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의 나무> 수영강 팽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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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협력과 작성일 2023.02.01

수영강은 경계다. 강 저쪽은 수영구, 이쪽은 해운대구다. 수영구 강변은 조선 수군이 주둔하던 역사와 수영야류, 좌수영어방놀이 같은 전통예술을 품었다. 해운대구 강변은 부산 최초 비행장이 있던 역사와 영화의전당, 센텀시티 같은 첨단문화를 품었다.
강 이쪽저쪽은 대표하는 나무도 다르다. 수영구 강변은 벚나무가 대표하고 해운대구 강변은 팽나무가 대표한다. 수영강을 가운데 두고 강 따라 이어지는 벚꽃은 수영구를 화사하게 한다. 수영교 다리 초입에 치솟은 팽나무는 해운대구를 높다랗게 한다.
팽나무는 포구나무라고도 한다. 해풍을 막느라 포구마을에 많이 심었다. 여기 팽나무도 원래는 강서구 가덕도 천가동 섬마을 율리에 있었다. 500살 금실 좋은 할아버지, 할머니 나무였다. 가덕도에 일주도로가 놓이면서 금실 좋은 나무는 뒷방으로 밀려날 처지에 직면했다. 베느냐, 옮기느냐.
차마 벨 수는 없었다. 나무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고 오며 가며 나무에 치성을 드렸을 아버지의 아버지, 어머니의 어머니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그 마음이 부산을 움직였고 그 마음이 마침내 나무를 살렸다. 바다 건너 수영강 해운대구 강변으로 고이 모셨다. 그때가 2010년 춘삼월 봄날이었다. 팽나무 안내판은 그날의 감흥을 대단한 경험으로 표현한다.
(…) 2010년 3월 29일. 정든 고향과 추억을 뒤로한 채 뭍으로 떠나오던 그날…. 우린 참 대단한 경험을 했지. 생전 처음 바지선에 몸을 싣고 바다를 건넜고 커다란 트레일러를 타고 도로도 달려보았어(…).
팽나무 이송은 잘 짜인 드라마였다. 나무를 살려야 한다는 부산의 마음이 기획과 연출을 맡았다. 배우는 할아버지, 할머니 팽나무. 편성표는 날짜별로 시간별로 촘촘하게 짰다. 2010년 3월 11일 성공적 이식을 기원하는 율리마을 제사. 3월 23일 굴착기를 이용한 굴취 작업. 3월 29일 아침 7시 바지선 두 척에 싣고 출발. 저녁 7시 해운대 우동항 입항. 3월 30일 새벽 1시 육상운송. 새벽 5시 해운대 APEC 나루공원 도착. 아침 8시 이식 완료.
"나무가 그윽해 보이네요. 잔가지가 눈가 잔주름처럼 보여서 안쓰럽기도 하고요."
나루공원 팽나무는 눈빛이 그윽하다.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님 눈빛이다. 오며 가며 치성을 드렸을 아버지의 아버지 간절한 눈빛이며 어머니의 어머니 간절한 눈빛이다. 눈빛 그윽한 부모님 눈가에 잔주름 늘어나듯 노부부 팽나무는 잔주름 일색이다. 나무를 보러 일부러 왔다는 외지인은 상상력이 시인이다. 팽나무 잔가지를 사람의 잔주름이란다.
그렇게도 보인다. 여기 팽나무 잔가지는 자식 걱정으로 늘어난 부모님 잔주름 그것이다. 어디라 할 데 없이 쭈글쭈글하고 오그라들었다. 사람도 100년을 살면 그렇거늘 500년을 산 나무는 오죽할까. 팽나무 쭈글쭈글하고 오그라든 잔가지는 세월의 더께이면서 팽나무 마음의 두께다.
팽나무의 마음. 세찬 해풍에서 마을을 지키려는 마음이었고 노략질 일삼던 왜구에 마을을 가리려는 마음이었다. 막중한 그 일을 팽나무는 잔가지에 맡겼고 이파리에 맡겼다. 한 달을 헤아려도 다 헤아리지 못할 잔가지에 한 해를 헤아려도 다 헤아리지 못할 이파리를 피우고서 포구마을을 지킨 나무가 팽나무다.
노부부 팽나무를 고이 모신 곳은 수영강 하류. 강과 바다가 여기서 만난다. 아버지의 아버지 눈빛이 스미고 어머니의 어머니 눈빛이 스민 나무가 하루도 안 거르고 매일매일 굽어보시니 강도 수더분하고 바다도 수더분하다. 수더분하게 밀려왔다간 수더분하게 밀려간다. dgs1116@hanmail.net
동길산 시인

<해운대의 나무> 수영강 팽나무

<해운대의 나무> 수영강 팽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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