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책 - 공부하라, 아이가 어미를 찾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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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광문화과 작성일 2018.03.08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하라
닭이 알을 품고 고양이가 쥐를 노리듯이
굶주린 자 밥을 찾고 목마른 자 물을 찾듯이
어린 아이가 어미를 찾듯이


切心做工夫 如 抱卵 如猫捕鼠   如飢思食 如渴思水 如兒憶母
절심주공부 여계포란 여묘포서   여기사식 여갈사수 여아억모


-휴정(休靜, 1520~1604), <선가귀감(禪家龜鑑)>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하라. 고3 교실에 붙어 있을 법한 글귀다. 열심히 공부하여 더 좋은 대학에 가라, 더 좋은 직장에 가라, 더 높은 지위에 오르라, 더 많은 돈을 벌어라, 우리 사회에서 보통 공부는 그런 것이다. 휴정도 그런 뜻으로 간절히 공부하라고 한 것일까.
서산대사(西山大師) 청허당(淸虛堂) 휴정은 임진왜란 때 침략한 왜적을 무찌르는 데 앞장선 승려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사명 유정(四溟 惟政), 소요 태능(逍遙 太能), 편양 언기(鞭羊 彦機) 등의 수많은 문도를 양성하고 <선가귀감>, <삼가귀감(三家龜鑑)>, <선교석(禪敎釋)>, <심법요초(心法要抄)>, <운수단(雲水壇)>, <청허당집(淸虛堂集)> 등의 여러 책을 저술하여 조선 후기 불교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기도 하다.
<선가귀감>은 그의 저술 중의 하나로, 여러 불교 전적에서 귀감이 될 만한 글을 뽑아 해설을 붙인 책이다. 일찍이 언해(諺解)되었고, 조선 후기에 다수 간행되었으며,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도 전래되어 여러 차례 간행되었다.
휴정이 간절한 마음으로 하라고 한 공부는 다름 아닌 수행이었다. 공부(工夫)는 불가와 유가에서 모두 쓰였던 말이므로, 수행이라고 풀이해도 좋고, 수양이라고 풀이해도 좋다.
분명한 것은 그 공부가 자신의 삶과 유리된, 수단으로써의 공부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출세의 수단으로써의 공부가 아니라 삶의 문제에 대한 진실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갈고 닦는, 그리하여 자신과 타인을 더 좋은 삶으로 이끄는 공부를 지향했다고 할까. 이제야 위 글귀가 조금 이해된다. 삶의 문제에 대해 성찰하고 성찰하라, 노력하고 노력하라, 그 간절한 마음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이것이 휴정이 간절히 공부하라고 한 말의 속뜻이 아닌가 한다.
저명한 과학사학자인 나오미 오레스케스와 에릭 M. 콘웨이는 <다가올 역사, 서양문명의 몰락>에서 현대 문명이 몰락한 300년 후의 암울한 미래상을 그렸는데, 인류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진단하였다.
사실 가장 놀라운 점은 이들의 지식이 무척 방대했다는 점, 그런데도 지식에 따라 행동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아는 것이 힘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라고 말이다.
이는 지식이 수단이 되는 세상, 공부가 수단이 되는 세상에 대한 경고와 다름없다. 지식이, 공부가 삶과 괴리될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에 대한 섬뜩한 경고라고 할 수 있겠다. 오늘날 보통 우리가 하고 있는 바로 그 공부 말이다. 혹여 섬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오늘이라도 선현들이 하라고 했던 그 공부를 한번 돌아보아도 좋겠다. 간절한 마음으로.


손성필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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