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강을 거닐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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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광문화과 작성일 2009.12.29

오랜만에 강으로 갔다.
수영강을 옆에 두고 15년을 살았던 적이 있었다. 어느 해는 강물이 넘쳐 아파트의 1층 바닥까지 잠기면서 물난리를 당한 적이 있었다. 그날은 수영강을 몹시도 미워했다. 나무도 사람도 물이 있어야 살아간다는 것을 깜빡 잊고 한 말이었다.
천자만홍으로 물들은 봄날, 황혼녘에 수영강변을 걸었다. 저녁시간을 즐기려고 사람들이 모여든다. 달리기하는 사람, 연인들의 데이트, 갖가지 모습으로 비쳐진다. 강이 있어 여유로워 보였다.
수영강도 망국의 한, 가난한 지난 삶, 왜인의 찬탈, 임란의 곡나팔 소리, 장군의 순절을 알고나 있을지 모르겠다. 수영강은 1480년경에는 사천(絲川)으로 불렸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수와 영을 따와 수영)으로 불렀고 전국에 17개였는데 오로지 부산에 설치된 수영을 동네이름으로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물길따라 오르면 고려 문신 정서가 유배와서 머물었다는 정과정의 무대가 나온다. 다리위로 차량이 쉴새없이 다닌다. 다리를 쳐다보면서 오래전에 가보았던 파리의 세느강이 생각났다. 프랑스인의 예술의 도시, 관광의 도시로 가꾸려는 집념을 보았다. 장군동상, 여인상을 다리에 세워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우리도 볼거리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마을마다 박물관을 만들어 역사뿐만 아니라 삶을 윤택하게 할 수는 없을까?
머리 위로 동해남부선 열차가 철거덕 철거덕 거리며 건너간다. 차창으로 얼굴을 내밀고 수영강을 쳐다본다. 옛날을 회상하며 향수를 그리는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학창시절 3년간을 열차통학을 하였다. 그때는 항상 서서 다닐 만큼 붐볐는데 지나가는 열차는 텅텅 비었다. 오랜만에 손을 흔들어 보았다.
흘러가는 물이 말을 걸어온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말한다. 세상에서 물만큼 이로움이 어디 있느냐는 꾸중으로 들린다. 물이야말로 만물을 이롭게 하며 서로 다투지 않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머물기에 도(道)에 가깝다고 일찍이 노자는 말했다. 앞서지 않으며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는 것도 물한테 배우라고 가르쳤다.
노자 이전의 아득한 시대에는 강에서 문명이 발생하였다고 전한다. 인류문명 4대 발상지라고 하여 회자되고 있으나 오늘날 모두가 황폐일로에 처했다.
2년 전에 나일강을 찾아갔다. 노폐물 덩어리가 쌓여있고 메말라 있었다. 겨우 물길의 흔적만 보았다. 새삼스레 강의 보존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
만물에게 공평하게 생명력을 주어 조화를 맞추는 것도 강물이 하는 일이다. 지구촌에는 하루 5천명 영아가 목말라 사망하다는 보도를 읽었다. 동네 한 가운데로 강이 흐른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복받은 일인지 모르겠다.
사람도 악한 짓하면 악취를 풍기고 선한 일하면 향기가 오래가듯 말 못하는 강물을 함부로 대해서는 우리가 살 수 없다는 진리를 수영강변을 걸으면서 깨달았다. 자연이 편안하게 제 모습대로 유지하게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다는 넋두리를 한다.


/이태종
·<문학21> 수필 등단 ·<시와 수필> 시조 등단
·부산공고 교장 역임 ·현 동의과학대학 교수


2009/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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