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성의 세상 이야기 - 마스크와 사회적 거리 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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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통협력과 작성일 2020.08.05

너무 지나치게 연결된 사회, 재난의 양극화
마스크 착용은 침묵과 경청의 가치 일깨워
영혼 없는 만남과 사교는 자제할 필요
마스크 묵언으로 정신의 근육 살찌우기

고슴도치 딜레마란 말이 있다. 추위가 오면 서로 온기를 나눠야 하는데 너무 가까워지면 상대방 가시에 찔려 아프고, 서로 떨어져 있으면 추워 적정 거리를 놓고서 고민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적정거리를 찾는다는 이론이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새삼 고슴도치의 거리를 생각해본다. 인간이 성숙해지는 단계도 타인과 적당한 거리 두는 방법을 체득하는 것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너무 가까이 있어서도, 너무 멀리 있어도 안 좋은 상태)과 정중동(靜中動. 고요하면서도 내면은 활발함)은 쿨(cool)과 핫(hot) 사이의 절묘한 밸런스 찾기다. 우리 지구에 생명체가 존재하는 이유도 태양과 너무 가까이도, 너무 멀리 있지 않는(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는) 불가근불가원의 공간 배치였기에 가능하다.
바쁘시죠?가 인사말이 되었듯이 현대인은 고독할 틈을 주지 않았다. 침묵의 중요성을 깨우쳐주는 곳이 베네딕트 수도원 소속의 프랑스 몽생미셀이다. 몽생미셀은 미카엘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바다 위 외딴섬처럼 있는 몽생미셀은 백년전쟁 때는 군사시설과 주민 대피처로 이용되기도 했다. 현재의 몽생미셀은 수도원과 요새의 모습이 함께 있는 모습이다.
몽생미셀은 금언 수행과 난방을 하지 않는 엄격한 규율을 가지고 있다. 특히 금언을 중시했는데 불가의 묵언수행 같은 수양법이다. 수도사들이 식사 중에 대화를 못하게 식탁도 어긋나게 놓여 있다. 또 이동 동선도 겹치지 않게끔 설계돼 있다.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수행에 정진하자는 취지다.
코로나19 사태는 우리가 너무 지나치게 만나며 연결되었다는 것을 깨우치게 한다. 밀집 공간 노동자들과 서민들이 더 피해를 받고 있는 것은 재난의 양극화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런데도 이번 사태가 성찰의 계기들을 제공하고 있어 꼭 비관적으로 볼 일은 아닌 것 같다. 공장이 가동하지 않자 미세먼지가 줄었고, 히말라야 정상은 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에서는 멸종위기 흰 고래와 거북이들이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이다.
또 우리가 잊고 지내던 침묵과 고독, 경청의 가치를 살리고 있다. 통상 불편한 것으로 여겨지는 마스크. 그런데 여기에는 입을 닫고 귀는 열어두는 침묵과 경청의 미학이 스며들어 있다.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은 그동안 함부로 내뱉었던 말들에 대한 반성이자 앞으로 내면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다짐인 것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실체 없는 말을 떠벌려야 먹고 사는 일부 정치인들은 마스크를 거절한다.
고독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사교 활동은 에너지의 4분의 3을 낭비하는 것이라며 고독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부유한 사업가의 아들이었던 그는 식사를 할 때도 타인이 앞에 앉는 게 싫어서 미리 2인분을 시켰다.
성인은 하루 에너지의 20% 정도를 뇌 활동에 소비한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진화론적으로 뇌 활동량을 줄이려 다시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고정 관념을 선호하는 습성이 있다. 집중적인 성찰과 창조적인 생각을 위해서도, 뇌 에너지를 아껴 쓰며 공허한 사교 활동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적당한 거리는 버스에서 느끼는 상큼함과 흡사하다. 고립된 자동차와 왁자지껄한 전철과 달리, 적당한 거리에서 함께 쓴다는 공유의 미학이 있다. 빈 좌석에 않아 차창 밖으로 풍경들의 사소한 내부들을 바라보는 것도 즐겁다.
나의 천국에서 잘 지낼 수 있는 고독은 동력에 의존하지 않고 자전거 페달을 밟는 행위다. 완벽한 연결을 추구하면 완벽한 공허가 따른다. 완벽한 공허는 자기파괴적인 모습으로 가끔 나타난다. 새가 재잘거리는(tweeting) 것같이 트위터에 글을 올려도 허무할 뿐이다. 우리는 너무 습관적으로 만나는 것 같다. 법정 스님은 영혼의 떨림이 있을 때 타인을 만나라고 했다. 배가 고파야 배부른 것을 알 수 있듯이, 홀로의 외로움을 의연하게 통과한 이후의 만남이 참된 것이다.
입은 화를 불러들이는 원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라는 말이 있다. 마스크를 쓰면서, 말로 인해 마음을 다쳤을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사과하며 내면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이번 주에 마스크 묵언으로 장산 계곡을 향해서 느긋한 발걸음을 떼는 것은 어떨까.

박 태 성
· 부산대 불어불문학과 졸업/영국 스태퍼드셔주립대학교(사회문화학과) 졸업/부산일보사 기자·논설위원(1986~2017년)/부산시민회관 본부장(2017~2019년)
· 저서 유쾌한 소통(산지니 출판사), 예술, 거리로 나오다(서해문집)

박태성의 세상 이야기 - 마스크와 사회적 거리 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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