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곤의 해운대 이야기 - 추억 속에 묻어야 할 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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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광문화과 작성일 2013.12.04

지나간 세월은 망각의 대상 아니라 후세들에게 남길 소중한 자산


역(驛)은 만남이다. 그리고 헤어짐이다. 사람과 사람이, 문명과 물산(物産)이 만나고 헤어지고 뒤섞이는 곳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해야 하고,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야 하는 고통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니 정(情)과 한(恨)이 동전의 앞, 뒷면처럼 교차하는 곳이다.
역은 비움이다. 훌훌 털며 떠나고 돌아오는 원점이다. 아쉬움과 설렘이 한 지붕 아래 지내야 하는 운명이다.
 카테리나 행 기차는 8시에 떠나네/11월은 내게 영원히 기억 속에 남으리…/기차는 멀리 떠나고 당신 역에 홀로 남았네…. 소프라노 조수미 씨의 연주로 우리에게 알려진 이 노래는 나치에 저항 운동을 한 그리스의 레지스탕스 청년을 잊지 못하는 여인의 마음을 담고 있다.
가슴이 시리도록 애잔하고 아름다운 선율이다.
남인수 선생의 가요 이별의 부산 정거장에 공감했던 우리 국민도 주현미 씨의 공항의 이별을 흥얼거린 지 벌써 한 세대가 훌쩍 지나버렸다.
속도와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세태 속에서도 간이역은 어머니 품 속처럼 여전히 포근하고 그립기만 하다.
동해남부선 해운대역! 경주로 수학여행을 떠났던 초등학생 시절, 얼마나 가슴 설레게 했던 이름이 아니던가.
송정역! 송창식 씨의 가요 고래사냥을 읊조리며 야유회며 MT 가느라 드나들었던 낭만의 온실이었다.
동해남부선은 울산, 기장의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농수산물을 동래, 부전시장으로 내다팔던 하이웨이였으며, 중고생들의 통학로가 아니었던가.
동해남부선 복선전철화사업이 마무리되어 가면서 해운대역과 송정역은 이제 추억 속에 묻어두게 되었다.
해운대역은 신도시로, 송정역은 맞은 편에 새 역사로 옮겨간다. 해운대역은 1934년 첫 운영에 들어가 80년 가까운 역사(歷史)를 간직하고 있다. 도시교통 수단이 다양화된 요즘에도 하루 이용객이 2천 명 가량 이라고 하니, 이 역을 거쳐 간 사람들은 천문학적 숫자일 것이다.
전국의 철도 역사(驛舍) 가운데 단 하나 뿐인 팔각형 지붕은 1987년 다시 지어진 것인데, 어떤 형식이든 보존되길 바랄 뿐이다. 송정역 또한 1940년 12월에 지어진 목조 단층 기와지붕 형태로 보존 가치가 높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 역은 철도 박물관으로 활용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물류의 대동맥인 철도가 복선화되고 일부 노선이 바뀌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해운대, 송정 역사와 동해남부선 폐선 부지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문제가 남은 숙제다. 개발만이 능사가 아니라 보존하고 재활용하는 지혜가 무엇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루브르 박물관, 퐁피두 센터와 함께 프랑스 파리의 3대 미술관으로 손꼽히는 오르세 미술관도 방치된 역사를 재생시켰다는 점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역사의 주인인 코레일은 수익에만 골몰할  것이 아니라 후세에 누를 끼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프랑스 정부가 불 타버린 최고재판소 청사를 기차 역사로 재건된 오르세 역을 50년 가까이 버려두었다가, 미술관으로 개조한 지혜를 배워야 한다.
이젠 밀레, 드가, 세잔, 고갱, 고호 등 인상파 거장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화물 열차만 다니던, 문 닫힌 부산진 역사에서 부산-독일 미술인 전시회가 열렸을 때 시민들의 호응이 어떠했는지 되새겨 보길 바랄 뿐이다.
철도 박물관도 좋고 동백 아가씨 역, 돌아와요 부산항 역, 또는 해운 최치원 역, 그 이름은 무엇이든지.
지나간 세월은 망각과 청산의 대상이 결코 아니라, 후세들에게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으니까.
해운대 역에 나가 차표를 끊고/…손에 잡힐 듯한/청사포/구덕포를 지나/송정에 닿은 낮 기차가/잠시 숨을 돌리면/동으로 해돋이 바다의/전설을 싣고/운명처럼 떠나간/옛날이 있어.(김창근 시/ 동해남부선 2) 
대한팔경 가운데 하나가 해운대이며, 전국 철도 팔경 가운데 으뜸이 해운대였다고 한다. 바로 미포-청사포-구덕포-송정, 동해남부선 그 길이 아닌가.
미포에서 청사포로 돌아가는, 고두배기에 정월 대보름달이 떴을 때 인산인해를 이룬 게 엊그제 일 같다.
*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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