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의 자연마을 - 반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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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광문화과 작성일 2018.03.08

희망의 터전 무지개… 세 명 어사 배출한 삼어


70년대 수재민 대거 이주
지붕에 알록달록 색깔 칠해
무지개마을이라 불려


어사 배출 기념한 어사탑
세월따라 흔적없이 사라지고
한국전쟁 때 미군부대 주둔
중군진산 기운서린 삼어마을


 


무지개마을
무지개마을은 이주민 정책촌이다. 지금은 반여2동과 반여3동으로 행정구역이 나누어져 있으나, 무지개마을이 생기기 전에는 반여2동 지역은 무정마을에 속했고, 반여3동 지역은 중리마을에 속했다. 중리마을은 목동들이 소를 먹이는 장소였고, 야생동물과 새들의 보금자리인 천혜의 명소였다. 반여2동은 1972년 9월 서구 구덕수원지 수재민 165세대가 이곳으로 이주하며 형성됐다. 이후 계속되는 이주정책으로 인구가 증가하자 1973년 4월 20일 반여동에서 반여1동과 반여2동으로 분동됐다.
1973년 10월 동구 좌천동 고지대 철거민 1천643세대가 이주해 왔다. 이후 1974년 12월 중구 영주동에서 1천145세대가 이주해 오고, 1975년 12월 동구 초량동의 802세대도 이주해 와 동세가 커져, 1979년 8월 반여2동이 반여2동과 반여3동으로 분동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철거민 이주 당시만 해도 가옥이 10여 평으로 협소한 연립주택이었으나 주거환경 개선사업이 활발하게 전개돼 지금은 현대식 건물 빌라로 재건축됐다.
반여3동은 1979년 8월 반여2동에서 분동된 부산 고지대 철거민 정책 이주지역으로 마을이 형성된 내력은 반여2동과 같다.
무지개마을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1972년 부산시에서 시내 재개발 사업추진과 고지대 무허가 건물 철거 시 이곳에 10여 평의 협소한 연립주택 건물 지붕 위에 블록별로 빨강, 파랑, 노랑색 등의 페인트칠을 해 멀리서 바라보면 무지개를 연상하게 한다하여 무지개마을이라 했으나, 새로 정착하는 이주민들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 주기 위해서 붙인 마을 이름이기도 하다.
또한, 장산로에는 고층 건물이 하늘 높이 우뚝 서 있고 장산 기슭 높은 곳까지 아파트 단지가 조성돼 산 속의 도시화된 마을이다.


삼어마을
삼어마을은 반여1동의 서쪽 수영강 건너편에 강을 인접하고 반여4동(2005년 9월 1일 반여1동에서 분동)의 1~2통 지역으로, 지금의 반여·창신아파트 주변 일대로 반여동에서 가장 오래된 자연마을이다.
1937년 간행된 <동래군지>에는 중군진산(中軍陣山)은 군의 동쪽 5리에 있다고 기록돼 있다. <조선왕조실록> 세조 권2(1455년 세조 1)의 계미조에 경상도 군익도편성표의 동래진을 보면, 우익(右翼)은 울산(蔚山)이고, 중익(中翼)은 동래(東萊)이며, 좌익(左翼)은 기장(機張)으로 되어 있다. 중군진산은 당시 중익군의 진지가 있었던 곳이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중군진산에 미군부대가 진지를 구축하고, 전후·방 교대 시 부대가 주둔해 중군진산의 면모를 갖췄다.
본래 삼어마을은 중군진산이 끝나는 곳(지금의 대우마리나 아파트)에 형성돼 있었다고 한다.
삼어(三漁)는 마을 세 곳의 돌탑이 어사탑으로, 어사가 세 사람 나왔다하여 붙여진 마을 이름이라 한다.
돌탑 1기는 강변도시고속도로 쪽에 있어 탑 거리라 하였고, 돌탑 2기는 반여아파트 안에 있었고, 돌탑 3기는 대우자동차 출고장 자리에 있었으나 모두 마을 사람들이 담장 등으로 사용해 지금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일제강점기 때 마을 이름에 천자 어(御)자를 사용해서는 안 되니, 고기 잡을 어(漁)자로 바꾸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반여4동 우방아파트 위쪽에서는 고기를 잡았다. 바다에서 수영강 상류로 올라오는 고기들은 봄철에는 황어, 여름철에는 은어, 가을철에는 연어가 있었다. 봄철에 황어가 오르면 농부는 괭이로 때려잡았고, 달빛의 여울물을 치고 오르는 은어 떼가 장관이었으며, 가을철에는 연어가 풍년을 알리기 위해 고향을 찾아 먼 바다에서 온 손님과 같았다. 이 세 종류의 고기를 잡았다고 해서 고기 잡을 어(漁)자를 붙여 삼어(三漁)라 했다고도 한다.
1904년 간행된 <경상남도동래군가호안>에 의하면, 동상면 관내 삼어동이 있다. 당시 삼어동의 호수는 15호다. 박·문·김 씨 등의 성씨가 살고 있었다라고 하였다.
1980년 반여동이 준공업지구로 선정되자 삼어마을에는 우후죽순 공장이 늘어나 공업지대가 됐다. 삼공피혁(현대아파트 자리), 프리나 사료(일동아파트 자리), 우성화학(우신아파트 자리), 범양사(신동아파트 자리), 삼화방직(우방아파트 자리) 등의 공장들이 마을 변두리에 들어서 경제건설의 마을이 됐다.
2000년대부터 공장이 하나 둘 타지로 이전함에 따라 그 부지가 고층 아파트 단지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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