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레일 위로 사랑은 흐르고… 봄빛 해안은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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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광문화과 작성일 2014.06.05

해운대구는 해운대를 이야기가 흐르는 문화도시로 만들고자 국제신문,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와 함께 지역 내 숨은 이야기를 발굴하고 있다. 아래 내용은 국제신문에 게재된 글로, 6회에 걸쳐 해운대 고운 이야기를 연재한다.


10년 만에 불쑥 찾아온 그녀. 그 동안의 얘기를 뒤로하고
추억의 레일이 깔린 옛 기찻길을 발목이 시리도록 걸었다.
뱃고동 소리 좋았던 미포, 밤풍경이 매혹적이었던 청사포,
넉넉한 어머니같았던 구덕포. 그리고 저 멀리에는 오륙도,
시간의 퇴적층 위로 봄바람 날아올라 목덜미를 휘감았다.


#1. 1980년 해운대 응답하라
새벽 6시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누구지? 이 새벽에? 발신자의 이름이 뜨지 않는 전화다. …야, 문둥아, 나다. 내 해운대에 왔다. 빨리 나와 봐라., 누? 누… 누구시죠?, 니 내 목소리도 모리겠나? 진짜 서운타. 미포 입구 기찻길 알제? 니 올 때까지 기다릴 끼다… 이건 아닌 밤중에 홍두깨다. 어느 먼 초록나라에서 걸려올 듯한 잠결 속에서 스멀스멀 안개처럼 피어나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C다.  


#2. 와우산의 소꼬리, 그 찰싹이는 파도소리
막 움튼 여명이 황소울음처럼 번지는 미포 바다 골목길이 가까워지자, 내 심장에서, 쿵쿵 기찻길 레일에 귀를 접고 듣는 기차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세월이 10년이나 흘렀다니…. 놀랍게도 C는 그대로였다. 진짜 해운대 너무 변했데이…내 이바구는 나중에 듣고 바다 구경부터 하면 안 되겠나? 나는 고개를 끄덕여 준다. 10년 전 봄, C의 남편을 멀리 떠나보낸 후 첫 만남이다.
우리가 발길을 멈춘 곳은 한 어부 내외가 선착장에 닻줄을 묶고, 배에서 고기 담은 어구를 가지고 막 뭍에 발을 딛는 미포 선착장. 언제부터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일까. 웅성웅성 청자 빛 어둠 속에서 각종 어류가 담긴 붉은 다라이들을 진열해 놓은 좌판상(아낙)들과 흥정을 하고 있었다. 여명을 뚫고, 밤바다에서 귀항한 통발 어선들이, 포구에 빼꼭히 정박한 배와 배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정박하자, 눈치 빠른 갈매기들이 끼룩끼룩 먹이를 찾아 벌떼처럼 모여들었다.
삼월이지만 새벽바람은 차고, 찬물에 물일을 하는 아낙들은 언 손을 녹이기 위해 모닥불을 피워 놓고 있었다. 동백섬의 배경화면 같은 초고속 고층빌딩들이 허공에 쏟아내는 현란한 불빛들이, 하얀 안개에 휩싸여, 마치 신들이 사는 성(城)처럼 보였다. 한 아낙이 붉은 다라이 속에서 꿈틀거리는 문어 한 마리를 맨 손으로 꺼내 보이며 5분 만에 장만해 줄 테니 먹고 가라고 권했다.
통통통 아침 금빛 바다를 난타 하며 바다로 다시 떠나는 통발 어선들의 배의 엔진 소리는 너무 경쾌했다. 두 귀가 즐거웠다. C가 …후후…해운대 바다 보니 인자 살 것 같데이라고 말했다. 바다를 나비처럼 건너온 봄바람은 부드러운 실크 머플러 감촉으로 목덜미를 휘감았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지난날, C와 나의 우정은 8할이 해운대 바다가 키웠다. 서로가 슬플 때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우리 해운대 바다 보러 가자 외쳤다. 그 시절만 해도, C도 나도 혼자서는 감히 해운대 바다에 놀러 올 생각도 못했다. 바보같이.
흰 파도들이 달려와서 어지럽게 찍힌 물새 발자국을 지우고 달아났다. 저 갈매기 끼룩끼룩 우는 모래사장을 그와 얼마나 발목이 시리도록 걷고 걸었던가. 우리의 꿈은 얼마나 푸르고 높았던가. 목측(目測)의 수평선 위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에 선명하게 아름다운 상(象)을 드러내는 오륙도는 한 영혼을 송두리째 불 태워서 사랑해도 미련이 없을 그런 여인의 자태이다….


