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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운 이웃

봄이 오면 아버지의 난초는 꽃을 피우리라

정다운 이웃 게시물 상세 정보
작성자 소통협력과 작성일 2020.02.07

보건복지부 주최
치매안심센터 수기
전국 최우수 수상

"이거 내다 버려라. 다 죽은 걸 그대로 두는 게 아니다" 엄마가 역정이다. 베란다의 난 화분을 보고 하시는 말씀이다. 아버지가 계셨을 때는 잎이 진녹색으로 윤기가 흐르고 난 줄기가 힘이 있었다. 해마다 하얀 꽃이 피면 아버지는 지인을 초대해 꽃을 감상하고 묵화를 치셨다. 아버지가 가시고 언젠가부터 시들한 난 화분을 엄마는 유달리 싫어하신다.
엄마는 지난해 초봄, 치매 진단을 받았다. 엄마는 하루라도 행복한 기억이 있기나 할까? 매일을 과거 속에서 후회와 고통스런 기억을 찾아내고 당신의 죄 많음을 괴로워하며 되돌릴 수 없음에 절망한다.
엄마와 밥을 같이 먹고 아침에 햇볕을 쬐게 하고 몇 걸음 걷게 하는 것이 나의 큰 일과가 되었다. 엄마한테 무언가가 정말 무언가가 꼭 필요했다. 그러던 중 치매안심센터의 인지재활프로그램인 쉼터사업을 알게 됐다.
가지 않으려 하는 엄마를 설득하는 것이 큰 문제였다. 억지로 가다가 스트레스로 호흡이 나빠질까봐 두려웠고, 엄마가 신체적으로 견뎌낼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었다.
이런 불안을 가득 안고 9월 입학을 했다. 하루를 다녀오고 이틀째 가지 않으려 하는 엄마를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청력저하로 내가 옆에서 선생님의 말씀을 전달해 주기도 하고 나도 엄마 옆에서 어르신들과 같이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교구놀이도 하고 게임도 했다. 2주일이 지나면서 엄마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되었다.
어르신 한분 한분에게 이름을 불러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선생님들에게 마음을 여는 듯 했고, 수업 내용에도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학교에 늦으면 안 된다며 밤에는 주무시려 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신다.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문득 그렇게 엄마를 괴롭히던 불면과 호흡곤란의 악순환이 옅어져가고 있음을 느꼈다. 과거 이야기도 더 이상 하지 않고 어쩌다 말을 하면 담백하게 표현하신다. 모든 변화가 정말 감사하다.
인지기능이 약해져가고 신체도 나날이 힘이 빠져 가지만 그래도 삶과 이어진 끈을 꼭 잡고 있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학교에 오시는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그 노력에 눈물이 나고 존경스럽다.
어제는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초조하게 이 방 저 방 찾아도 안보여 덜컥 겁이 났다. 혹시 현관문을 열고 나갔을까 짧은 순간 온갖 상상을 하며 큰소리로 "엄마" 하고 한 번 더 부르자 베란다 장독 옆에서 "왜" 하는 대답이 들렸다. 베란다로 나가보니 엄마가 등을 돌리고 앉아서 아버지의 난 화분에 물을 주고 계셨다. "이게 꽃이 피면 하얗고 예쁘다"라고 하시며. 그러고 보니 착각인지 난 줄기의 색깔이 다소 짙어진 듯하다.
/이경애·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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