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곤의 해운대 역사와 인물 - 기록되지 않으면 잊혀진다 아! 장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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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통협력과 작성일 2019.07.02

자연숭배 장산국 사람들
장산 천제단 마고당에서
풍농 풍어 기원제 올려

소규모 씨족국가 장산국
서기 79년 탈해왕 23년
신라에 토벌돼 비극적 멸망

해운대의 진산(鎭山)인 장산(쩾山)에 나라가 있었다고 전해온다. 1530년에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동래현은 옛날 장산국으로 혹은 내산국이라고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역대 지리지 가운데 가장 종합적인 내용을 담은, 향토사 연구에 필수불가결한 책자라고 하니 신뢰할 만 하다. 동래부지에는 상산(上山)을 장산이라고도 하고 봉래산이라고도 한다. 동래부의 15리에 있으며 대마도를 바라보기 가장 가깝다. 산의 정상에 평탄한 곳이 있고 가운데가 저습하며, 토성과 같은 형상이며 둘레가 2천여 보 된다. 장산국기(쩾山國基)라고 전해온다고 기록되어 있다. 장산국이 있던 터전이라는 뜻이다. 동래군지에 옛 장산국은 대군 30명을 일으켜 가야국을 쳤다는 기록으로 보아 인구 100여 명 정도인 소규모 씨족 국가가 아니었을까. 장산국은 서기 79년, 탈해왕 23년에 신라에 의해 토벌돼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왕과 왕자는 포로로 붙잡혀갔고 왕비와 아홉 공주는 지금의 기장군 장안읍 기룡리 하근마을에서 신분을 숨기고 살아오다 왕비릉이라고 알려진 봉분만 숲 속에 남아있다.
1607년 동래부사 윤훤(尹喧)은 옛 나라는 황량하여 그 시대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강남에는 일찍이 한 작은 나라가 있었네/지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데/오직 한 해가 저물어감에 까마귀와 참새만 슬퍼하는구나라는 한시를 남겼다. 멸망한 나라의 터전은 황량하고 새소리조차 구슬프기 마련인가. 이춘원, 성진선, 강대수, 신후재 같은 문인들도 장산국을 소재로 한시를 지었다.
해운대구청이 기획해 2014년 해운대문화회관 해운홀에서 공연한 창작오페라 불멸의 사랑 해운대는 장산국의 비극적 멸망을 소재로 만든 작품이었다. 신라와 가야의 세력다툼과 장산국의 여왕 고아진과 장군 최윤후의 사랑과 최후를 그려냈다. 예술작품 속에서나마 장산국을 부활시키려는 기획 의도는 높이 평가받아야 했다.
장산은 해발 634m로 부산에서 금정산, 백양산에 이어 세 번째 높다. 높은 산은 하늘과 땅 의 정기가 모여 있는 신성한 곳이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복락과 장수, 풍년을 기원하려면 신성한 곳을 찾아야 한다. 폭포사에서 체육공원을 지나 오솔길을 오르면 천제단(天祭壇)이 나온다. 바위제단을 쌓은 후 막돌로 담장을 쌓고 선돌 3기를 놓았다. 가운데가 천신(天神), 왼쪽이 지신(地神), 오른쪽이 산신(山神)을 의미한다. 농경사회에서는 비가 적당하게 내리고 햇빛도 바람도 시절에 맞게 도와주어야 한다. 농사가 잘 되어야 백성이 편안하고 나라가 번성하는 법, 어찌 하늘에 기원하지 않겠는가. 2천300년 전 장산국 사람들의 자연숭배 사상을 보여주는 천제단은 마고당과 함께 2009년 부산광역시 민속문화재 6호로 지정되었다.
고대 중국에서도 태산 꼭대기에 흙으로 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 드리며 하늘의 공에 보답하는 것을 봉(封)이라고 하고, 태산 아래 작은 산의 땅을 평평하게 골라 땅의 공에 보답하는 것을 선(禪)이라고 하였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는 제나라 환공이 봉선의식을 행하려 하자 재상 관중이 "역성혁명으로 나라가 바뀌고 천하가 태평할 때만 봉선의식을 올릴 수 있다"며 간곡하게 설득했다는 기록이 있다. 전설의 시대인 삼황오제 이후 72명의 제왕이 봉선을 행했다고 하나 관중은 12명의 이름만 전했다.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은 기원전 219년 태산에서 봉을 올리고 양부(梁父)에서 선을 올렸다. 이후 한무제 등 6명만 봉선에 참여했다.
천제단에서 200여m 아래에 있는 마고당은 조선시대부터 있었는데 1924년 중건했다고 한다. 자연석을 쌓아 산신단을 조성하고 상산마고당(上山麻姑堂)이라는 현판을 걸어놓았다. 당집 아래에서 마르지 않고 솟아나는 석간수를 정화수로 쓰며 인근의 너덜겅 막돌로 담장을 쳐놓았다. 풍농과 풍어를 기원하고 재액(災厄)이 일어나지 않도록 마고할미에게 1년에 두 차례 제사를 올린 곳이다.
농경지였던 인근 좌동이 신도시로 개발돼 거대한 아파트 숲을 이루고 수영비행장 부지와 승당부락 매립지가 센텀시티, 마린시티로 변신했지만, 우리는 짧게는 수백 년에서 길게는 1만여 년 전 조상들의 염원 속에서 살아가는 셈이다. 기록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고 누가 말했던가. 신화 같았던 소왕국 장산국을 뒤돌아보았다. 언론인

박병곤의 해운대 역사와 인물 - 기록되지 않으면 잊혀진다 아! 장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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