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곤의 해운대 이야기 - 주천 조각보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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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광문화과 작성일 2014.07.12

예술로 승화한 전통조각보 산실


보자기는 물건을 싸서 운반하거나 보관하기 위해 천으로 만든 도구다. 초·중학생 시절 해운대 재래시장 인근 집에서 멀리 좌동 몰리터 논까지 새참 심부름을 갈 때 소쿠리를 덮었던 게 보자기고, 기제사 다음 날 이웃 어르신들에게 제삿밥이며 생선이나 산적을 보내드릴 때 요긴했던 게 보자기다. 해운대구 좌동 도시철도 중동역에서 걸어서 10여 분, 옅은 베이지 색 3층 건물에 주천문화원, 주천 조각보 박물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부산의 대표적 아파트 밀집지역인 신도시에 이렇게 고즈넉한 공간이 있을 줄이야.
문화원 원장이자 박물관 관장인 주천 김순향 선생이 다식과 전통차를 원목 다상 위에 정갈하게 내놓았다. 세월의 흔적이 눈 가에 조금 남아있지만 일흔 여섯이라기엔 아직 고운 자태다. 경북 경주 출신이지만 부산에 온 지 48년 되었으니, 이젠 누가 뭐래도 부산 사람이다. 몇 가지 질문을 던졌더니 그의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열정과 집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열두 살 때 할머니 어머니로부터 바느질을 처음 배웠다고 한다. 고향 과수원이나 갯가에서 일하던 분들이 모두 한복을 입었던 시절이니 당시엔 10대 소녀라도 바느질은 필수과목이었을 게다. 게다가 자투리 천을 이어 붙여 보자기나 버선을 만들어 신을 만큼 궁핍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나이 서른을 넘기고서야 고향집에서 즐겨 썼던 조각보가 떠올랐고, 아차!하는 생각에 조각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옛 문헌을 뒤지고 자료를 수집하였다. 그리곤 작품 활동에 몰두하였다. 하루 6시간 이상 바느질을 하다 보니 가운데 손가락의 지문이 닳아 없어질 정도가 되었다.
김 관장은 이름난 전시장에서 몇 차례 작품전을 가진 뒤 2005년 부산APEC 정상회의 때 부산시립박물관에서 조선 여인의 미라는 이름으로 특별전시회를 가져 각국 정상 부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2006년 조각보박물관을 개관하였고, 2010년 노동부로부터 조각보 부문 전승공예 기능전승자 1호로, 2013년 부산시 공예명장으로 선정되었다. 상복도 많아 전승공예대전을 휩쓸다시피 했고, 부산시 문화상을 비롯 각종 표창을 받은데 이어 최근엔 KNN 문화대상도 수상했다.
1층 박물관 전시장은 규모가 크지 않으나 고풍스럽고 단아한 분위기다. 태극기 조각보 몇 점이 눈길을 끈다. 임시정부 김구 주석이 도산 안창호 선생의 부인에게 보낸 친필 서명 태극기를 모델로 만든 김구 주석 태극기보, 그리고 가운데 태극이 소용돌이치는 아리랑 태극기보도 전시돼 있다. 바둑판 모양의 바둑무늬 조각보, 사찰의 탑 모양을 원용한 탑보, 모시에 먹으로 짙고 옅게 사각 물결을 표현한 뒤 가운데 난초를 넣은 난보도 무척 아름답다. 김 관장의 작품 가운데 우주 태양보, 바람개비, 복잡한 도시의 야경, 돐띠 등 네 점은 디자인 특허를 받았다고 한다. 기법은 전승 공예이지만 디자인은 우리 전통미에 현대미를 접목시켰다. 이러니 일본인 관광객들과 애호가들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김 관장은 차인(茶人)으로서도 자부심이 대단하다. 40여 년 전 부산 차인회 창립 회원이었고, 부산여대에서 19년 동안 다도 강의를 하였다. 또 부산 차 진흥원 초대 원장을 맡기도 했다. 큰 며느리가 차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고, 막내 며느리가 조각보 공예 계승자가 되었다. 며느리들이 두 분야의 후계자가 되었으니 자식 복도 참 많다.
박물관 뒤뜰도 볼만하다. 비록 좁은 공간이지만 집 뒤 언덕과 조화를 이뤄 기품 있게 꾸며놓았다. 자투리 천으로 예술품을 창조한 정신 때문인가, 자투리 공간도 훌륭한 정원으로 바뀐 것이다. 주천 조각보 박물관! 한 여인의 열정이 일궈놓은 해운대의 숨은 진주라고 부를 만하다. 
 ■ 언론인


박병곤의 해운대 이야기 -  주천 조각보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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