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곤의 해운대 역사와 인물- 평생을 반송과 해운대 향토사에 바친 김병섭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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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통협력과 작성일 2020.05.18

반송동 운봉마을 출신
50년간 향토사 조사 몰두

사마천이 있었기에
2천 년 중국 역사 존재하듯

반송 이야기도
해운대 이야기도
그의 발품 덕에 전승되리라


2011년 3월 해운대구청 관광문화과가 펴낸 천년의 향기 해운대라는 책자를 2년가량 지나서야 처음 보게 되었다. 당시 구청장은 발간사에서 "향토사학자 김병섭 님을 비롯한 향토자원화사업 조사자님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고 언급했다. 이어 게재된 향토사학자 김병섭 본인이 쓴 책머리에서는 "사포지향(四抱之鄕) 해운대는 장구한 세월 전해진 이야기가 너무나 많은 보배로운 땅"이라며 "천년의 혼을 잇는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었다.
해운대의 역사 유적에서 시작하여 각종 시문(詩文)과 설화, 할머니가 들려주었을 것 같은 옛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450여 페이지 분량의 향토사 자료를 사실상 혼자 수집하고 분류하고 기록한 열정이 느껴졌다.
향토사학자 김병섭(金炳攝) 선생은 해운대에서도 오지였던 반송동 운봉(雲峰)마을 출신이다. 위로 누님을 네 분이나 둔 2남 4녀 집안의 장남, 어려서부터 사랑도 많이 받았고 그만큼 기대도 한 몸에 짊어졌을 것이다.
해발 454m인 동부산대학 뒷산 운봉산 8부 능선에 신라시대 창건한 운봉사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 후 폐사되었고 지금은 옥개석과 토기 등 절터의 흔적만 남아있다. 이 일대 자연마을이 경기도 광주(廣州) 김씨의 집성촌인 운봉마을이다. 본동마을, 신리마을과 함께 반송동에서 가장 오래된 자연마을이지만, 1914년 일제 강점기 행정구역 변경으로 기장군 상서면(지금의 철마면)에서 동래 반송리에 편입되었다. 1950∼6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 주민들은 장산의 소나무를 땔감용으로 벌채해 동래 5일장에서 팔아 주 수입원으로 삼았다고 한다.
하늘로 쭉쭉 뻗어 곧게 자란 금강소나무가 있듯이, 그릇에 담긴 듯 우산 모양으로 가지가 옆으로 처진 소나무가 반송(盤松)이다. 전국에 여섯 그루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그런데 반송동이 1968년 철거민 정책이주지역으로 선정되면서 조방과 수정동 고지대에서 5천여 세대가 반송1동 지역에, 1969년도 철도연변의 2천700세대가 반송2동 지역에 이주하였다. 그러다보니 반송동은 1980년 해운대구로 바뀌고, 2011년 3월 도시철도 4호선이 개통되어도 이주민 주거지역이라는 이미지가 계속 남아있었다.
1993년 해운대구청이 발간한 사진으로 보는 해운대 100년사를 보면 중장비로 허허벌판을 이주지역으로 조성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땅으로 땅으로만 자라던 반송의 겸손은/삼절사(三節祠) 처마 밑에 충절로 맺혔다… 해운대 장산문화원 박두길 원장의 시 반송연가의 첫 머리다. 겸손하면서도 충절을 지킨 역사의 고장이었음을 강조한 기념비가 세워졌을 정도다.
김병섭 선생에겐 어린 시절 눈이 내리면 토끼 잡으러 갔고 아래 반송 수무지천에서 물고기 잡던 추억과 봄이면 진달래꽃, 가을이면 단풍이 유난히 좋아 동쪽 앵림산 안적사로 소풍갔던 기억이 남아있는 장산이다. 마을 단체 나들이를 멀리 가도 회동수원지였던 운봉마을에서 자라나 눈만 뜨면 뛰어놀았던 장산이 곧 해운대였으며 자손 대대로 지켜야할 보배가 아닐 수 없었다.
반송동은 해운대 백사장과 약 20km 거리로 동래역에서 두 시간 기다려 기차를 타야할 정도로 대중교통이 불편해, 반송의 양(梁)씨 노인들은 해운대가 아닌 해운도(海雲島)라고 불렀다고 한다.
김 선생은 1970년부터 고향에 대한 자부심으로 향토사 조사를 시작했는데 1974년 육군 전역 후 1975년 공직에 입문하면서 사진 촬영과 자료 수집을 본격화하였다. 1999년 해운대구청 재산관리계장 재직 중 내 사랑 부산이야기 일반부 공모전에서 운봉산과 운봉마을 이야기가 부산시장상을 수상하게 되었고, 국책사업인 새주소 부여사업 심의위원으로 위촉되면서 향토지명을 고증하게 되었다. 각종 신문에 향토 변천사나 사진을 게재하였으며 해운대 내력을 홍보하게 되었다. 해운대역사관 전시 자료의 80%가량을 기증하게 되었고, 동래유림 자료도 해운대역사관 기증을 권장할 수 있었다.
그동안 장산의 역사와 전설 등 향토사 책자를 여러 권 펴냈다. 반송 향토지를 펴냈고, 송정 향토지를 감수하는 등 몇 편의 향토지에 자료를 제공하였다. 그리고 문중지인 석대동 창원 구씨 동래문중지, 반송의 남평 문씨 동래문중지, 운봉마을의 광주 김씨 동래문중지 등을 편수하였다.
1950년 출생했으니 우리 나이 일흔을 갓 넘겼다. 향토사학자로서 하고 싶은 일들이 적지 않다. 지명유래집과 문화유적 지도, 운봉산의 역사와 전설 책자, 최치원 선생 전국 유적 대관집, 그리고 금석문 기록과 구 승격 40년을 맞아 해운대구지 증보판을 내고 싶단다.
최근 반송, 반여지역이 개발제한구역에서 해제되었다고 하는데, 도시개발이라는 명분으로 훼손될까 우려하고 있다. 향토를 지켜온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자연재앙이 없도록 각별한 주의를 요망하고 있다.
사마천이 있었기에 중국의 고대 2천 년 역사가 존재하듯이 반송과 해운대의 이야기도 한 향토사학자의 발품 덕분에 전승되리라. 
/언론인

박병곤의 해운대 역사와 인물- 평생을 반송과 해운대 향토사에 바친 김병섭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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