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의 나무> 송정 죽도공원 해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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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협력과 작성일 2024.02.02

"외로워 보여도 외롭지 않은 사람 같아요"

보기만 해도 짜다. 처음 봤을 때가 1982년 아니면 1983년. 딱 40년 전이다. 40년 넘는 날들을 바닷물 뒤집어쓰고 바닷바람 뒤집어썼으니 보기만 해도 짠 게 당연하다. 대단은 하다. 40년 넘는 세월을 한자리 그대로 있는 게 어디 보통 일인가. 속을 들여다보지 않아서 그렇지 그 속은 또 얼마나 여물 것인가.
40년 해송이 있는 곳은 송정 죽도공원 갯바위. 지금은 팔각정 고풍스러운 공원이지만 1982년, 1983년 그때는 군부대 초소였다. 어떻게 아느냐고? 이 초소를 관할하는 군부대에 그 당시 복무했다. 수영비행장 주둔 해안대대에 방위병으로 있으면서 여기도 와봤고 청사포 초소도 가봤고 동백섬 중대도 가봤다. 모두 해안대대 관할이었다. 그때 여기 갯바위 해송을 처음 봤다.
처음 본 그때는 지금보다 왜소했다. 가늘고 여리고 낮았다. 지금이라고 별반 다르진 않다. 갯바위 갈라진 틈에 뿌리를 박고 자랐으니 왜 그렇지 않겠는가. 더구나 나무와 소금은 상극. 바닷물, 바닷바람 삼백육십오일 끼고 지내면서 여전히 푸르고 여전히 꼿꼿한 게 고마울 정도다. 사람은, 적어도 나는 도저히 가닿지 못할 경지다.
죽도공원 팔각정은 초소가 있던 자리. 해안으로 다가오는 간첩이나 간첩선을 감시하던 자리라서 전망이 탁 트였다. 팔각정 2층 누각은 더욱 트여 죽도공원에 오면 누구라도 여기 들른다. 팔각정 건너편에 갯바위 해송이 보이고 팔각정과 갯바위 사이론 바닷물 철썩철썩 드나든다. 바닷물 철썩철썩 들 때는 속이 다 시원하고 철썩철썩 나갈 때는 속에 꽉 찬 시름이 죄다 빠져나간다.
"약해 보여도 약하지 않고 외로워 보여도 외롭지 않은 딴딴한 사람 같아요."평일이라서 그런지 팔각정 2층 누각은 고즈넉하다. 중년 남녀가 누각에서 내려간 후로 한참을 뜸하다가 올라온 중년 여인은 누각 기둥에 기대어 바다를 본다. 내가 앉은 자리에선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 고즈넉하리라. 뜸을 들인 뒤 다가가서 말을 붙인다. 모르는 척 송정 앞바다에 뜬 부표를 묻고 팔각정 건너편 갯바위 해송을 묻는다. 심지가 굳은지 돌아오는 말이 딴딴하다. 해송이 딴딴한 사람 같단다.
나는 그렇다. 어쩌다 죽도공원에 오면 이 해송을 꼭 보고 간다. 마음에 담는다는 말이 맞겠다. 지금 돌아보면 내 생애에서 서른이 막 지나던 무렵이 가장 추웠다. 기장 월전 바닷가 셋방에 살면서 답답하고 막막한 심사를 달랬다. 그때 나를 다독인 게 여기 이 해송이었다. 군인이 지킬 때는 들어갈 수 없으니 상상으로, 철조망을 걷어낸 후론 가까이서 보며 해송에 나를 대입했다. 저 나무도 저리 버티는데. 그렇게 나를 다독이며 답답하고 막막한 심사를 건너왔다. 해송은 그 무렵 쓴 시다.
바위 갈라진 틈에/뿌리 들이민/해송/바닷가 촌집 반반 갈라/가운데 셋방/내 삼십 대 초반 같다/문지르면 소금기 일어나던/백지장 얼굴 같다 누군들 그럴 때 없으랴. 답답하고 막막해 이쯤에서 멈추고 싶을 때. 나는 몇 번이나 그랬다. 그 몇 번 가운데 한 번은 이 해송 덕분에 계속 갔고 여기까지 왔다. 하루하루 막막하고 답답한 그대, 멈추고 싶을 때는 일단 멈추자. 하루쯤 한나절쯤 틈을 낸다고 한들 뭐 어떠랴. 하루쯤 한나절쯤 틈을 내어 송정 죽도공원 해송 가까이 서보자. 바닷물 철썩철썩 드나드는 거기서 젖을 대로 젖어 보자.
동길산 시인

<해운대의 나무> 송정 죽도공원 해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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