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성의 세상 이야기 - 뉴트로와 트로트, 과거 유전자의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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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통협력과 작성일 2020.09.03

신세대 뉴트로 트로트, 과거의 가치 마법 같이 재생
해운대 해리단 길 역시 진정한 장소로 만들어 놓아
위기 사회의 일상화, 지역공동체 논의 공론화시켜야
과거에서 답을 찾는 신세대 방식 공유, 지원할 필요

최근 신세대는 뉴트로, 레트로에서부터 트로트 열풍까지 기성세대가 그냥 흘려보냈던 과거 풍경과 가치들을 마법 같이 재생시켜 놓았다. 기성세대가 미래를 채근당하며 허덕거리는 사이, 지난 것들의 감추어진 아름다움을 끄집어낼 줄 아는 그들이다.
모방송사의 불후의 명곡 역시 장수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여기서 신세대 가수들은 어설픈 흉내가 아닌, 지난 노래들을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리메이킹하면서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과거와 현재를 잇고 있다.
해운대 지역 명소가 된 해리단 길. 지난 수동식 전화다이얼처럼 아련한 학교 소풍날의 보물찾기를 하듯, 이곳저곳 골목을 돌아다니면서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거기를 찾은 사람들은 가벼운 호기심에서 출발해 호감으로 이어져 해리단 길에 대한 친밀감을 높였다. 그 장소를 다른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하며 또 다시 찾고 싶은 곳으로 만들었다. 한 장소에 담긴 스토리, 생명력이란 유전자를 복원한 신세대들은 뻥소리 치는 빅 마우스(Big Mouth)가 아닌, 배려의 스몰 토크(Small Talk)로 구세대와 신세대, 구도심과 신도심의 관계를 매력적으로 엮었다. 폐허와 지난 것들, 보잘 것 없는 것까지 품어 오래된 것을 새로운 것들로 다시 만든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순식간에 지난 것들을 고물로 만들어 놓고는, 늘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지난 과거는 지금 여기에 아예 없는 것으로 여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과거는 어서 잊어버려야 하는 애물단지 같이 취급했다. 새로움이란 미래와 자기계발의 강박은 스스로의 노동감독관이 되어 과민과 불안의 상태에 데려놓았다.
천리마 같이 앞으로 오직 달리는 사이, 과거와 현재에 숨겨져 있는 값진 내부들을 놓쳐버린 것이다. 시간을 단축한다는 고속화, 정보화 사회로, 여유로워지기는커녕 더 바빠졌다. 광속도(光速度)는 광속도(狂速度)가 되었고, 실시간(實時間)은 실시간(失時間)이 되었다. 거울나라의 엘리스 같이 주위가 빠르게 바뀌고 있어 엘리스가 제아무리 달려도 제자리에 있는 현상을 불러들인 것이다.
너무 빨리 자연의 젖을 떼며 오직 도시와 물질과 관계 맺으려 한 결과가 코로나 19 사태와 전례 없는 기상재해와 같은 위기사회의 일상화가 아닌가 한다. 코로나 19 사태를 맞아 비대면 접촉을 강조하면서 인공지능과 가상현실로의 획기적인 변화가 미래 사회의 대안인양 미래주의자들은 또 다시 외쳐대고 있다. 이번에는 인류가 확실히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특유의 공감 능력 진화로 지구의 주인이 된 인류에게 비대면이란 미래사회의 그림은 뭔가 낯설고 자가당착적이다.
새로운 계획도 좋지만, 과거에 잘 했던 것, 미완으로 마음속에 남겨둔 것들을 다시 꺼내보는 것은 어떨까.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는 반복이 차이를 생산한다는 유명한 명제를 던졌다. 한 연주자가 같은 곡을 반복 연주함으로써 항상 다른 경지에 이른다는 것이다. 한 음식을 먹더라도 처음 먹을 때와 그 이후 계속 먹으면서 느끼는 미묘한 식감의 차이와 비슷하다. 반복은 새로운 것이다. 또한 우리가 경험했던 지반에서 이뤄지는 것이어서 두렵지 않으며, 창조성은 더 유연하게 펼쳐진다.
옛사람들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다른 인종인지도 모른다. 한번 생각해보라. 과거 공동체적 유대감으로 느릿느릿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정신도 평화로웠음을.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가까운 사람들과 시간들에 의지하는 것보다 더 든든한 게 있을까. 위험 사회가 일상화된 지금, 과거에 우리가 잘 했던 공생공락의 지역공동체의 복원도 이제는 깊게 생각해볼 시기다. 특히 서민층, 중산층과 지식인 그룹의 소통이 원활하고 창조도시로서의 풍성한 자산을 가지고 있는 해운대에서 말이다. 마을재생 인식 확대, 재택근무 정착, 문화사회의 진전, 생태주의, 중앙 집중화 폐해들은 소규모 지역공동체의 실행 가능한 여건들을 하나둘씩 쌓고 있다.
새로움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다. 새로운 여행도 좋지만, 지난번에 갔던 곳을 다시 여행하면 전혀 다른 차원의 새로움과 깊이를 발견한다. 과거로 천천히 돌아가자. 우리는 변화를 위한 변화의 부작용도 많이 겪었다. 이는 새로운 것의 모순 아니겠는가. 지금 같이 살려면 지금의 지구로는 부족하다.
설령 어떤 곳은 가지 못해도 괜찮다. 가기 어려운 곳을 둔다는 자체가 그럴싸한 일 아닌가. 쉽게 도달 할 수 있는 곳, 거기는 더 이상 이상향이 아니다.
위기사회가 일상화된 지금, 우리의 안전한 미래를 위해서라도 역행적 후퇴를 생각한다. 과거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신세대들의 믿음직한 방식이야말로 진보가 아닐까.

박 태 성
· 부산대 불어불문학과 졸업/영국 스태퍼드셔주립대학교(사회문화학과) 졸업/부산일보사 기자·논설위원(1986~2017년)/부산시민회관 본부장(2017~2019년)
· 저서 유쾌한 소통(산지니 출판사), 예술, 거리로 나오다(서해문집)

박태성의 세상 이야기 - 뉴트로와 트로트, 과거 유전자의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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