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곤의 해운대 이야기 - 반송을 세우자, 반송을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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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광문화과 작성일 2014.04.08

인정 많고 살기좋은 반송
행복의 꿈 펼치리라 우리 마을


천연기념물 180호인 경북 청도 운문사 처진 소나무는 3미터 높이가 되면 옆으로 자라다가 밑으로 처져 유송(柳松)이라고도 불린다. 이에 비해 역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문경이나 무주, 함양의 반송(盤松)은 부채 살, 또는 우산을 펼쳐 놓은 것처럼 뻗어나간다. 하늘로만 치솟는 울진의 금강송이나 적송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하늘에 닿고 싶은 마음이야 마찬가지일텐데 반송은 왜 옆으로 자라는 걸까. 땅으로 땅으로만 자라던 반송의 겸손은/삼절사(三節祠) 처마 밑에 충절로 맺혔다(반송연가. 박두길 장산문화원장 시)
계절이 성큼 앞당겨졌는지 개나리며 목련이 성급하게 꽃봉오리를 터뜨린 3월 중순, 도시철도와 버스를 몇 차례 환승하고서야 해운대구 반송2동 주민자치센터를 찾을 수 있었다. 지난 2004년부터 주민자치위원회가 내건 반송을 세우자!라는 구호가 눈에 쏙 들어온다. 반송나무가 많은 지역이라 반송이라고 이름 붙여진 동네에서, 나무도 심고 지역을 일으켜 세우자는 절묘한 슬로건이다.
반송 사람들의 겸손함은 나라를 지키기 위한 충절로 이어진 것일까. 임진왜란 때 순절한 남원 양씨 세 분의 위패를 모신 사당 삼절사가 반송의 정신적 지주가 아닌가. 반송은 역사적으로 오래된 고장이었다. 장산과 운봉산 사이의 물 좋고 공기 좋은 고장이니 인심 좋고 살기 좋은 전통 마을이었다.
그런데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던 시절 정책이주촌이 되어 도시편의 시설이 태부족인 상태에서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생활여건이 열악할 수밖에.
한 때 고단하고 지친 다리를 끌며 모여 들던 이 곳/그리하여 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던 사람들(반송연가). 아파트가 세워지고 도시철도가 다니기 훨씬 이전부터 반송은 일어서고 있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라고 러시아 시인 푸시킨이 말했던가. 반송 사람들의 가슴에는 이웃의 아픔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협동하는 저력이 샘솟고 있었다.
2004년, 반송2동 주민자치위원회는 주민들의 의견을 두루 두루 모아 반송 발전 100대 실천과제를 정하고 행동에 들어갔다. 지역의 상징인 반송 나무를 심고, 소규모 주차장을 만들고, 공공시설 관리를 위한 주민 봉사가 시작되고, 반송천을 생태하천으로 가꾸며, 느티나무 도서관 등 문화시설을 갖추기 시작했다.
반송 100대 과제는 우리 선조들이 어려울 때 서로 돕고(患難相恤), 잘못된 일 바로 잡고(過失相規), 아름다운 풍습 나누고(禮俗相交), 착한 일 서로 권하자(德業相勸)던 향약(鄕約)과 다름없는 게 아닌가. 향약이나 두레, 그리고 계(契)는 자랑스러운 전통 문화다. 어느 학자는 이를 예치(禮治), 또는 마을 단위의 인문학 운동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효과는 서서히 나타났다. 소규모 단위의 공동체운동이 다양하게 전개됐고, 지역사회에 활기가 느껴졌다. 대외적으로는 2005년 전국 주민자치 박람회에서 큰 상을 수상하였다.
최낙용 당시 주민자치위원장(현 고문)은 전공인 음악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여 반송찬가를 작사 작곡하였다. 장산자락 담안골 충절의 고장/보람과 긍지로 살아온 세월/인정 많고 희망에 찬 살기 좋은 우리 마을/행복의 꿈 펼치리라 반송 반송. 자치센터 앞마당에 세워진 기념비 앞에 서면 센서가 작동해 찬가가 저절로 나온다.
아직도 사회복지 수요가 비교적 많은 지역이지만, 이처럼 주민 스스로 자조(自助)와 자립(自立)의 발판을 마련한 곳은 드물 것이다. 전화기 너머로 최낙용 고문의 자부심이 진하게 배어나온다.
반송의 변화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반송천의 맑은 물이 태평양으로 흘러가듯, 지역 공동체 운동과 도시재생 운동의 모델로서 부산은 물론 전국에서 큰 자취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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