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고운 이야기 ④ 나루공원 팽나무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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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광문화과 작성일 2014.08.18

센팀시티로 이사온 지 3년, 아직 난 고향에서 아침을 맞는 꿈을 꿔


 해운대구는 해운대를 이야기가 흐르는 문화도시로 만들고자 국제신문,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와 함께 지역 내 숨은 이야기를 발굴하고 있다. 아래 내용은 국제신문에 게재된 글로, 6회에 걸쳐 해운대 고운 이야기를 연재한다.


 


팽나무 아래서 시작된 우리 사랑 영원할 줄로만 알았지
어느날 그는 일본군 보국근로대로 끌려 뭍으로 떠나고
난 광목천을 목에 맸지, 그리곤 팽나무의 정령이 되었어
수십 년 세월 지나 바지선에 실려와 다시 뿌리내린 이곳
백발이 된 그가 나타났어, 난 온 힘을 다해 가지를 뻗어


 단아, 오늘도 어김없이 몸뚱이를 가르며 질주하는 자동차의 경적소리에 잠을 깨고 말았구나. 빌딩숲 휘황한 불빛과 도시인들의 분주한 걸음걸이, 바람 속에 숨어든 소음과 매연이 이젠 익숙해질 만도 한데, 아직도 나는 가덕도 율리마을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꿈을 꾼다. 갯내 묻은 바람이 낮은 지붕을 스칠 때의 그 신선한 수런거림을 들으며 깨는 아침이면 가지 끝에서 작은 떨림이 일곤 했다. 이제 그 시간들은 먼 기억으로만 아스라이 존재할 뿐이다. 그곳을 떠나 이곳 해운대 센텀시티 나루공원으로 이사온 지 벌써 3년이 지났다. 아직도 내 몸은 쇠줄에 단단히 감긴 채 땅바닥에 고정되어 있고, 발바닥에 닿는 흙은 마치 입양된 아이가 처음 맞이한 집처럼 생소하다. 물은 낯설고 바람은 때를 가늠할 수 없어 내 딱딱한 외피를 뚫고 싹을 피워 올리기가 무척 힘이 드는구나.
나의 이사에 누구보다 많은 관심과 응원을 보낸 너였으니 굳이 그 날의 힘든 여정을 되새길 필요는 없겠지만 공포와 고통의 기억들은 아직도 나의 잠을 어지럽히고 있다. 신항만 건설에 따른 가덕도 일주도로 개설로 인해 베어질 위기에 놓였던 것을 생각하면 새로운 고향이 된 해운대 나루공원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겠지.
하지만 500여년의 세월 동안 할배나무, 할매나무 라는 이름으로 율리마을에서 뿌리를 박고 살다가 이렇게 낯선 곳으로 오고 보니 처음에는 서러운 마음이 복받쳐서 물관과 체관이 바싹 마르도록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단다. 하지만 나를 살리고자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을 모른 체 할 수가 없었어. 두 달 넘는 준비를 거쳐 옮겨 오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지. 율리마을에서 굴취한 나를 트레일러에 싣고, 트레일러를 바지선에 실은 다음 7시간을 운항하여 해운대 우동항에 도착하였다. 만조 때를 기다려 하선하고 다시 차량통행이 적은 새벽시간을 통해 도로운송을 시작했지. 신호등을 철거하고, 전선을 잘라내고, 또 통신케이블과 전화선을 이동시켰어. 이 모든 일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니 나를 옮겼던 사람들로서는 정말 힘든 시간이었을 거야.
단아, 하지만 그 모든 절차들을 감내할 수 있었던 건 바로 너를 볼 수 있다는 일념 때문이었다는 걸 너는 아니? 내 깊은 뿌리가 섬의 바닥까지 닿아있었지만, 수많은 잎들은 항상 니가 있는 곳을 향하고 있었어. 맞아, 나는 그가 훌쩍 떠나간 그곳이 아리도록 그리웠어.
그가 맨손으로 직접 닦아냈던 수영비행장에 이렇게 수십 년이 지나 내 몸을 안착시킬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러고 보니 벌써 70여년의 세월이 속절없이 지나버렸구나. 그가 떠난 지, 그리고 나 역시 그에게서 떠난 지…. 그래, 그 때 이야기를 해 볼까?
가덕도의 갯바람을 콧구멍으로 흠씬 마시며 할배, 할매나무의 너르고 풍성한 그늘 아래에서 수다를 떠는 것으로 욱이와 순애의 하루는 시작되었어. 발가벗고 바다를 뛰어다니며 놀던 우리 사이에 부끄러움이 생긴 건 몇 살 때였을까. 몸이 커지고 키도 자라면서 많은 것이 바뀌어 갔지만, 우리 사이에는 변하지 않는 것들이 존재했어. 우리를 깨우던 바람과 팽나무와 그리고 팽나무만큼 변함없는 사랑이었지. 사랑은 나무뿌리처럼 단단했고, 회충처럼 몸 속 깊이 박혀버렸지. 그가 팽나무에 내 등을 붙이고 처음 입을 맞추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뛰어. 달도 없는 그믐날 이별의 아픔을 삼키며 처음 그를 받아들인 것도 팽나무 아래였지. 그리고 그의 아이를 뱃속에 품은 채 어찌할 수 없는 내 생을 놓아버린 것도 팽나무였어.
