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곤의 해운대 역사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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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통협력과 작성일 2019.05.08

외항선 기관장에서 교수, 셰프, 클래식 마니아까지

벨 프롬나드 대표
강희영 부경대 교수

동네 도서관 미술관
더욱 많이 건립돼
문화예술 확산되기를

음대 지망생이 외항선 기관장이 되어 20년 동안 오대양 육대주를 누볐다. 그리고 학위를 따려고 프랑스에 갔다. 입학심사를 하던 날 담당 교수가 출장 가느라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2년 동안 현지 가정식 요리를 배웠다. 한국으로 돌아와 석·박사 학위를 취득해 모교 교수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노신사가 된 그는 오너 셰프 겸 소믈리에, 대학교수, 선박 주기관 전문가, 클래식 음악 동호인이다. 그런데 명함에는 색소폰 연주자라고만 적혀있다.
해운대 마린시티에 자리 잡은 선프라자 상가 2층 벨 프롬나드에 들어서니 주인장인 강희영 부경대 연구교수가 문 밖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30초가량 지났을까, 행진곡 풍의 선율이 커다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에드워드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이라고 한다. 어떤 곡이든 방문객을 맞이하는 환영 인사임이 분명하다.
그 날 아침식사 도중 TV를 통해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가운데 프롬나드 부분 연주를 잠깐 들었는데, 저녁에 벨 프롬나드(Belle Promenade)를 찾다니 묘한 인연이다.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산책, 즉 맛있는 음식과 음악, 인생을 느긋하게 음미하며 즐기는 곳이라고 할까.
충남 보령에서 태어난 강 교수는 청소년 시절을 대전에서 보냈다. 중학생 때 베토벤의 영웅, 운명, 전원 교향곡을 자주 들었다. 멜로디를 외우고, 악보를 익히며, 거울 앞에서 지휘자 흉내도 냈다. 고등학생 땐 방송반 활동을 하면서 고전음악을 더욱 자주 접하게 되었다. 음대에 진학하려니 적지 않은 레슨비용이 가로막았다. 알토 색소폰 연주를 배워 강원도 최전방 군악대에서 복무했다. 영하 30도 강추위 속에서 악기에 부동액을 칠해 전차 중대장 이·취임식 행사 연주를 했던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넓디넓은 바다를 통해 세계로 진출하겠다는 꿈을 지니고 부산수산대(현 부경대) 기관학과에 진학했다. 마도로스 시절 브라질에서 출항해 아프리카 케이프타운 앞바다를 지나는 항해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안개가 짙은 해역에서 거친 파도에 휩쓸려 선박이 급강하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강 교수는 "죽음을 몇 차례 경험해보면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고 술회한다.
80개국을 다녔다. 기항지마다 음반을 구했다. 클래식 음반은 물론, 이탈리아에선 오페라와 칸소네, 프랑스에선 샹송, 미국에선 재즈 등 나라마다 독특한 장르에 역점을 두었다. CD로 8천여 장이 모였다. 클래식이 60%, 재즈 관련 30%, 파이프 오르간과 팝 뮤직이 나머지란다. 파이프 오르간 CD가 희귀하다고 꼽는다. 재즈 색소포니스트인 소니 롤린스와 찰리 파커의 음반을 가장 애호한다. 어느 하나라도 그의 삶과 열정이 스며들지 않은 게 없으리라.
미항(美港) 호주 시드니, 문화의 보고 프랑스 파리, 폴란드 그다니스크의 올리바 성당이 인상 깊었던 곳이다. 레흐 바웬사가 노동운동을 했던 조선소 도시에서 들은 파이프 오르간의 울림을 잊지 못하는, 타고난 음악 마니아다.
웬 복(福)이었을까. 1954년 미국 JBL이 내놓은 하츠필드(Hartsfield) 스피커를 1997년 구입했다. 미국 라이프(Life)지가 궁극적인 꿈의 소리라고 극찬했던 세계 3대 명기(名器)가 대구의 의사 집 장롱에서 10년 동안 잠자고 있다가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났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고향인 상트페트르부르크에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건립한 마린스키Ⅱ 극장에서 공연한 프로코피에프의 발레곡 로미오와 줄리엣 VOD를 잠깐 감상했다. 음악과 발레는 제쳐두더라도 생생한 음향과 선명한 화질 덕분에 이곳이 극장 귀빈석인 듯하다.
고전음악을 애호하는 지인들의 도움으로 음악감상실과 레스토랑, 사랑방 겸용으로 이 공간을 4년 전에 마련했다. 음악을 사랑한 벗들은 무엇보다 하츠필드의 꿈같은 음향을 즐겨 듣고 감성적 위안을 받고 싶었던 까닭이었을 게다. 그 멤버들은 딱딱하고 꽉 막힌 아파트 문화에서 벗어나고자 여덟 가구가 모여 살 수 있는 전원주택을 일광에 지었다. 문화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작은 프랑스 마을, 쁘띠 프랑스 같은 삶을 기다려왔던 강 교수가 아닌가. 게다가 재즈 색소폰 즉흥연주를 이론과 함께 실기를 가르칠 수 있다면 더 할 나위없는 즐거움이리라.
부산의 문화 정책에 대한 조언을 청했다. 강 교수는 "동네 도서관, 음향 도서관, 마을 미술관이 더욱 많이 건립돼 문화예술 운동이 확산되기를 바란다"면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로열 콘서트헤보우 교향악단을 사례로 들었다. 1860년대 시민 대여섯 명이 발기인이 되어 땅을 마련하고 극장을 지어 교향악단을 출범시켰는데 3만 5천여 명이 후원하게 되었다. 1985년에야 왕실의 허락으로 로열 칭호를 사용하게 됐고, 2008년 클래식음악 전문지 그라모폰이 선정한 세계 최고의 교향악단에 올랐다.
한국 아동을 입양한 부부와 낮엔 요리사, 저녁엔 태권도 사범인 프랑스인 친구로부터 배운 요리가 음악과 벗들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음식은 몸을, 음악은 정신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해피니스 호르몬이다. 중국 당나라 시인 유우석의 시 누실명(陋室銘)처럼 신선과 용이 살아야 산과 물이 이름이 나듯이, 맑은 기운 가득해 좋은 벗들이 찾아오는 곳을 어찌 누추하다고 하겠는가. 

*박병곤, 언론인

박병곤의 해운대 역사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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