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의 자연마을 재송동 뒷골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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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광문화과 작성일 2018.09.10

소나무 울창한 산고수려한 산촌이었던 뒷골마을


뒷골 안골 서당골
통칭해 뒷골이라 불려


도시화 물결에 따라
주택과 아파트 즐비


재송재실 뒤 송림
옛 정취 남아있어


 


* 뒷골마을
옛날 뒷골마을은 소나무가 울창해 산고수려(山高秀麗)한 산촌으로 뒷골, 안골, 서당골이라 불리어 온 세 계곡이 있었다. 지금의 해운대경찰서가 있는 지역이 뒷골이고, 북쪽 삼익아파트가 있는 지역이 안골이고, 송 씨 문중 재실인 재송재(栽松齋)가 있는 자리가 서당골이다. 이 세 계곡을 통칭하여 뒷골이라 불러왔다.
<동하면고문서>에 의하면, 후장(後場)과 승당(僧堂) 두 곳에서 전선(戰船)을 수리하는 목재를 찍어 줄 때에 접대하는 등의 일은 재송동이 담당하고, 포이진이 나룻배를 개조할 때 벌목하고 운반하는 일의 품삯 등은 다섯 마을(재송·우동·중동·좌동·해동)이 호구 수에 따라 거두는 것으로 되어 있다. 후장은 재송동에 후곡이라는 지명이 있어 현 재송동 지역으로 추정된다.
뒷골마을에 고가(古家)가 있다. 임진왜란(1592년) 당시 마을 이름에 송(松)자가 들어 있으면 피난처가 된다고 하여 충청도 회덕에서 이곳 뒷골마을로 피난 와 지금까지 살아 온 고가(古家)인데 아직도 약 10가구가 살고 있다. 이 가문은 은진 송 씨 삼성공파 문중으로, 집성촌을 송촌(宋村)이라고도 불렀다. 송 씨 조상들이 대대로 뒷골에서 서당을 개설해 후학을 길러와 그 서당이 있던 자리를 서당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들의 족보에 의하면, 송응지(1525~1588)가 서당골에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1982년 후손들이 은진 송 씨 삼성공파의 선영지에 선조들의 시사봉행(時祀奉行)을 위하고 후손들의 화목을 돈독하게 하기 위해 재실을 건립했다.
재송동의 고문중(古門中)이란 뜻에서 재송재라 명명하고 문호(門號)는 시조의 호를 따서 삼성문(三省門)이라 하였다. 재송재실 뒤편에는 송림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정원에는 서당골 물이 그대로 흘러내리고 있어 옛 자취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으로 남아있다.
1988년 송촌 서당골, 서당이 있었던 자리에 문중 조상의 유업인 서당을 재현하는 뜻에서 송문삼성학습원(건평 500평, 5층 건물)을 건립했다. 이 학습원에는 독서실, 도서실, 서예실, 고시숙을 운영했다. 이는 은진 송 씨 문중에서 옛 조상의 유업인 서당을 연상케 하면서 특색을 살린 교육기관으로 설치한 학습원이다. 지금은 관음사 사찰로 운영하고 있다. 재송재(栽松齋, 재송2동 215번지)는 서당골에 자리 잡고 있으며, 삼성공파 후손들이 선대(先代)의 입향 유적지에 건립한 재실이다.
뒷골마을 지역이었던 곳에는 삼익아파트 등 아파트가 들어서고 주택지로 변하면서 도시화 물결에 휩싸여 아름드리 소나무로 울창하였던 옛 정취를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새마을 당산은 재송1동 새마을 뒤 산정 바로 밑에 자리 잡고 있다. 산신제와 당산제를 차례로 지낸다. 제의는 9월 9일 자정에 지내며, 연 1회 올린다. 당산에서 앞쪽으로 보면 센텀시티와 민락동 백산이 마주 보이며, 왼쪽으로 보면 해운대의 동백섬이 바라다 보이는 전경이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해운대의 자연마을 재송동 뒷골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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