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작품 빛나게 하는 아름다운 조연 <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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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광문화과 작성일 2017.09.06

박병곤의 해운대 이야기


액자, 단순 그림 도구 아니라
작가의 마음을 읽는 창


박춘수 부산액자 대표
부산 유일 장인(匠人)이자
부산 화단 든든한 버팀목



부산공간화랑 대표 신옥진 화백과 동길산 시인의 소개로 송정 구덕포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그를 만났다. 키는 작으나 다부진 몸매, 투박한 손, 억센 남도 사투리에서 평생 외길을 달려온 장인의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부산액자 대표 박춘수 씨(62). 시원한 바다바람이 불어오는 바깥과는 달리 실내는 약간 무더웠다. 그의 승합차를 타고 새로 지은 송정역 건너편 작업장이자 사무실로 이동했다.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16세 때 부산으로 왔다. 당시 공예사라고 불리던 액자 공방에서 2년 동안 일하다가 대구로 옮겨가 1년, 최고의 기술자가 되겠다는 결심으로 서울에서 3년을 남의 공방에서 일하며 배웠다. 당시만 해도 액자 수출 공장이 답십리, 개봉동 일대에 3∼4곳 있었다고 한다. 기술은 늘었으나 월급을 제대로 못 받는 바람에 낙향하여 농사를 지었다. 6년 동안 남의 밑에서 배운 게 액자 조각이니 이 길로 계속 갈 수밖에. 다시 부산 문현동 공방에 취업하였다. 40대에 접어들면서 독립하기 위해 김해에 공방을 지을 땅을 매입하였으나 IMF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실패하고 말았다. 그 무렵 신옥진 대표를 만나 일감이 늘어나게 되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었다. 망미동에서 15년, 송정으로 옮긴지 2년. 나무에 사포질을 해야 하므로 목재가루가 날리고 화공약품 신나 냄새 때문에 민원 발생 우려가 높아 변두리로 이전할 수밖에 없는 처지란다.
박 대표가 제작하는 액자는 요즘 많이 나오는 기계로 짜 맞춘 제품과는 달리 모든 과정이 수작업이다. 심목이라고 불리는 나왕나무, 마티카를 톱으로 자르고, 사포질을 하며, 아교나 호분가루를 12차례나 칠한다. 때로는 은박이나 금박을 붙인다. 그리고 밑그림을 그리지 않고 머릿속에 구상해두었던 장미나 무궁화 같은 온갖 문양을 조각한다. 유럽에서 출간된 서적을 보고 여러 가지 기법들을 배운 덕분이다. 기계로 만든 액자에 비해 비싸고 작업과정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조각 액자 공방은 찾기 쉽지 않다. 서양화의 주류가 구상 계열에서 추상 계열 작품으로 바뀐 것도 한 원인이다. 부산에서는 박 대표가 유일한 장인이며, 대구에 한 곳, 서울에 3∼4곳이 남아있을 뿐이다. 톱이나 조각칼을 이용해야 하므로 손을 자주 다친다. 그러니 기술을 전수받으려는 젊은이가 드물다. 예전엔 직원을 9∼10명까지 채용했으나 지금은 박 대표 혼자 외롭게 작업한다. 은행 지점장 출신인 미술품 수집가가 취미삼아 한동안 배웠을 뿐이다.
지난 46년 동안 얼마나 제작했느냐고 물었다.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수천 점은 될 것입니다. 과거에는 화랑, 미술학원, 화가, 수집가로부터 의뢰가 들어왔는데 요즘은 일부 화가와 화랑 정도 뿐이란다. 액자 주문을 많이 했던 작가로는 송혜수, 한상돈, 김원, 추연근 화백 등이라고 한다. 부산 화랑계의 대부라고 일컬어지며 시립미술관과 박물관에 많은 작품을 기증했던 신옥진 대표는 부산 미단의 수준을 유지하는데 박 대표가 큰 도움이 되었다며 나는 없어도 되지만 부산액자가 없으면 안된다고 극찬하였다.
박 대표는 미국 뉴욕에서 30년 동안 액자 전문가로 활동해온 파슨스 디자인 스쿨의 W H 베일리가 펴낸 그림보다 액자가 좋다는 책을 보여주었다. 베일리는 액자가 그림을 걸기 위한 단순한 도구나 장식물이 아니라 작가의 마음을 읽는 창이라고 주장했다. 액자는 작가와 관람자, 또는 수집가 사이의 중재자라는 논리다. 액자가 너무 튀어서도 곤란하지만 작가의 의도에서 벗어나서도 아니 된다는 얘기다. 작품이 주연이라면 액자는 조연, 그것도 아름다운 조연이라는 말이다. 그런 까닭에 화가가 직접 액자를 설계하거나 캔버스에 액자를 그려 넣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한다.
앞으로의 꿈이 무엇이냐고 박 대표에게 물었다.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다양한 액자 기법 변천사를 보여줄 전시회를 열고 싶다며 주변의 여러분들이 요청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액자 전시회가 열린다면 조연에서 주연으로 승격하는 셈이다. 미술품 수집가인 한 고객이 찾아왔다. 가족사진을 넣을 금박 액자를 서둘러 만들어달라고 주문한다. 송정 대로변의 목공소 같고 창고처럼 보이던 그 곳이 부산 화단을 뒷받침해주는 예술 창작공간일 줄이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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