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곤의 해운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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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광문화과 작성일 2014.08.18

휴식과 치유의 해안, 청사포


푸른 뱀(靑蛇)의 전설이 깃든 청사포 가는 길, 포구 이름 마냥 달맞이 길을 구불구불 돌아가야 한다. 벚꽃이며 개나리가 만개한 봄이 아니더라도 사시사철 절경이다. 맑은 날엔 수평선 너머 지구 반대편도 보일 듯 탁 트이고, 흐린 날엔 짙은 해무가 신비감을 더해준다. 미포서 송정까지 15곡도(曲道)의 절반 쯤 왔을까, 오른 쪽으로 돌면 길이 무너지듯 바다로 쏟아져 내려간다.
먼 옛날 전설 속의 여인 골매기 할매는 바다로 간 남편이 돌아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수십 년이 지난 어느 날 용왕이 보낸 푸른 구렁이를 따라 용궁으로 간 할매는 남편과 상봉했다고 한다. 사랑의 전령사 구렁이의 이름을 딴 청사포(靑蛇浦)는 세월이 흘러 푸른 모래의 청사포(靑沙浦)로 바뀌어 버렸다. 골매기 할매가 남편을 기다리며 심었다는 소나무는 이제 수령 300년이 넘어 망부송(望夫松)이라고 불리며 마을의 수호신으로 대접받고 있다.
청사포는 부산의 역사를 까마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게 만든 곳이다. 1990년 동해남부선 철로 옆 구릉에서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원반형석기, 석인, 박편 등 기원전 1만5천년 전후 유물로 추정되었다. 장산의 넉넉한 품 안에서 살았던 선조들은 청사포 앞바다를 새로운 식량의 보고로 삼았지 않았을까. 부산을 역사가 일천한 곳이라고 누가 감히 폄하할 수 있으랴.
청사포를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갈라놓은 동해남부선 철로에선 더 이상 기적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추억을 더듬으며 옛 철길을 걷는 사람들이 주말이면 수천 명. 철도 8경(景) 가운데 으뜸으로 꼽힌 미포-송정 해안의 아름다움과 청사포의 어촌 정취가 새삼 각광받는 계기가 된 게 아닐까. 구덕포와 경계 지점인 고두백이(고두말) 해안선은 기암으로 이어져 풍광이 빼어나며, 정월 대보름달을 먼저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던 곳이다. 이 부근엔 5개의 암초가 징검다리처럼 자리잡아 다릿돌이라고 불린다. 한류와 난류가 맞부딪치고 물이 맑아 기장 미역의 원산지라고 알려져 있다.
지금부터 약 100년 전, 정확하게 1910년부터 23년 동안 어촌계 회관 자리에는 청사서당이 있었다. 좌동 미포 송정 온천(지금의 중1동 구청 일대) 지역의 학동들이 이곳에서 한학을 배워 상급학교로 진학했다고 한다. 처얼썩 철썩 파도 소리에 뒤섞인 학동들의 글 읽는 소리는 얼마나 청아했겠는가. 그러고 보니 필자가 해운대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청사포 친구들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책 보따리를 허리춤에 질끈 동여맨 채 그 먼 길을 걸어 다녔는데, 할아버지들의 학구열을 물려받았던가 보다.
방파제 이 쪽 저 쪽 낚시꾼들이 세월을 낚고 있고, 마을 해녀들은 직접 잡아온 멍게나 성게, 문어로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장어구이와 조개구이 식당들은 오래된 횟집 못지않게 손님들의 입맛을 돋워준다. 구석기 시대나 골매기 할매 시대와 다름없이 지금도 청사포는 어촌이다. 하지만 일터로서의 어촌이 아니라, 휴식과 위무, 힐링의 어촌이다. 낭만가객 최백호가 가요 청사포에서 귓가에 간지럽던 너의 속삭임/아직도 물결 위에 찰랑이는데 찰랑거리는데라고 노래하였듯이, 첫 사랑의 추억을 떠올리고 세월의 덧없음을 아쉬워하는 곳이다. 세상사에 지친 사람들에겐 상처를 치유하고 활기를 되찾아가게 한다. 시인 동길산은 시 해안선에서 사람도 저마다 해안선을 품고 살지/안 좋은 일 꾸역꾸역 밀려와/그만 맥을 놓으려는 순간/버텨낼 만큼 끌어당겨 손을 탁 놓는/통고무줄 같은 해안선이라고 하지 않았나.
2009년 국토부 공모에서 선정된 행복한 도시어촌 청사포 만들기가 마무리되면 새롭게 단장한 청사포는 어떤 모습일까 자못 궁금해진다. 달맞이고개 위로 수십 층 아파트들이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았지만, 청사포의 하얀 등대 빨간 등대는 오늘도 밤바다를 밝힌다. 푸른 구렁이든 하얀 갈매기든 저마다의 길을 잘 찾아가시라고.
 ■ 박병곤.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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