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곤의 해운대 이야기 - 해운대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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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광문화과 작성일 2016.08.05

해수욕장의 변신


어릴적 팬티만 걸치고 백사장으로 달려갔다
방학이 끝날 즈음 온 몸이 시커멓게 타버려
제대로 밤잠을 이루지 못한 날이 잦았다


장마가 계속될 때는 햇빛이 그리웠는데, 폭염이 이어지니 이 또한 여간 일이 아니다. 시원한 바람과 물이 그리워진다. 여름 피서지론 뭐니 뭐니 해도 해수욕장이다. 해송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조개껍질 같은 은빛 모래가 반짝이며, 끝없는 수평선과 푸른 바다, 하얀 포말을 내뿜는 파도가 유혹하는 곳. 무더위와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날려 버릴 수 있다.
해운대시장 근처에서 나고 자랐던 필자는 어릴 적 팬티만 하나 걸치고 춘천 다리를 건너 백사장으로 달려갔다. 신발이나 윗옷, 그리고 동전 몇 닢을 가져갔을 때는 모래 속에 묻어두고 아이스케이크 막대기를 꽂아 표시를 해두었다. 그리곤 바다에 풍덩∼. 지칠듯하면 물에서 나와 일광욕이나 모래찜질을 하곤 했다. 부모님과 함께 외지서 피서 온 또래 아이들이 수박화채며 삼단 도시락을 먹을 때 얼마나 부러웠던지. 하지만 우리는 교통체증에 시달리지 않고도 하루에 몇 번씩 달려올 수 있었다. 여름방학이 끝날 때 즈음이면 온 몸이 가벼운 화상을 입은 듯 시커멓게 타버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적이 잦았다.
해운대 앞바다는 성게와 고동, 해초, 그리고 물고기를 잡던 황금어장이었다. 1896년 부산항 개항 이후, 그리고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일본인이나 부산시내 학생들이 하계수련 목적으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6.25전쟁 기간 중 미군의 탄약 등 무기가 동백섬 옆 선착장을 통해 좌동 일대 탄약고로 옮겨졌다. 지금의 송림공원과 노보텔 호텔, 엘시티 공사장 인근은 미군 수송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그러니 해운대 백사장에도 미군 전용 비치 구락부가 설치되었다.
1959년 9월 17일 추석날 새벽 사라호 태풍이 일으킨 해일은 춘천을 너머 중동 구남벌 일대까지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렸다. 바닷가 민가들은 무사할 리 없었다.
1970년대였던가, 해운대와 광안리, 송도해수욕장 가설무대를 연결하는 노래자랑 3원 방송이 인기를 모았었지. 그 땐 라디오를 통해서 방송됐지만, 요즘의 TV 전국노래자랑 인기 못지않았다.
극동호텔과 조선비치호텔이 들어서면서 신혼여행지로 각광받았고, 이런 저런 고층 빌딩이 경쟁하듯 세워지면서 백사장 면적은 크게 줄어들었다. 여름철이면 2,000만 명이 찾는다고 하지만, 해수욕을 제외하면 볼거리 즐길 거리가 부족했다. 온천이 있긴 하지만, 사계절 휴양지로서는 뭔가 아쉽게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달맞이고개에 젊은이 취향의 맛집과 카페거리가 조성되고, 부산국제영화제가 성공하면서 해운대와 해수욕장은 변신하기 시작했다.
새해 첫날 해맞이 축제와 정월 대보름 달맞이 축제는 수많은 시민들이 찾지만 해운대만의 축제는 아니다. 겨울 바다에 몸을 던지는 북극곰 수영대회, 모래로 온갖 형상을 빚어내는 모래축제는 내외국인,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즐긴다. 그리고 매년 8월초 부산의 각 해수욕장에서 열리는 바다축제의 주 무대는 아무래도 맏형님 해운대가 제 격이 아닌가. 태국의 송크란 축제처럼 참가자들이 서로 물총을 쏘아대는 물의 난장은 동심을 되찾게 해준다. 대형 비치 워터 슬라이드,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이 흥을 돋우는 해변 파티는 외국인들도 즐겁게 하리라. 가을이면 부산국제영화제 부속 행사가 줄을 잇는다. 다만 중국인들의 발길을 붙잡을 프로그램이 어서 나왔으면.
해수욕장의 변신과 진화를 위한 행정당국의 노력은 여러 가지였다. 2012년부터 연안정비사업을 벌여 3년 동안 15t 화물차 5만9천대 분량의 모래를 부어 백사장 넓이가 배 이상 늘어났다. 해파리 유입을 막기 위해 1.4㎞나 되는 차단망을 설치했으며, 이안류 발생 예방을 위해 위험 수역에 수시로 모래를 투입하고 있다. 온천 족욕탕도 사포지향(四抱之鄕) 해운대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스마트비치 사업은 피서객의 만족도를 높인 최고의 서비스였다. 어린이용 풀장은 참신한 아이디어였다. 올해는 미아방지용 웨어러블 밴드가 어린이들에게 제공된다고 한다. 한겨울 백사장에 설치된 스케이트장은 이색 즐길 거리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 요트 경기가 해운대 앞바다에서 개최됐을 그 즈음, 해운대구청은 해수욕장 입장 유료화를 추진했다. 당시 언론과 시민들의 찬반 논란이 뜨거웠다. 해운대가 고향이며 구청 출입 기자였던 필자는 은근히 유료화를 지지하였다. 그러나 유료화 방안은 반발에 부딪혀 무산되고 말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해운대가 국제적 관광지로 도약하였고, 부산시와 해운대구의 역량이 엄청나게 커진 만큼, 입장료 몇 푼 받지 않더라도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편안하고 즐거운 여름나기는 해운대 바다에서!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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