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밥상을 신선하고 풍성하게
크다. 넓다. 많다. 싱그럽다. 군침이 돈다. 반여농산물도매시장에 들어서면 가슴속이 시원해진다. 15만 평방미터 부지에 건물만 7만7천 평방미터, 전국 각지에서 온 온갖 농수산물을 보관하고 판매할 수 있다. 과일 채소 등 280여 품목을 취급하고, 어패류 건어물 육류 일반잡화 등 관련 상품들도 거래한다. 식재료란 식재료는 모두 망라된 게 아닐까. 하루 취급 가능물량이 1,800톤, 차량 11,000대가 드나들 수 있고, 13,000명이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도매시장은 1996년 공사가 시작돼 2000년 11월 준공되었으며 그해 12월 개장되었다. 벌써 14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연륜이 쌓이면서 시장 운영 기법이 점점 개선되었다. 지난해엔 전국 32개 공영 도매시장관리기관 평가에서 반여농산물도매시장 관리사업소가 최우수 기관으로 선정돼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상을 받았다. 물류체계 개선, 품질 관리, 전자경매 추진, 법인 중도매인 육성 지도 등 평가항목 전 분야에서 골고루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한다. 부산엔 엄궁농산물, 감천수산물 등 3개 도매시장이 있지만 전국 1위를 차지한 영예는 처음이다. 지난해 거래물량은 26만7천 톤, 금액으로는 4,200억 원에 달했다. 성장세가 전국 최상위권이다. 대형마트나 홈쇼핑, 온라인 거래의 비중이 증가하는 가운데 도매시장이 이만한 성적을 거둔 까닭은 좋은 물건을 착한 가격에 판매하기 때문이 아닐까. 일반 소비자는 물론, 전통시장이나 동네가게의 상인들과 요식업소 종사자들이 새벽부터 몰려온다고 한다. 50대 후반이나 되었을까, 중도매인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다. 시장 자랑 좀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자랑할 게 뭐 있습니까. 새벽 세 시부터 나와 쉬는 날 없이 고생만 하는데.라는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새벽부터 경매가 시작되고, 주요 단골손님들이 그 시각에 줄을 이으니 단잠자기란 불가능할 수 밖에. 망미동에서 6년 과일가게를 하고 도매시장 개장 초부터 이 일을 계속했으니 도합 20년 경력이다. 아들 하나 딸 둘 대학 보내고 어른 만들었으니 보람 있는 고생이 아닌가. 큼직한 수박 하나와 포도 한 상자를 구입하고는 과일 고르는 요령을 귀띔해 달라고 졸랐다. 포도는 알이 새까맣고 분이 하얗게 피어야 하며, 줄기가 새파랗고 싱싱해야 한단다. 수박은 두드려보면 탱글탱글한 소리가 나고 꼭지가 누워있는 게 좋다고 한다. 농산물시장은 도시인들이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할 수 있는 곳이다. 딸기와 토마토의 제 철은 지나갔고, 수박도 끝물에 가까워졌으며, 포도와 복숭아가 한창이다. 이어서 사과와 배, 감의 전성기가 찾아오겠지. 바나나, 파인애플, 멜론이나 키위 같은 수입과일들은 제 철 구분이 없는지 계절에 관계없이 소비자들을 유혹한다. 그런데 올해는 너무 이른 추석 때문에 과수재배 농민들이나 소비자들의 걱정이 많은데 도매시장의 상인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 시장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여 관리사업소 김순관 계장에게 물어봤다. 3개 도매법인, 중도매인, 경매사, 그리고 하역반원 등 모두 1,2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단다. 기업이라고 치면 대기업이다. 애써 키운 농산물을 이 시장에 내다파는 농민들, 전통시장이나 동네가게로 가져가는 소매상인, 그리고 먹거리를 직접 구해가는 소비자를 포함하면 수없이 많은 관계와 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누이도 좋고 매부도 좋은 공생(共生) 관계라야 오래 오래 계속될 것이다. 농산물시장 주변은 그린벨트 구역이어서 함부로 개발할 수 없다. 저온저장시설 등 시설을 늘리거나 현대화하는데 어려움이 없지 않다. 부산시가 추진 중인 반여 도시첨단산업단지가 조성되면 도매시장의 고민도 덩달아 해결될 수 있을지. 농산물시장을 나서면 석대화훼단지로 이어진다. 150여 전문업소가 밀집한 부산 최대의 꽃시장이다. 반여농산물시장서 마련한 우리 식품에 석대서 구한 노란 국화 몇 송이를 곁들이면 식탁이 정말 풍성해지지 않을까. 벌써 가을이 기다려진다.
*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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