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상 오롯이 담아낸 레코드판 5천20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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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광문화과 작성일 2018.06.08

<박병곤의 해운대 이야기>


 


박명규 한국해양대 명예교수 
LP 수집, 대중가요 연구


가수 이미자 문주란 최진희
앨범 찾아내 세상에 알려


 


선박 설계 전문가인 공학박사가 레코드판을 수집하고 대중가요 논문을 발표했다니, 어찌된 영문인가. 해운대가 고향이지만 도시철도 중동역 주변은 상전이 벽해가 된 듯 눈부시게 바뀌었다. 박명규 한국해양대 명예교수 댁을 어렵사리 찾아갔는데, 박 교수는 이웃집 아저씨처럼 편안하게 맞아주었다.
서재엔 조그만 책상 위에 선박 설계 도면이 놓여있고 책장엔 서적과 빛바랜 레코드판이 가득 들어찼다. 아버님 유품인 레코드판 수 백 장이 창고에 있었는데 1999년 폐기하려고 정리하다가 마도로스 모자와 선박 사진이 담긴 재킷을 보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공학자로서 외항선원들의 삶과 정서에 호기심을 가진 건 당연한 일, 하지만 현직에 있을 땐 짬을 내기 어려웠다. 저녁마다 노래를 듣고 가사를 정리하며, 궁금한 사항은 작사가나 작곡가에게 물어보았다. 2001년 부산일보 이진두 기자의 권유로 대중가요 관련 첫 논문 해양 마케팅의 마도로스 대중가요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발표했다. 신문 한 페이지에 대문짝만 하게 보도됐다. 박지원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만났더니 세종문화상 감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KBS TV 6시 내 고향과 아침 마당에도 출연했다.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니 MBC, KNN 등 방송국이나 신문사에서 박 교수를 그냥 놓아두질 않았다.
그 후 안상영 부산시장으로부터 영도대교를 보존해야 하는지 연구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공학적으로 100년은 더 사용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안 시장은 더 오래 보존할 수 있도록 노래 책자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그래서 부산항 관련 해양 대중가요 역사적 고취-영도대교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이 나왔다. 영도대교는 1934년 준공됐지만 1953년 발표된 현인 선생의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로 널리 알려졌다. 흥남부두나 1.4 후퇴, 영도다리, 국제시장 등 시대상을 담은 노랫말로 실향민은 물론 전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그런데 왜 하필 금순이였을까. 박 교수는 작사가 강사랑 선생에게 물었다. 부산시청 옆 항구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때마침 지나가던 통통배 이름이 금순호였다는 것이다. 서구, 중구, 동구, 영도구의 호적과 전화번호부를 뒤지고 선급협회에 문의해 금순호가 있었음을 확인했다. 영도 지역의 노인들에게 수소문한 결과 대평동에 거주하는 조금순이라는 연세가 아흔된 할머니를 찾았다. 아버지가 딸 이름을 따와 선박 명칭에 붙였던 것이다. 대평동은 일명 깡깡이 마을이라고 불리지만, 우리 조선업의 고향과 같은 곳. 영도구청과 협의 끝에 영도대교에 현인 선생 동상과 노래비가 세워졌다. 동아일보에 크게 보도됐다.
박 교수는 또 희생자가 50명 이상이었던 대형 해난사고와 관련된 노래를 찾았다. 한일호, 서해페리호 등 관련 가요를 찾아내고 해난심판원의 자료와 선박 도면을 구해 그 배들이 왜 전복됐는지 연구했다. 하와이, 멕시코, 브라질로 떠난 이민선(移民船) 가요도 찾았다. 남일해 씨가 부른 향수의 브라질이나 남상규 씨가 노래한 브라질 이민선 등이다. 브라질로 간 배는 네덜란드 소유 치차랭카호이며, 1903년 하와이로 간 선박은 갤릭호라고 밝혀냈다. CBS 방송 이민선 추석 특집에 출연했다. 최근에는 부관연락선 관련 대중가요와 어부나 해녀의 애환이 담긴 노래를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2013년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연구 중 미국인 동료의 집에서 이미자 씨의 앨범 섬색씨를 찾아내 작곡가 백영호 씨의 기념관에 기증했고, 부산 출신 문주란 씨의 첫 앨범 크리스틴 킬러도 발굴했다. 최진희 씨가 여고생 때 펴낸 첫 앨범 소원과 한때 무기 로비스트였던 린다 김 씨가 김아영 이라는 이름으로 취입한 깊은 정 앨범도 세상에 알렸다.
동구 좌천동 토박이였던 박 교수는 2013년 해운대 사람이 되었다. 해운대 노래를 정리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앞으로 해운대신문에 연재할 예정이란다. 그러면서 신가야 씨가 부른 해운대야 말해다오 앨범을 꺼내 노래를 들려준다. 해운대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필자도 처음 듣는 곡이다.
파리의 작은 참새라고 불리었던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는 이탈리아에서 이민온 부두 노동자 이브 몽탕과의 사랑과 이별을 장미빛 인생에 담았고, 비행기 추락 사고로 숨진 복싱 세계 미들급 챔피언 마르셀 세르당과의 만남과 그리움을 사랑의 찬가로 남겼다. 사연 없는 삶과 노래가 어디 있으랴.
가수 양희은 씨가 노랫말을 쓰고 직접 부른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의 한 구절처럼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번/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 그렇지, 고향, 어머니, 사랑, 이별, 그리움을 담은 대중가요도 그 시대상을 그려냈고, 세월이 흐르면 사료(史料)가 되는 것. 박 교수가 애써 수집한 LP판 5천200장으로 박물관 하나 만들 가치가 있지 않을까.


언론인


시대상 오롯이 담아낸 레코드판 5천20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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