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곤의 해운대 이야기 - 해양레포츠의 산실, 요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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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광문화과 작성일 2014.03.07

부산의 자랑, 해운대 숨은 보석
봄바람과 함께 활기 되찾기를


불과 30년 전 운촌에서 승당마을까지는 한산한 어촌의 풍경, 그리고 수비 삼거리를 지나 민락 다리까지는 찾는 이 없는 쓸쓸한 백사장이었다. 수영비행장도 공항의 기능이 김해로 옮겨간 이후 컨테이너 박스로 성(城)을 쌓은 황량한 모습이었다.
100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수영만 매립지는 상당 기간 흙먼지만 풀풀 날렸다. 1987년 대통령 선거 때 전국의 관광버스가 총집결한 듯 유력 후보들의 유세장으로 명성을 날리기도 했지만.
그런데 비행장은 센텀시티로, 매립지는 마린시티로 이름을 바꾼 데서 알 수 있듯이 상전(桑田)이 벽해(碧海)가 되었다.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초고층 빌딩들은 밤마다 팔색조로 변신하여 홍콩이나 뉴욕의 야경을 방불케 한다. 매립지의 변화를 이끈 주역은 아파트 건설이었지만, 해운대답게 만든 첫 발은 요트경기장이었다. 국민생활체육관, 시립미술관, 벡스코, 영화의 전당 같은 공공시설은 세월이 훨씬 지난 다음에야 태어났다.
육상과 해상 합쳐 23만 평방미터 규모인 부산 요트경기장은 요트와 보트 448척을 계류할 수 있다고 한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1988년 올림픽, 그리고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요트경기가 열렸다. 바람의 힘을 빌려 파도를 넘고 넘어 망망대해로 나아가려는 세일러들의 꿈이 자라는 곳이다.
수영강변에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쑥이 고개를 내밀 즈음에 찾아간 요트경기장에도 봄 내음이 짙어졌다. 정면으로는 광안대교 위로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고 좌우로는 은빛 마천루들이 저마다 위용을 자랑한다.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올림픽의 엠블렘이 새겨진 성화대, 승리의 여신 니케가 날개를 펼친 올림픽 기념탑은 주변 풍경에 비해 빛바랜 훈장을 보는 듯하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시작되면서 개막 폐막식을 비롯한 야외 상영장으로 이용되었던 중앙광장은 영화의 전당이 건립되면서 시민들의 발길이 크게 줄어든 것은 아닐까. 요트경기장 재개발 논의는 몇 년째 거듭되었지만 어쩐 일인지 진척되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높고 커다란 시설만 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어떤 형태로든  활성화 방안을 찾아야할 것이다. 계류장에 가득 들어찬 배들도 해양레포츠의 봄바람이 어서 불어주길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로서는 바다가 또 하나의 영토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해양 레저스포츠가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것 또한 사실이다. 바다는 선원이나 어부들의 생업의 터전일 뿐, 보통 사람들은 접근하기조차 쉽지 않다. 인구가 140만 명인 뉴질랜드 오클랜드에는 요트를 포함한 보트가 13만 척이나 돼, 인구 비례로 세계 1위라고 한다. 육지에서 바다로 보트를 띄울 수 있는 시설이 173곳이니 바다를 즐기는 시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2013년 10대 뉴스의 1위가 자국팀이 아깝게 우승을 놓친 세계요트대회 소식일 정도로 해양스포츠에 관심이 높다.
우리로서는 친수공간과 시설을 확충하는 게 시급한 과제다. 그리고 저렴한 비용으로 배우고 익히며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늘어났으면 한다. 해운대 지역에는 송정에 스쿠버다이빙 전용 풀과 해양레저 멀티숍 등을 갖춘 마리나시설이 들어섰고, 나루공원에도 카약 카누 등 8가지 수상레저기구를 이용할 수 있는 센텀마리나파크가 준공되었다. 해마다 10월이면 드래곤보트 국제대회가 나루공원 앞에서 열린다. 바다와 친숙한 시민이 많아지면 외국관광객을 불러들일 수 있고 해양레포츠산업의 발전을 앞당기게 된다. 부산의 자랑, 해운대의 숨은 보석 요트경기장이 활기를 찾길 바랄 뿐이다. 
 *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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