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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운 이웃

독자투고시절 - 어디 갔을까

정다운 이웃 게시물 상세 정보
작성자 소통협력과 작성일 2019.09.16

추운 겨울의 끝 2월이었다. 막 둘째 딸을 낳고 시댁에서 몸조리를 하였다. 한창 젊은 혈기에 사업을 하던 남편의 사업이 끝도 없이 내리막을 쳤다. 그래서 서른 하나의 나는 절망이 우물처럼 깊고 영문 모를 분노가 용암처럼 끓어오르던 시간이었다.
시댁에서 아이를 낳았지만 함께 살 형편도 못되어 어딘가 거처를 옮겨야만 했다. 답답한 맘에 잠시 밖을 나와 보니 담장 넘어 따뜻하게 비치던 불빛과 소담스럽게 밥을 먹던 그 이웃이 어찌나 부럽던지, 스무 해가 훌쩍 지났지만 어제 일처럼 나를 슬프게 한다. 그러고 나서 자리 잡은 동네가 반송동이다.
소나무 중 키가 작고 가지가 가로로 뻗어서 우산처럼 다복하여 옆으로 퍼진 모양을 하고 있는 종자를 반송이라 한다. 그런 반송이 많이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했다. 야트막한 산동네로 오르는 꼬불꼬불한 길이 뱀처럼 숨어 있는 비탈진 막다른 골목 안쪽의 단칸방을 얻어 살림을 풀었다.
그 시절 나는 골목시장 가는 걸 좋아했다. 특별히 사고 싶은 것이 없어도 그냥 둘러보았다. 두어 달 된 아이를 업고 세 살 된 아이는 치마꼬리를 잡고는 징징거리며 따라다녔다.
붉은 다라이에 담긴 기다란 순대를 썸벙썸벙 썰어 주시던 인심 좋으신 아주머니, 고등어 오징어 조갯살 등 비린내가 진동했던 생선가게, 아침에 갓 따온 상추 호박 고추의 싱싱한 냄새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웃에는 고물을 모으시는 아저씨께서 살고 계셨는데 오래된 냉장고 티브이 그릇 시계 등 보물찾기를 하는 듯하여 잠시나마 현실의 불안함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어느 날 빨간 테두리가 있는 벽시계를 3천 원을 주고 샀다. 그 벽시계는 가난한 생활 속에 시간을 알뜰하게 살게 해주었으며 항상 나를 뒤돌아보게 해주었다. 지난 세월동안 여러 번 이사를 했지만 짐 보따리에 꾸역꾸역 끼워 넣어 가져다녔다. 남편은 버리라 하지만 건전지만 일 년에 한 번씩 갈아주면 정확한 시간을 가리켜주는 가장 성실한 가족이었다. 이사한 집 거실 벽 가운데 걸어 놓고 아이들에게 시계의 역사를 들려주곤 했다. 어려웠던 그 순간들을 잊지 않게 해서 나를 겸손하게 해주는 고마운 시계이기 때문이다.
만물은 모두 제 나름의 시간을 살고 있는 시계인 듯하다. 그래서 꽃은 때가 되면 저 혼자 꽃대를 밀어 올려 잎을 벙글고 때가 되면 몸을 활짝 열어 꽃을 피우고 때가 되면 잎을 떨어뜨리고 때가 되면 아래로 떨어진다. 꽃은 그 자체가 우주인 것이다. 위태로운 시간이 꽃의 우주에 비구름이 되고 바람이 되어 스쳐 지나가더라도 꽃은 자기의 명분을 다하고 떨어진다. 이렇게 꽃이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듯 이 모든 존재는 자신이 치루어 낸 시간만큼 성숙해지고 깊어지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다.
언젠가 지나가버린 버스가 원망스러워 버스 정류장 평상 끝에 묻어 있는 햇살에게 괜히 말을 던져보았다.
"조금만 기다려 주지? 그러면 금방 꽃과 같은 엄마 품으로 갈 수 있었을 텐데"
잃어버린 시간과 상실한 내 마음의 그림자를 자연의 섭리로 위로를 해보지만 낮에 뜬 낮달의 허무함을 누구에게 말해 볼거냐,
모두 어디 갔을까?
귓속에서 바람소리 난다고 하시던 어머니, 치마꼬리 잡고 칭얼거리던 계집아이, 비린내 풍기던 예전의 어물전, 옛날의 그 냄새와 모습이 보고 싶어 시장 골목을 몇 바퀴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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