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곤의 해운대 이야기 -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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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광문화과 작성일 2013.09.13

솔향 맡으며 파도 소리 들으며 마냥 걷다보면…


길에는 사람이 오고 가고, 말과 글이 오간다. 물자와 문명이 교류되고, 사상과 종교가 뒤섞이고 충돌한다.
중국 한나라 무제 때 서역 원정에 나섰던 장건은 두 차례나 포로로 잡혀 10여 년 만에 귀국했다. 그는 전쟁과 외교에서 실패한 장수였지만 세계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그가 개척한 길은 실크로드. 이슬람과 로마 문명이 동방으로 들어오고 중국의 특산품이 그 길로 유럽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위대한 인류문화 유산도 여행의 산물이다.
신라의 혜초 스님은 인도를 방문하여 왕오천축국전을, 이탈리아 사람 마르코폴로는 동방견문록을, 조선의 연암 박지원 선생은 열하일기를 후세에 전했다.
오늘날 길의 의미는 물류의 대동맥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역사와 문화, 삶을 체험하고 소통하는 장(場)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제주의 올레길, 지리산의 둘레길이 그러하듯, 부산에는 갈맷길이 시민들은 물론 전국의 도보 여행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미포에서 청사포, 구덕포를 거쳐 송정까지 가는 삼포길도 그 가운데 하나다. 부산 시민들에게는 휴식을 즐기며 건강을 다지게 하는 시민공원의 역할을, 외지 관광객들에게는 동백섬, 광안대교, 해운대 푸른 바다의 빼어난 풍광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관광지 역할을 한다.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라 하여 이름붙인 와우산(臥牛山)의 꼬리인 미포(尾浦)를 지나, 부산의 몽마르뜨라는 달맞이길에 올라서면 시야가 탁 트인다. 자동차가 다니는 길을 벗어나 한적한 산책로에 들어서면 솔 내음과 바람 소리, 파도 소리가 오감을 만족시켜준다. 부드러운 흙길인데다 경사도 완만하여 어린이나 노약자들도 그리 힘들지 않으리라.
동해남부선을 운행하는 무궁화호 열차라도 만나는 행운을 갖게 된다면 누구나 아득한 옛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동해남부선은 기장이나 좌천 지역의 아낙네들이 농수산물을 동래나 부전시장 등지에 내다팔 때 이용했으며, 중고등학생들의 통학열차이기도 했다. 복선전철화 사업이 완료되면 이 길로는 열차가 다니지 않는다니 아쉽다. 하지만 전국의 철도 8경 가운데 첫 손가락에 꼽히는 풍광은 여전하리라. 새로운 내용을 담아 부산의 명물, 명소가 되리라 기대한다.
전망대와 체육공원을 지나 만나는 갈림길, 왼쪽 어울광장까지는 문탠로드다. 달빛을 맞으며 걷는 길이라는 의미다. 해운대 저녁달은 볼수록 유정 터라고 할 정도로 대한팔경에 꼽혔으니 고개가 끄덕여지는 작명(作名)이다. 달이 가득차고 이지러지는 과정을 그려 넣은, 나즈막하면서도 은은한 조명등이 인상적인 산책로다. 산책객의 편의와 환경 보전을 함께 고려한 해운대구청의 노력이 돋보인다. 갈림길 오른쪽으로 얼마 가지 않으면 청사포다. 파란 자갈은 찾기 쉽지 않으나 빨간 등대 하얀 등대가 눈에 쏙 들어온다. 초등학생 시절 청사포 친구들은 책보따리를 허리에 질끈 동여매고 해운대초등학교까지 1시간 이상 걸어서 다녀야 했다. 포구 주변에 정박한 어선들이나 해녀들의 모습에서 어촌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을 뿐, 횟집 고깃집들이 속속 들어서 청사포도 관광지로 탈바꿈하는가 보다.
구덕포로 가는 길은 우리 국토의 소중함과 지난 시대의 아픔을 절감케 한다. 곳곳에 참호와 방호벽이 남아 있다. 젊은 날의 한 때를 이 곳에서 보냈던 우리 병사들은 갈매기 울음과 파도 소리를 들으며 어떤 상념에 잠겼을까. 세상이 바뀌면서 해안의 철책을 걷어내고 이 아름다운 절경이 시민 품으로 돌아온 게 아닌가. 삼포길이라는 이름도 그 때부터 생겨난 게 아닐까.
달맞이길 아래의 제법 높다란 숲길을 두어 바퀴 굽어 돌면 송정이다. 소나무 정자라는 송정(松亭), 참 예쁜 지명이다. 소나무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초고층 빌딩숲과 신도시로 변해가는 부산의 다른 해변들과는 달리, 송정은 때 묻지 않은 모습이다.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삼포길은 순례자의 길도 아니고, 모험가의 길도 아니다. 솔향기 맡고 파도 소리 들으며 그냥 걸으면 된다. 그러면 몸과 마음의 상처가 치유될 것이다.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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