  참 이상하지? 굵은 팽나무가지에 광목천을 감는데 그 순간 나무가 우우 소리를 내며 흔들리더라. 나는 욱아, 하고 그의 이름을 불렀어. 배는 불러올 것이고, 나는 애비도 없는 아이를 뱄다고 동네에서 손가락질 받고 부모님한테 추궁당할 게 분명했어. 그가 떠난 지 두 달 후에야 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았어. 그를 볼 수도 없는데…, 내가 어떻게 살아갈 수가 있을까.
일본군들이 수영에 군용비행장을 건설한다고 했어. 수영해수욕장 주변의 포도밭이 즐비하던 그 아름답던 터전들을 허물고 전쟁을 목적으로 비행장을 만든다는 거야. 많은 사람들이 보국근로대에 동원되었어. 일본군의 감언이설에 속아 보국근로대에 스스로 간 사람들도 있었는데 욱이네도 그런 셈이었어. 욱이의 아버지는 늘 섬을 떠나고 싶어 했지.
욱이도, 나도 무서웠어. 이별이라는 건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 낱말이었어. 이사 가기 전날 밤, 우리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팽나무 아래에서 만났어. 달도 없는 밤, 나는 그의 품에 안겨 소리죽여 울었어. 가지마라는 말조차 할 수 없었던 안타까움을 너는 상상도 할 수 없겠지? 우리는 그 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버린 사랑을 나눴어.
수많은 학생들이 비행장 활주로를 닦는 일에 강제로 동원되었지. 욱이 역시 근로봉사라는 이름으로 힘들게 일을 하고 있었어. 산 중턱에서 작은 바위 덩치를 어깨에 메고 옮겨와 활주로에다 까는 일이 반복됐어. 흙먼지 뒤집어 써가면서 땀에 절어 오후 내내 일을 하다보면 해질녘에야 겨우 집으로 갈 수 있었어.
내가 그런 일들을 어떻게 알았냐고? 내가 팽나무의 정령이 된 것을 처음엔 나도 몰랐어.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나무의 소리가 들렸지. 순애야, 가여운 순애야. 니 사랑을 나에게 심으렴. 나는 기꺼이 팽나무 속으로 연기처럼 들어갔어. 그래, 연기처럼 말야. 사람들은 목을 맨 광목천과 내 몸뚱이를 함께 태우면서 내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했겠지? 내가 나무 안에서 여전히 말똥말똥한 눈으로 욱이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마 그들은 몰랐을 거야.
나는 먼 육지길과 바다길을 건너 그가 일하는 모습을 들여다보곤 했어. 일본군용이었던 비행장은 6.25 전쟁이 발발하자 미군 비행장이 되었고, 전쟁 후에 부산 수영공항으로 바뀌었어. 그 많은 세월동안 내 맘은 늘 공항 근처에 머물러 있었지. 그곳에 가면 욱이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해서였어.
그립고, 그립고 또 그리운 사람, 영원한 사랑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나는 팽나무의 정령이 되었지만, 그래서 내 마음은 열일곱 살 그대로 욱이를 향하고 있지만, 과연 욱이도 내 마음과 같을까? 봄이 되면 어김없이 새잎을 피우고, 여름이면 무성한 잎을 달고 사람들을 내 그늘로 끌어당겼지만 나는 몸통이 텅 비어버린 것처럼 허전했어. 가을의 단풍과 겨울의 빈 가지 사이를 차가운 바람이 무심하게 훑고 지나갈 때도 나는 기다렸어. 단 한 번이라도 그가 나를 찾아오길…. 하지만 그는 오지 않았어. 그는 나를 잊었을까?
6.25 전쟁 중에 다리를 다친 욱이는 육군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결혼을 했지. 혹시 아들을 잃을까 노심초사한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서 한 결혼이었지만 난 몸이 둘로 쪼개지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어. 결혼을 한 후에 그는 아내와 함께 해마다 성묘를 왔지만 한 번도 나를 찾지 않았어. 다른 감정은 아무 것도 없었어. 그런데 이상하지, 참 서운하더라. 그 몇 해 동안 나를 이리도 쉽게 잊으셨나……. 
그리고 나 역시 그를 잊었어. 아니 잊으려고 노력했지. 해풍으로 나를 감싸는 바다와 물처럼 나를 적셔주는 햇살과 만선으로 돌아오는 배, 그런 것들에 위안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었어.
