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의 나무> 흰 꽃 숲길 아왜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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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협력과 작성일 2024.12.06

내 안에서 오랫동안 울고 있는 나무


숲길은 그렇다. 숲이 좋은 숲길이 있고 길이 좋은 숲길이 있다. 물론, 숲도 좋고 길도 좋은 숲길도 있다. 해운대 그린레일웨이 흰꽃이 피는 숲길은 좀 이색적이다. 뭐가 좋다고는 말 못 해도 숲은 숲대로, 길은 길대로 자기만의 색깔이 있다. 자기만의 색깔로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숲길의 명성을 이어 간다.
여기 그린레일웨이는 원래 기찻길이었다. 부전역과 울산 쪽을 오가는 동해남부선 해운대 구간으로 보면 된다. 2013년 이후 기차가 다니지 않자 철로를 걷어내고 조성한 산책길이 그린레일웨이다. 그런 역사를 품었기에 산책길에 모형 열차가 보인다. 기차가 다니던 산책길이라서 길은 길게 길게 이어지고 길 따라 나무도 길게 길게 이어진다.

흰 꽃이 피는 놀이 숲길
그린레일웨이는 구간이 여럿이다. 구간마다 자기만의 색깔을 내세운다. 그중 하나가 흰 꽃이 피는 놀이 숲길이다. 숲길 명칭이 그런 만큼 이 구간 나무는 하나같이 흰 꽃을 피운다. 조팝나무를 비롯해 광나무, 아그배나무, 말발도리 등등이다. 나무마다 명찰을 달아서 흰 꽃 피운다고 밝힌다.
그리고 아왜나무. 이 나무 역시 흰 꽃이다. 분홍색도 피우지만 흰색이 많다. 봄과 여름 사이 송이송이 피는 흰 꽃은 병아리 솜털처럼 간지럽고 탐스럽다. 휴대전화 카메라를 들이대고 흰 꽃에 초점을 맞추면 어슴푸레한 이파리가 예술이고 이파리에 초점을 맞추면 희뿌연 흰 꽃이 예술이다. 이파리든 흰 꽃이든 어디에 맞춰도 예술인 나무가 아왜나무다.

(…) 어쩌면 / 겹 진 그늘은 / 한 사람의 주저흔(躊躇痕) // 그 나무를 나는 차마 베어내지 못한다 / 내 안에 아왜나무가 오랫동안 울고 있다
- 이민아 시 아왜나무에서 울었다에서
예술인 나무를 앞에 두고 한 시인은 울었다. "아…왜…" 하며 울었다. 그리고 시를 썼고 그 시의 제목으로 첫 시집을 냈다. 시인이 울면서 시를 쓰게 한 나무, 아왜나무. 속울음 터지는 불타는 시인의 마음을 달랬듯 이 나무는 산불까지 진정시킨다. 물기가 많고 불에 강해서 산불 예방과 산불 진화 목적으로 산에 많이 심는다.
아왜나무는 옛날 해운대역과 부산기계공고 사이에 있다. 동해남부선 기차가 다니던 길인만큼 여기 기찻길 역사를 밝힌 안내판을 한쪽에 세웠다. 안내판 제목은 철길의 기억이다. 동해남부선은 1918년 경주와 포항 구간이 가장 먼저 개통했고 여기 구간은 1935년 개통했다고 밝힌다. 1935년이면 내년이 90년. 곧 100년을 바라보는 길이 여기다.
흰 꽃 숲길 저쪽은 부산기계공고. 국립이다. 국립이라서 학비가 들지 않으니 1970년대와 1980년대는 중학교 일이 등을 다투던 수재들이 모였다. 중공업 우선 정책을 폈던 그때는 기계가 대세였다. 공고와 공대가 인기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국내든 국외든 기능경기대회 최고상은 싹쓸이하는 명문 마이스터고(高) 넘버 원이 부산기계공고다.
옛날 해운대역 쪽으로 이어지는 숲길은 정말 길다. 미포를 지나고 청사포를 지나고 송정을 지나서 기장 쪽으로, 울산 쪽으로 한없이 이어진다. 누군들 그런 날 없으랴. 불타는 마음에 멀리멀리 떠나고 싶은 날. 그런 날이면 흰 꽃 숲길 아왜나무 앞에 서 보자. 아주 많이는 말고 아주 조금만 멀리 가게 되길 바라며. 불타는 마음을 물 많은 나무가 적셔 주길 바라며.
동길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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