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곤의 해운대 역사와 인물 - 해운대서 더욱 빛난 김성종 추리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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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통협력과 작성일 2020.06.11

한국 추리문학의 대가
사재 털어 문학관 설립
한때 달맞이언덕축제 주도

시 문화정책 아쉬움 토로
"소극장, 광장 마련하고
제대로 된 문화잡지 발간
다양한 창작활동 지원해야"

이메일 인터뷰를 약속했는데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해운대 달맞이 언덕 문학관에 찾아갔다.
추리문학의 대가라고 불리는 소설가 김성종(金聖鍾). 첫 질문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인류에게 어떤 의미를 주었는가라고 생각해두었는데, 2개월 넘게 닫힌 1층 현관에서 답을 얻은 듯 했다. 재앙 때문에 거대 권력에게 맡겨져 단절된 세상을 소통으로 활짝 열어젖혀라는 뜻은 아닐까. 전화를 걸었더니 우리 나이로 여든인 작가가 살림집 겸 집필실인 5층에서 내려와 문을 열어주었다.
문학관에는 추리소설 1만3천여 권, 일반문학 1만3천여 권, 외국원서 3천여 권 등 4만 권 이상 비치되어 있다. 국내 유명 서점을 방문해 구입하거나, 회원 가입된 해외 출판사에서 배송받기도 하고, 1년에 두 세 차례 해외 문학기행 때 수집하는 등 발품을 판 덕분이다.
선친이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중국으로 건너가는 바람에 공자의 고향 이웃 동네인 산둥성 지난(濟南)에서 태어났다. 몇 해 지나지 않아 해방이 돼 귀국했으나, 친척이 살던 여수에서 어머니와 태어난 지 열이틀 된 동생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지난 3월 하순 부산일보 칼럼 김성종의 망각의 저편에 어머니와 막내 동생의 마지막 모습이 뿌연 잿빛의 폐가에 등장한다. 아버지의 고향인 구례에서 농고를 나와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했다. 정외과 졸업이 뜻밖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소설가를 꿈꾸었지만 사회과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독서신문사와 김수환 추기경의 명동성당에서 발간하는 잡지 창조에 근무했다.
그러다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경찰관이 당선됐고 한국일보 창간 20주년 공모에 최후의 증인이 대상을 받게 되었다. 상금 200만 원을 받아 집도 사고 결혼도 했다. 이어 일간스포츠에 연재된 대하소설 여명의 눈동자가 공전의 대히트를 하는 바람에 한국일보 장기영 사장으로부터 추정(秋政)이라는 필명을 받아 제5열을 동시 연재했다. 한 작가가 같은 신문에 소설을 동시 연재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 지리산 노고단 산장에서 일행들의 동전을 거둬 공중전화로 원고를 불러준 게 여명의 눈동자다. MBC-TV에서 드라마 36부작으로 방영해 더욱 유명해졌다.
1980년대 초 안개 속에 지다와 백색인간, 미로의 저쪽 등 세 편을 부산일보에 연재했다. 소설 세 편을 연속 연재한 것도 기록이다. 부산일보 연재 때문에 부산에서 살게 되었고, 여명의 눈동자도 부산에서 마무리 지었다. 부산에 자주 왕래하다보니 바다가 너무 좋았다. 남천동 삼익비치아파트를 살림집으로 구입해놓고는 1992년 달맞이 언덕에 추리문학관을 개관해 눌러앉았다. 작가가 사재를 들여 문학관을 짓기에는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주변에 건물이 없을 때여서 바다가 훤하게 보였고 안개가 수시로 스물 스물 올라왔다.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안개 속의 외딴 섬에서 추리물과 함께 살게 되었다. 그의 소설 제목에 안개가 자주 등장한다. 특히 2014년 1월 1일부터 부산일보에 일주일에 한 편씩 연재해 묶은 책이 달맞이 언덕의 안개, 그리고 해운대, 그 태양과 모래다.
김성종은 아무렇게나 걸친 옷이 그의 패션이다. 추리물로 가득 찬 서가에서 모자를 써도 머플러를 둘러도 탐정을 닮았다. 낯선 사람의 범접을 허용하지 않는 과묵함이 그의 인상이다. 그래서일까. "신문사들이 경영난 때문에 소설 연재를 그만 둔 게 아니냐"는 질문이 첫 대화였다. 글을 쓰는 입장에선 발표할 지면이 줄어들었으니 아쉬울 수밖에.
한국추리문학 대상(1986), 봉생문화 대상(1994), 평화문학상(2002), 부산시 문화상 등을 받았고, 한국추리작가협회 회장과 부산소설가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추리문학관 관장을 맡고 있다.
부산에서 오래 살았으니 이젠 부산 사람이 아닌가. "부산시가 문화행정에 대해 공약한 게 없다. 다양한 창작활동이 가능하도록 소극장, 광장을 마련하고 제대로 된 문화잡지 발간을 지원해야 하지 않나"며 시정에 비판적이다. 작가는 "추리문학관이 아니라 땅을 더 사들여 문화타운을 조성해야 했다"고 후회했다. 한 때 달맞이 언덕 축제를 주도했고, 문인들이 출연하는 연극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를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지 물었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1921-1995)라는 여류 작가의 대표작 재능있는 리플리씨는 태양은 가득히로 영화화 되었지요". 바늘 구멍의 작가 켄 폴릿, 자칼의 날을 쓴 프레드릭 포사이드, 그리고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의 존 르 카레가 등장했다. 순수문학과 추리문학의 벽이 낮아진 서양과 달라서인지 필자는 생소하기만 하다.
얼마나 계속 작품 활동을 할 것인지 궁금해졌다. "건강에 지장이 없으니 집필은 계속할 것"이란다. "읽고 쓰는 게 취미이자 장수 비결"이라며 "이 걸 못한다면 돌아버릴 것 같다"고 한다. 참 행복한 직업이다.
언론인

박병곤의 해운대 역사와 인물 - 해운대서 더욱 빛난 김성종 추리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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