생각나니? 단아, 밀레니엄이니 새천년이니 해서 사람들이 섬에 가서 새해를 맞이하던 그 해에 우리가 만났었지. 2000년은 수영비행장이었던 이곳에도 엄청난 변화가 있었지. 김해국제공항이 개항되면서 수영공항은 군전용비행장으로 용도 변경되었다가 결국 폐쇄되고, 엄청난 규모의 빌딩숲 센텀시티가 생겼지. 이제 이곳에서 굉음을 내며 이착륙을 하던 비행기의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게 되었어. 바로 그 해에 단이 니가 니 아버지의 손을 잡고 나를 찾아 왔던 거야.
단아, 이 나무 나이가 500살, 저 나무는 300살쯤 되었단다.
우와, 아빠, 진짜예?
그럼, 할아버지께서 어렸을 때 이 나무에서 맨날 놀았다카더라.
그런데 와 할아버지는 나무 보러 안 오시는데예?
할아버진 아직 이 나무를 볼 용기가 없다고 하시네.
와예?
할아버지께서 너무나 사랑하던 친구가 이 나무에서 그만 돌아가셨기 때문이란다.
단이 너는 너의 그 작은 팔로 나를 안았어. 후후 그래 어림도 없지. 어른 두 아름으로도 모자라는데 작은 너의 팔을 아무리 벌려도 나를 다 안기는 어려울 테니까. 단이 니가 가지 위로 올라왔을 때, 나는 내 주위를 맴돌던 오래되고도 아찔한 향기를 맡았단다. 너는 욱이의 어릴 때 모습 그대로였어. 그 이후로 너는 성묘때 마다 나를 찾아왔지. 그리고 너는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어.
얼마나 니를 그리워하고 있는지 아나? 내가 찍은 팽나무 사진을 손으로 이래저래 어루만지는 모습 봤제? 할아버지가 팽나무 사진을 가슴에 품고 한동안 숨을 멈추고 있었다니까.
어제는 내가 팽나무한테 가 보자캤더만 할아버지 목울대가 한참 동안 꿀렁꿀렁 움직이더라니까. 울음 참으신다꼬. 무슨 사연인지 니는 알겠지? 말만 들어도 그리 속이 뜨거워지는 사연이 도대체 뭘까?
나무처럼 잘 자라서 어느새 청년이 된 단이 니가 나에게 말을 걸 때, 난 하마터면 내 긴 가지를 뻗어 얼굴을 쓰다듬을 뻔 했단다. 아직도 내 손바닥에 화인처럼 남아있는 그의 눈과 코와 이마와 볼이 어제처럼 생생하구나.
단아, 처음 나의 이사 소식을 들었을 때, 너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펄쩍펄쩍 뛰었다지. 이 동네로 오면 할아버지가 먼저 가서 인사를 하라고 말야. 한곳에 뿌리를 박고 사는 것이 나무의 운명이거늘, 그 나무가 움직일 거라고 욱이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겠지. 그는 이번에야말로 꼭 용기를 내어서 나를 만나고자 했을 거야. 그랬을 테지.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단이 너는 초조해했어. 그의 뇌를 조금씩 파먹어 들어가고 있는 병 때문이었지.
할아버지 볼라꼬 오는 거라고예, 그러니까 제발! 기억 좀 꽉 붙들어 매고 있으라니까!
기억이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는데도 맞잡은 그의 손이 가늘게 떨고 있더라고 했니? 평생을 처음 그대로 간직한 그 사랑을 너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니? 그래, 누가 알 수 있을까. 시공간을 초월한 그 하염없는 기다림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단아, 니가 저기 오는구나. 내가 여기로 온 후 링거를 매달고 힘겹게 도시의 공기를 견딜 그 때부터 너는 틈만 나면 할아버지와 함께 나를 찾아왔지. 니가 하는 질문은 늘 똑같았어.
할아버지, 이 팽나무 기억납니꺼?
…….
이 팽나무예, 할아버지가 어릴 때 살던 마을에서 옮겨 왔다니까예.
…집에 가자, 배고푸다….
입술을 꽉 깨문 단이 니가 둥치에 손을 대어. 너의 손바닥 지문과 손금들이 내 딱딱한 피부 속으로 스며드는구나.
너는 그 먼데서 힘들게 왔는데, …얼마나 너를 그리워하셨는데…, 미안하다, 나무야….
  단아, 그렇게 안타까워하지 않아도 된단다. 아무 것도 담지 않은 그의 눈, 곧 꺼질듯한 희미한 걸음걸이, 무엇보다 바로 눈앞에서 꽉 닫혀버린 기억의 문. 하지만 난 괜찮아. 이렇게 니가 그를 데리고 내 앞에 와 주잖아. 그걸로 됐어.   
욱이의 눈은 나를 보고 있지 않아. 그의 몸은 병들고 기억은 암흑처럼 깜깜해졌어. 그러니 어떻게 도심 가운데 서 있는 나를 알아볼 수 있겠어? 그도 이젠 바람을 이길 수 없는 몸뚱이가 된 거야. 그도 곧 나처럼 풍경이 되겠지.
욱이가 문득 나를 돌아 봐. 그의 눈에 눈물이 어려 있어. 나는 온 힘을 다해 그를 향해 가지를 뻗어. 초점 없이 멍한 그의 두 눈에 눈곱처럼 비어져 나온 그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어. 내 손끝이 바르르 떨려. 곧 그의 얼굴에 닿을 듯 해.
 ■ 글 = 박향·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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