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곤의 해운대 이야기 - 해운대 보름달, 볼수록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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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광문화과 작성일 2014.02.03

대한팔경 으뜸 풍광 달맞이 월출
별도 달도 즐기며 마음의 여유를…


중국 고대 신화에 항아(姮娥)라는 선녀가 나온다. 활의 명인인 예(?)의 아내였던 항아는 남편이 서왕모로부터 얻은 불사약을 먹고는 달나라에서 홀로 살게 되었다. 빼어난 미모는 여전했으나 외로움이야 이루 말할 수 있었겠는가.
술과 달의 시인 이백(李白)은 파주문월(把酒問月)이라는 시에서 흰 토끼는 사철 내내 약방아 찧고/ 항아 선녀 외로이 살며 뉘와 이웃할꼬라며 달과 항아를 노래했다.
중국은 지난해 옥토(玉兎)라고 이름붙인 달 탐사차량을 실은 위성 항아를 발사하였다. 언젠가 첨단과학무기로 이어질 수 있는 위성과 장비의 이름을 신화 속의 선녀와 옥토끼로 내세운 스토리 텔링이 놀랍기만 하다.
이백이 시 달 아래서 홀로 술을 마시며(月下獨酌)를 남겼듯이, 옛 사람들에게 달은 고독을 달래줄 그리움의 상징이었다. 어머니이자 고향이었고, 벗이자 님이었다.
삶의 고단함을 털어버리고 새로운 꿈을 이뤄줄 소망등(所望燈)이었다. 음력을 사용하던 농경사회에서 보름달은 풍요로움의 대명사였다. 우리 선조들은 특히 정월, 칠월(백중), 팔월 보름(추석)을 명절로 삼았으니 여러 가지 세시풍속이 이어져 왔다.
보름달, 그 가운데서도 해운대의 정월 대보름달은 으뜸이다. 송정에서 청사포, 미포로 이어지는 와우산(臥牛山) 기슭에서 맞이하는 보름달은 백미(白眉)가 아닌가. 활처럼 휘어진 동해 바다에서 떠오르는 둥근 달을 푸른 소나무 숲 사이로 바라보면 저절로 두 손 모으게 되고 고개가 숙여진다. 해운대 보름달을 보며 기도하면 청춘남녀들의 사랑이 이뤄진다는 전설은 결코 감언이설이 아니리라. 간절한 소망에 보름달의 넉넉함이 더해져 시너지 효과를 거두는 게 아닐까.
1929년 해운대를 찾은 춘원 이광수는 누우면 산월(山月)이요 앉으면 해월(海月)이라/ 가만히 눈 감으면 흉중(胸中)에도 명월 있다고 찬탄했고, 1936년 왕평이 작사하고 선우일선이 부른 대중가요 조선팔경은 석굴암 아침 경(景)은 못 보면 한(恨)이 되고/ 해운대 저녁달은 볼수록 유정(有情)해라고 노래했다.
 해운대 청사포를 자주 찾았던 성철 스님은 넓은 바다와 밝은 월광이 부처의 지혜(佛智)를 뜻한다며 해월을 풀이했다.
오늘날의 달맞이 길과 해월정이 조성되기 이전, 1960년대 미포에서 동해남부선 철길을 따라 동쪽으로 걸어간 고두말(고두백이) 해안에서부터 백사장까지 얼마나 많은 인파가 보름달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던지. 대중교통이 발달되지 않았던 그 시절, 대보름달을 보러 왔던 시민들은 대부분 버스를 타지 못해 수영까지 걸어서 귀가하였다. 초등학생이었던 그즈음 달맞이 못지않게 그 많은 인파가 구경거리였던 셈이다.
정월대보름 달맞이는 양력 1월 1일 해맞이와 함께 해운대의 새로운 문화축제로 뿌리내렸다. 소나무를 엮어 세운 높다란 달집 안에 액(厄)을 없애는 액지와 기원을 적은 소망지를 매달아 태우고, 농악 장단에 맞춰 강강수월래 춤을 추면 흥겨움이 절정에 달하게 된다. 시민 개개인의 액땜은 물론, 모두의 안녕을 기원하는 공동체 의식도 고취되리라. 카메라 플래쉬가 쉼없이 번쩍이는 순간이다.
해운대구가 달맞이 언덕에 인공폭포와 스카이 워크, 하늘 숲길, 오토 캠핑장 등 관광 인프라를 대폭 확충한다는 소식이다. 해수욕장 중심이던 관광 자원이 크게 늘어나면 사계절 관광이 가능해지고, 문화의 거리가 조성되면 관광의 품격 또한 크게 높아질 것이다.
게다가 해운대 저녁달을 완상할 수 있는 문화프로그램이 가미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파에 시달려 별과 달을 즐길 수 없었던 현대인들이 해운대에서 마음의 여유를 되찾아 대한팔경의 으뜸인 풍광(風光)을 만끽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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