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베풀며 도전한 77년, 정청일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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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광문화과 작성일 2018.07.11

박병곤의 해운대 이야기


뒷산 여우떼 울던 유년 지나
공무원 거쳐 건설회사로 이직
아시안게임 국제본부장 역임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


나누고 베풀고 도전하고 삶
풍요로운 세상 만드는 행보


그는 자신의 삶이 파란만장(波瀾萬丈)했다고 술회했다. 파도와 물결이 1만 장, 그러니까 30㎞나 오르내렸을 정도로 굴곡이 심했다는 이야기다.
거제리 부잣집에서 자라나 해운대 우동 못안 마을 가난한 집안에 시집온 어머니가 아버지를 졸라 일본 오사카로 이주하는 바람에 1941년 이역 땅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세 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해운대로 돌아왔다.
정청일 선생, 올해 77세, 도시철도 해운대역 앞 해운대광장의 편의점 원탁에서 만났다.
앞머리가 약간 벗겨졌고, 백발이 뒤섞였으나 아주 건강해 보였다. 마마 병이 퍼지고 역병이 돌며, 뒷산에서 여우 떼들이 울어대던 유년시절을 보냈다.
1947년 해운대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4학년 때 이북의 피난민 자녀들이 대거 들어왔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으며 구슬치기 방법도 달랐으나 그들은 공부를 잘했지요
그 시절엔 밥을 못 먹는 사람이 많았다. 연기가 안 나면 굶는 집인 줄 알고 이웃에서 보리쌀 등 곡식을 한 바가지씩 대문 안에 몰래 넣어주었다고 한다. 바가지 모양을 보고 누가 도와주었는지 짐작했다. 잊지 못할 해운대 사람으로는 온천사진관 김신득 씨, 배급소 하던 박승택 씨, 제세병원 김영호 씨를 꼽았다. 학교 다녀온 낯모르는 어린이들 몇 명이든 밥을 챙겨주었다고 한다. 이젠 모두 고인이 되었다. 정 선생은 그 시절은 원초적 공동체였지요라고 회고했다.
해운대시장에서 장사하던 집 딸인 두 살 위 누나가 1953년 일본으로 밀항해 떠나갔다. 그런데 1962년 현해탄은 알고 있다는 영화에 출연했고, 어느 인터뷰에서 정청일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초콜릿과 과자를 사주던 이웃집 누나가 여배우가 되었다니!
동래중·고등학교를 나와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공군에 입대하여 제트기 정비병을 하였다. 고등학생 때 친구 따라 해운대교회에 갔다가 성가대 오르간 반주를 배웠던 덕분에 공군부대 교회의 반주자도 맡았다.
1966년 부산시 공무원이 되어 남부민1동사무소, 중부수도사업소, 시청 공보실, 인사과 등에서 근무했다. 시립 무용단, 시립 어린이합창단 창단을 주도했던 일에 자부심이 대단하다.
공무원 생활 12년 5개월 만에 건설회사로 옮겨 사우디아라비아로 갔다. 국·영문 신약성서와 영어회화 테이프를 챙겨갔고 영국 맨체스터 비즈니스 잉글리쉬 아카데미에 등록하여 통신교육을 받았다. 영국인, 미국인과 함께 근무하니 영어실력이 늘어났다.
영국 런던에 출장을 다녀오고 미국 휴스턴도 방문하였다. 오하이오 주 데이튼 공군박물관에서는 한국전쟁 당시의 수영비행장과 동백섬, 해운대 사진도 보았다.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주택공사 현장소장 시절 이란에서 쏘아대는 스쿠드 미사일 때문에 숙소가 흔들리는 공포 속에서 생활했다. 그러면서 현지인들의 주택을 보수해주고 이슬람 세례명을 받기도 했다. 14년 만에 건설회사를 떠났다.
그러다가 1999년부터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조직위 국제본부장을 맡았다. 중동 사정에 밝고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조건에 부합된 것이다. IOC 위원을 만나고 OCA 간부들과 수시로 통화하는 사이가 되었다. 대만 선수촌에 가서 강연하여 감사패도 받았고, 2010년 인천 아시안게임 조직위에 초빙돼 강연하였다.
정 선생은 2009년부터 부산시가 공모한 문화관광해설사로 일해 왔다. 월 8회 가량, 그 가운데 2~3회는 영어로 외국인들을 안내해왔다.
그런데 그만두려고 한다. 10년이나 해온데다 젊은 사람들과 나이차가 많이 나기 때문이란다. 여생을 어떻게 보내겠는가라는 질문에, 틈틈이 익혀온 아코디언 연주로 복지시설에 재능기부를 하며, 7월부터 중1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생활영어, 관광영어 강의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리 반 클리프가 주연한 서부영화 황야의 분노에 나오는 도전에 응하지 않는 자는 이미 패배한 것이라는 대사처럼 살아간다. 변화에 적응하면서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한다.
그는 해운대초등학교 총동창회 회장 시절 모교에 피아노를 기증했고, 어릴 때 다니던 해운대교회에 그랜드 피아노를 기부했다. 방글라데시에서 운동화조차 없는 어린이들을 목격하고 국제구호단체 월드비전을 통해 방글라데시 어린이들에게 후원금을 보내왔다. 정 선생은 깨알같이 쪼개진 사회여서 모두 외로움을 느낀다. 사회지도층이 반성해야 합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우선 나부터 부끄럽다. 나누고, 베풀고, 도전하는 삶! 해운대, 아니 이 세상이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 언론인


나누고 베풀며 도전한 77년, 정청일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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