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곤의 해운대 역사와 인물 - 선한 일을 하면 반드시 기쁜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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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통협력과 작성일 2020.01.06

최승환 교수 형제와 2세들
낭중지추처럼 모두 특출

친할머니 덕 베풀고
아버지 전쟁통에 갖은 고통
형님 열심히 공부하는 모범
동생들 이어간 때문 아닐까

적선지가 필유여경
성인의 가르침 그대로구나

지금은 고인이 된 최인호 작가는 월간 샘터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단편을 연재했다. 1975년 9월부터 2010년 2월호까지 모두 402회나 게재했다. 비록 짧은 글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연재된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어머니와 아내가 등장하였고, 두 딸과 사위가 나오더니, 나중엔 어머니와 누이가 별세함으로써 사라진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사회가 바뀌고 가족의 생활상도 조금씩 달라진다.
해운대초등학교 동기인 최승환 군(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가족 이야기를 꺼내본다.
황해도 평산 출신인 최상원 아버님은 서울 선린상고를 졸업하고 은행에 다니셨다. 아버님은 6.25전쟁 때 서울에서 군 징집을 당했으나 얼마 안 돼 해제되었다. 어머님과 큰 형님(최동환 당시 6세), 둘째 형님(최진환 당시 4세)은 서울서 부산까지 걸어서 피난길에 올랐다.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 아버님은 낮에는 산에서 숨어 지내고 밤에는 도토리를 주워 집으로 갔는데, 어느 날 인민군에게 붙잡혀 간첩으로 오인 받아 소총 개머리판으로 사정없이 폭행당했다. 그런데 지나가던 인민위원장이 "이 사람은 간첩이 아니라 우리 편"이라고 보증을 서는 바람에 구사일생하셨다. 그 사람은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는 아버님의 본가에서 머슴으로 지냈던 사람인데, 살아있는 부처로 불리었던 할머니로부터 인격적 대우를 받아왔다고 한다. 그러니 아버님도 자식들에게 "주위 사람들에게 덕을 많이 베풀어라"고 종종 말씀하셨다.
부모님과 형님 두 분, 그리고 누님, 최 교수는 지금의 부산은행 해운대지점 건너편에서 문구류와 기념품을 판매하는 중앙상회 건물에 보금자리를 잡았다. 그 시절에는 큰 비만 내리면 하천이 범람하여 집집마다 침수 당하곤 했다. 세 형제는 모두 부산고와 서울대를 나왔다. 부모님은 자식 농사를 잘 지었으니 이웃의 부러움을 많이 받았다.
큰 형님은 서울공대를 졸업하고 한진중공업과 삼성중공업, 엔지니어링 회사의 임원을 지내다 은퇴한 이후에는 손자들의 재롱을 즐기고 있단다. 큰 형님의 장남은 서울대 건축과와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귀국하여 한국사회주택협회 간부로 일하고 있으며, 차남은 서울아산병원 의사로 근무 중이다. 작은 형님은 서울농대를 나왔는데 문학에도 열정을 쏟았다. 조선일보 기자를 하다 시드니 특파원 생활이 계기가 되어 호주로 이민가셔서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시드니 한의대에도 출강하신단다. 달맞이 고개 AID아파트에 거주하실 때 13평 아파트가 어찌나 신기했던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작은 형님의 아들 둘은 미국과 뉴질랜드에 각각 자리를 잡아 역량을 발휘하고 있단다.
최영숙 누님은 숙명여대 사학과를 나왔다. 서울대에서 지질학을 전공하고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지질학 관련 국책연구소에서 근무한 매형을 내조해왔다. 누님의 큰 딸은 미국 공인회계사와 변호사, 둘째 딸은 버클리대를 나와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막내인 아들은 스포츠의학을 전공해 미국에서 직장에 다닌다.
친구 최승환 교수는 부산고, 서울대 철학과를 나와 법학대학원, 미국 뉴욕대학교 로스쿨을 거쳐 다시 서울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수원대에서 3년, 경희대에서 25년째 강단에 서고 있다. 북경에 소재한 중국정법대학에서 1년간 초빙교수로 근무한 인연으로 2018년 3월부터 한중법학회 회장직을 맡고있는 최 교수는 세계국제법협회(ILA) 한국본부 회장직 수행 시 한반도 관련 국제현안에 대한 한국의 국제관행과 우리나라 입장의 정당성을 영문으로 소개하는 전문학술서적(Korean Yearbook of International Law)을 2014년 6월에 창간하였는데 2019년 11월에 제6권이 발간되었다. 최 교수는 어머님을 따라 가톨릭 세례를 받았으나 어머님마저 돌아가시자 불교에 귀의하였고 우리나라 전통 무술에 많은 관심을 가져 구전(口傳)으로만 전승된 기천문(氣天門)을 15년 이상 수련하였으며 최근에는 선무도(禪武道) 수련을 4년째 하고 있다.
스위스 베른 음대에서 플롯을 전공한 아내 김수윤 씨는 미래의 아이 교육 어떻게 하죠라는 책을 발간했는데 1주일 만에 베스트윤러 반열에 올라 교육 관련 특강에 불려 다니느라 분주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영어 창작동화책을 발간했던 외동딸은 이화여대 최연소 합격, 서울대 국제대학원 석사 커리어를 쌓아 지금은 금융회사에서 외국인의 한국투자 컨설팅 업무를 하고 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했는데, 최 교수의 형제들과 그 2세들은 어쩌면 낭중지추(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모두 특출할까. 친할머니가 덕을 베풀었고 아버지가 전쟁통에 온갖 고통을 겪었으며, 큰 형님이 열심히 공부하는 모범을 보여 동생들이 그 뒤를 이어간 때문 아닐까.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옛 성인들의 가르침 그대로구나.
최동환 큰 형님은 "미국의 하와이나 멕시코의 칸쿤처럼 너무나 변한 해운대의 풍경에 놀랐다"며 "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한 차원 높은 인프라 확장과 홍보활동 강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초등학교 시절 해운대는 나의 우주요, 놀이터였다"는 최 교수는 "여유와 문화, 풍요와 평화가 어우러진 도시로 발전하길 기대한다"며 향수를 달랬다.
다시 최인호 작가로 돌아가 보자. 그는 가족 400회 마지막에 플로베르의 시를 인용하며 "아름다운 그대들이여, 꽃보다 인생을 노래하라. 그리고 마음껏 춤춰라"라고 남겼다. 가족 자랑하는 것 같아 인터뷰하기를 주저했다"는 최 교수 가족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대들이 남긴 발자취, 해운대의 젊은이들에겐 맑고 밝은 거울이 될 터이니.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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