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곤의 해운대 이야기 - 해운대 저녁달은 볼수록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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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광문화과 작성일 2018.03.08

와우산에서 솔바람 맞으며
망망대해 바라보는 즐거움에
보름달 맞이하는 호사 누린다면
더이상 무슨 노래가 필요할까


이번 정월 대보름엔
해월정에서 무슨소원 빌어볼까


 


미포에서 대구탕 국물 몇 모금을 들이키고 달맞이 길을 오른다. 바람이 불어 쌀쌀한 날씨이지만 그래도 견딜만하다. 봄이 멀지 않았다는 신호다. 개나리가 노란 함박웃음을 터뜨리고 벚꽃이 춤을 추는 꽃 대궐이 곧 펼쳐지리라.
문탠로드 입구다. 달이 저 많은 사스레피나무 가는 가지마다/마른 솔잎들을 촘촘히 걸어 놓았다 달빛인 양/지난 밤 바람에 우수수 쏟아진 그리움들… 박진규 시인의 문탠로드를 빠져나오며라는 시가 나그네를 반긴다. 숲 속으로 내려간다. 문탠로드는 어색한 조어이지만, 달빛 꽃잠 길, 달빛 가온 길, 달빛 바투 길, 달빛 함께 길, 달빛 만남 길 등 아름다운 우리말로 명명된 오솔길이 이어진다. 바다 저 멀리 오륙도와 이기대, 광안대교, 동백섬이 보인다.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민 햇님이 금물결, 은물결을 선사한다.
달맞이 어울마당을 지나 달맞이 길로 올라선다. 춘원 이광수 선생이 1929년에 쓴 시조 해운대에서라는 시비가 보인다. 누우면 산월(山月)이요 앉으면 해월(海月)이라/가만히 눈감으면 흉중에도 명월(明月)있네/오륙도 스쳐가는 배도 명월 싣고 가더라… 시인은 잠을 이룰 수 없다. 이 청풍(淸風) 이 명월을 두고 어찌 해운대를 떠날 수 있으랴. 한때 친일 행적을 문제 삼아 시비를 철거하자는 여론이 있었지만, 해운대의 풍광을 노래한 이만한 절창(絶唱)이 있었던가.
해월정(海月亭)이 보인다. 1997년에 팔각지붕 2층 정자로 지어졌다. 건립된 지 아직 20년에 불과하니 옛 문인들이나 명사들의 시편은 보이지 않고 달맞이 길의 유래와 절경을 노래한 편액 2점이 눈에 띈다. 소가 누운 형상인 와우산(臥牛山) 언덕에서 솔바람 향내를 맡으며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즐거움에다 정월 대보름 밝은 달을 맞을 수 있는 호사를 누린다면 더 이상 무슨 노래가 필요하겠는가.
해운대 보름달은 일제 강점기 시절 평양 권번 출신인 가수 선우일선이 부른 신민요 대한팔경으로 이름을 떨쳤다. 석굴암 아침 경(景)은 못 보면 한(恨)이 되고, 해운대 저녁달은 볼수록 유정(有情)하다… 일출은 경주 토함산에서 월출은 해운대에서 봐야 한다는 공식이 아닌가. 1960∼1970년대 정월 대보름이면 미포를 지나 구덕포로 가는, 지금은 폐선된 동해남부선 철로에 있던 고두백이까지 달맞이하려는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시내버스 이외 대중교통 수단이 거의 없었던 그 시절, 정월 대보름달을 본 뒤 지금의 올림픽교차로, 또는 수영교차로까지 걸어서 귀가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달은, 특히 정월 대보름달은 어찌하여 경배의 대상이 되었을까. 태양이 남성, 즉 양(陽)을 상징한다면 달은 여성, 곧 음(陰)을 뜻한다. 그러니 달은 어머니이자 고향이다. 그리움의 또 다른 이름이다. 농경사회에서는 음력을 기준으로 24절기에 맞춰 농사를 지었으므로 정월 대보름은 한 해 농사의 출발점이다. 달집태우기, 쥐불놀이, 방생, 오곡밥, 귀밝이술, 부스럼 깨기 등 다양한 세시풍속이 전승되었다. 선남선녀들은 아름다운 인연을, 농부들은 풍년을, 부모들은 가족의 건강과 자녀들이 평안하기를 기원해왔다.
중국에서는 항아(姮娥)를 달의 여신이라고 한다. 항아는 전설적인 궁수 예의 아내였는데, 남편이 서왕모(西王母)에게서 받은 불사약을 혼자 먹고 달나라로 달아나 신선이 되었다는 것이다. 달에는 계수나무가 있고 토끼가 떡방아를 찧는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중국이 유인 우주선을 달에 보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항아공정(姮娥工程)이라고 이름 붙였던 유래다.
달과 술의 시인 이백(李白)은 월하독작(月下獨酌)이라는 시에서 꽃 사이에 술 한 병 놓고/벗도 없이 홀로 마신다/잔을 들어 밝은 달을 맞이하니/그림자 비쳐 셋이 되었네/달은 본래 술 마실 줄 모르고/그림자는 그저 흉내만 낼 뿐/잠시 달과 그림자를 벗하여/봄날을 마음껏 즐겨보노라…라고 노래했다. 시인은 낭만적 정취에 젖은 듯하나, 벼슬에서 쫓겨나 천하를 떠돌아다니는 외로움이 짙게 묻어난다.
달은 감정이입의 수단이기도 하다. 백제의 가요인 정읍사(井邑詞)는 달하 높이곰 도다샤/어기야 머리곰 비치오시라…라며 행상을 나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 남편의 무사 귀가를 달에 의지하여 기원했다. 신라시대 향가 원왕생가는 달이 어째서/서방까지 가시겠습니까/무량수불전에/보고의 말씀 빠짐없이 사뢰소서/서원 깊으신 부처님을 우러러 바라보며/두 손 곧추 모아/원왕생 원왕생…이라며 달의 초월적 힘에 청원하였다.
이번 정월 대보름엔 해월정에서 무슨 소원을 빌어볼까.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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