게 초대한 동래학춤 기능 보유자들이 하얀 두루마기에 검은 삿갓을 쓰고 나와 춤을 추자, 많은 사람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다. 장산에서 추마산에서 운봉산에서 다투어 하얀 학들이 날아드는 마당은 천년의 효자꽃 향기로 진동하였다.
■ 송유미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