나는 그녀의 벗은 몸을 본 일이 없다
그녀는 늘 숫처녀처럼 여섯 개의 나뭇잎 으로 이마를 가린다
내가 파도 자락을 세게 잡아당길수록
그녀의 깊은 몸은 바다가 되어 버린다
 (송유미 시, 오륙도, 여자 일부)


#3. 추억 따라… 기찻길 따라
니 기억 나제? 미안 하데이., 지금 무슨 말이니?, 생각하면 어린 내가 우찌 그리 못됐는지 말이다…, 또 그 이야기가? 그만 해라., 알았다. 알았데이.
C는 기찻길 걸으니 옛날 일들이 생각나는 모양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일이다. 서울서 전학 온 아홉 살의 내가 옆집 사는 C를 같이 놀자고 쫓아다니는 것이 싫었던지, 내가 달리는 완행열차 꽁무니에 매달려 올라타기(그 시절의 아이들의 놀이)에 성공하면, 나를 진정한 친구로 받아주겠다고 했다. 겁이 많았던 나는 절대 죽어도 못한다고 사정했지만, 절대로 해야만 친구로 받아 줄 수 있다고 C의 텃세에 못 이겨, 기차 꽁무니에 매달리려다 그만 기찻길에 데굴데굴 굴러 떨어진 일을 C는 말하는 것이다.
그 현기증 나는 보리 고개 시절, 책 보따리 허리에 질끈 매고 기찻길 따라 등·하교하던 아이들은 기찻길이 유일한 놀이터였다.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데도 철없는 탓에 무서움도 몰랐었다. 친구라면 사족을 못 쓰던 그 기찻길의 추억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난다. 생각하면 기찻길은 아름다운 추억만큼 아픔도 함께 떠오르는 길이다. 수평선에서 달려와 단애를 더듬으며 부서지는 시원한 파도소리에 갑자기 복잡한 생각들이 멀리 멀리 도망친다.
보슬보슬 내리는 봄비 따라 기찻길 따라 발목이 시리도록 걷고 또 걸으면, 저 우주의 은하성단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 밤을 꼬박 새워 연필에 침을 묻혀 쓴 편지를 우체통에 넣으러 가는 길처럼, 동해남부선은 내게 사랑이 흐르고 달빛이 흐르는 길이다
C와 나는 옛 추억의 길, 달맞이 언덕에서 커피를 마시고, 느긋하게 걸어서 문텐로드를 산책하고, 청사포 삼포길로 접어들었다. 탁 트인 광활한 바다가 탁한 눈을 씻어 주었다. 청사포 가는 길의 안내판과 삼포 가는 길, 그리고 해월정사 가는 길과 달맞이 십오굽이길 가는 길의 길목 위에서 길은 잠시 망설였다.
C가 성철 스님이 살아생전 잠시 머물렀다는 해월정사 봉훈관(성철 스님 유품 전시관)을 구경하고 싶다는 청에 그러자고 했다. 때를 맞춘 듯 적광전 앞에 성철스님 탄신 기념 예배 불사라고 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일주문 지나니 잉어들이 노니는 연못도 있고, 성철스님이 머물었던 고심정 뜰에는, 막 만개한 하얀 목련꽃이 염화미소처럼 반겼다. 그러나 봉훈관 관람은 예약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발길을 돌려 청사포 등대로 향했다.
우리는 기장 앞 바다에서 어부들이 밝힌 집어등 불빛들과 청사포 밤바다의 집어등이 한데 어울려 불야성을 이루는 봄바다 배경으로 핸드폰 카메라를 마구 눌렀다. 먼 바다에는 둥둥 멸치잡이 배들이, 소리를 좋아하는 멸치를 그물 속에 몰이하기 위해, 뱃전에 바싹 붙어 서서 배의 옆구리를 두드려 울리는 소리가 북처럼 울려왔다.
청사포 밤 풍경은 짙은 밤화장한 여인 같이 야했다. 봄밤은 바다처럼 깊어가고, 드라마 해운대 연인의 촬영장소(음식점)에는 많은 청춘남녀들이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담소하고 있는 풍경이 마치 이국의 해안에 관광 온 것 같았다. 이쁘게 단장한 두 개의 등대 불빛들이 번갈아가면 먼 바다로 나간 고기잡이배들을 위해 쉼 없이 소나(Sonar)같은 환상적인 불빛을 쏘아대고 있었다. 밤낚시꾼들이 밝힌 등불이며, 수많은 고층 아파트의 불빛이 바다에 달빛처럼 내려와 섬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나의 등대는, 지친 물새처럼 길을
떠나지 않는다.
떠나지 않으면서, 떠난 모든 길을
어머니처럼
기다리며 이 세상 모든 길을 지켜준다.
 (송유미 시 등대에게 길을 배우다 일부)


