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나온 문화, 달맞이 프리마켓
슥삭 슥삭 10여 분 만에 동화속 주인공 되어보고
가족 연인 친구 관광객들에게 봄날의 소중한 추억 안겨주고
송정에서 달맞이고개로 가는 길, 자동차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차라리 걷는 게 더 빠를 듯하다. 인도에도 상춘객이 물결을 이룬다. 저 많은 자동차와 사람들은 무엇을 찾아서 이 거리로 몰려나온 것일까. 불쑥 찾아온 이상고온 현상 때문에 예년보다 일주일가량 일찍 꽃봉오리를 터뜨린 벚꽃이 꽃샘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맥없이 떨어져 버린다. 화사한 꽃 비를 맞은 시민들은 어떤 느낌일까. 봄날의 축복이라고 생각할까, 세월의 덧없음을 떠올릴까. 1997년에 세워진 해월정, 어느새 달맞이고개의 상징물이 되었다. 달을 보지 못하는 대낮에도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면 가슴 속이 시원해진다. 달맞이동산 기념비, 춘원 이광수의 해운대에서 시조가 새겨져 있다. 춘원의 친일행적 때문에 한때 철거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작품만큼은 해운대의 풍광을 노래한 절창(絶唱)이 아닌가. 새천년기념 시계탑, 시계바늘이 너무 빨리 돌아간 것일까, 건립된 지 벌써 14년이 지나갔다.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서 펼쳐진 장터는 어떤 모습일까. 토요일, 일요일 오후에 문을 여는 달맞이 아트프리마켓! 이름이 예쁘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2011년부터 시작됐으니 올해로 4년째다. 유리병이나 컵에 그림을 그려 넣은 공예품, 여러 가지 꽃이 새겨진 수제 비누, 고급스러운 가죽공예품, 머그컵과 다기류, 아로마 오일, 전통미가 물씬 풍기는 한지공예품, 각종 액세서리 제품 등이 진열되어있다. 견본을 보면서 플라스틱류를 이어붙이는 체험행사장엔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직접 만들어보는 꼬마 손님들로 가득하다. 가장 인기 높은 부스는 일러스트 캐리커처,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손놀림이 가벼운 작가 앞에 앉으면 10여 분 만에 동화책 속의 주인공처럼 그려진다. 봄날의 값진 추억임에 틀림없으리라. 이 곳 저 곳 기웃거리다가 아로마 테라피라고 적힌 조그마한 병을 하나 구입했다. 방향제가 아닐까. 가격은 1만 원. 효용이 어떨지 알 수 없지만 작가들을 응원하기 위해서다. 달프 작가가 65명이라고 하는데, 저마다의 솜씨와 끼를 마음껏 발휘하여 달맞이고개를 찾은 시민들에게 추억을 안겨주고 작가들도 창작활동에 힘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난 2월 하순 우연히 들렀던 서울 북촌한옥마을 골목 골목에 마련된 젊은 작가들의 공방이 외국인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다. 4년 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주말 벼룩시장에서 작품을 판매하는 한국인 젊은 작가를 만나 얼마나 반가웠던지, 그의 작품 연리목(連理木) 몇 점을 얼른 구입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문화나 예술이 웅장한 박물관이나 극장에서만 향유할 수 있는 전유물은 아니지 않은가. 장터만큼, 거리만큼, 소통이 원활하고 전달이 잘 되는 곳이 또 어디 있을까. 오늘은 시간이 이르기 때문일까, 헌책을 기부하면 기념품을 준다고 했는데 보이질 않고, 장터의 흥을 돋워줄 거리공연도 찾아볼 수 없으니. 달맞이고개는 예쁜 카페와 소문난 레스토랑이 즐비한 곳. 먹고 마신 뒤 그냥 발걸음을 돌리기엔 너무 아쉽지 않을까. 달맞이고개 초입에 줄지어 선 갤러리와 아트프리마켓도 둘러보고 문탠로드나 삼포해안길, 동해남부선 철로를 걸어보면 더욱 알찬 여행이 될 것이다. 오시게장이나 남창장, 구포장 등 5일장을 여러 곳 둘러봤고, 동래시장, 부전시장 등 전통시장도 들락거렸다. 뉴질랜드에선 일요일 새벽장, 토요일 파머스마켓, 나이트마켓도 부지런히 누볐다. 장터순례엔 먹거리와 음악이 함께 해야 신명나는 법인데, 아쉬움을 숨길 수 없다. 아트프리마켓의 품격을 지키면서 흥을 돋울 방법은 없을까. 달프 작가들이 일부 입주해있는 솔밭창작마을에도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으면 한다. 그나저나 꽃잎은 계속 떨어지고, 봄날은 간다. /박병곤.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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