#4. 청사포에서 구덕포까지
우리가 동해남부선 타고 그 사람, 면회 갈 때 참 호시절(好時節)이었제?
소녀 같은 C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일부러 시니컬하게 내가 말했다.
솔직히 네가 하도 그 사람 보고 싶다고 울고불고 하는 꼴이 불쌍해서 전방 면회가는데 따라 가 준거다. 내가 기차 멀미로 고생한 거 생각하면 지긋지긋하다.
뭐라꼬?, 니 인자 보니 진짜 나쁘네. 내 옆구리 자꾸 찔러 면회 가자고 한 건 너다.
아옹다옹 다투다가 까르르 웃는 우리의 웃음소리는 민들레 홀씨처럼 기찻길 위로 흩어졌다. C와 나의 진정한 우정은, 차창 밖이 그림엽서 같은 동해남부선 타고 한 달이 멀다하고, 두 사람의 공동 첫사랑(C의 남편이 된 사람)을 만나러 다니던 그때부터였지 싶다.
구덕포 선착장에는 미역건조대가 빼곡했다. 바람에 날리는 미역 냄새는 참 향긋했다. 조각칼로 다듬은 듯 위용을 자랑하는 구덕포(九德浦) 표지석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나는 말했다.
친구야, 이 마을에 아홉 개의 덕(德)이 있다네? 우리 한번 찾아보자. 우리는 해서 봄 미역 말리는 해녀에게 물어도 보고, 횟집 주인에게 물어도 봤다. 그러나 종내 마음에 드는 말을 듣지 못했다. 스마트 폰으로 검색까지 해 보았다. 허사였다. 그런데 10년 청상세월에, 한 소식이라고 한 것인가. C는 종전과는 아주 딴사람의 얼굴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봐라. 송 시인아, 아홉 개의 덕(德)은 퍼주기만 하는 어머니 같은 후덕한 구덕포 앞 바다인 기다…. 나는 두 눈이 번쩍 뜨이는 장님처럼 공연히 두 어깨를 들어 올렸다, 놨다 했다.
구덕포 마을은 오랫동안 가시철책으로 민간인 출입을 통제해서일까. 주변의 소나무들도 제법 울울창창하고 개발의 손길이 많이 닿지 않았다. 기록에 의하면 구덕포는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포구…. 시간의 퇴적층 같은, 잿빛 돌담의 파란 페인트칠한 기와지붕의 집들은 대문이 없었다. 대문이 있는 집들은 문을 제대로 닫지 않았다.
기찻길이 있어 생긴 굴다리 속은 약간 지저분했지만, 와우산에서 내려온 맑은 시냇물이 졸졸졸 흐르고 있었다. 이 자리가 빨래터였다는 듯이, 빨래방망이 소리가 어디선가 힘차게 들려왔다. 
나는 C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의 손은 따뜻했다. 난 오래 가슴 속에 준비해 둔 말 한 마디를 끝내 꺼내서 건네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이제는 그녀에게 필요한 말이 아니었다. 세찬 바람이 우리의 긴 치맛자락을, 새의 날개처럼 푸득거렸다.
돌아다녀보면/ 조선팔도(朝鮮八道)/ 모든 명당은 초소다는 황지우 시인의 시처럼, 청사포, 구덕포에는 초소가 있던 흔적이 많고, 그 초소가 있는 자리는 이제 해운대의 명당이 되었다. 군부대 주둔 관계로 80년대 후반까지도 민간인의 통제가 자유롭지 않았던 구덕포가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영화 친구 덕분이다.
알 바위 위에는 갈매기 식구들이 갓 태어난 어린 갈매기들을 돌보고 있었다. 나그네가 찰칵찰칵 총처럼 겨누는 카메라 셔터 소리에 달아나지 않고 도리어 경계의 힘찬 날갯짓을 하였다. 봄 향기로 물든 해안으로 멀리 달아났던 그리움의 물결이 수평선에서 하얗게 몰려오고 있었다.
 ■ 글 = 송유미 시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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