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서는 안 될 막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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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광문화과 작성일 2017.09.06

고전산책


해서는 안 될 막말


한 가지 뜻대로 되지 않은 일로 인하여
격노하여 불평하며 대뜸 내뱉어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내가 죽어야지, 저 놈은 죽어야 돼,
세상이 뒤집어져라, 나라가 망해라, 거지로 빌어먹어라 따위이다.


不可因一不如意事, 激怒不平, 輒出了語.
불가인일불여의사  격노불평  첩출료어


如我當死, 人可殺, 天地崩坼, 家國敗亡, 流離乞 之類.
여아당사  인가살  천지붕탁  가국패망  유리걸개지류


- 이덕무(李德懋, 1741~1793), <청장관전서(靑莊 全書)> 권28
  사소절(士小節) 1, 언어(言語)


뜨끔하지 않은가? 혹시 오늘 아침에도 혼자 내뱉은 말이 아닌가? 이덕무가 살았던 조선 후기나 지금이나, 세상은 늘 이 망할! 곳이었나보다. 게다가 이덕무는 자신이 서자가 아니라 아버지가 서자인 이유로 신분적 제약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장부라도 들춰볼 정도로 책벌레였다. 시를 지어오라는 임금의 명에 두 번 다 장원을 차지할 정도로 능력자였으나 크게 출세할 수는 없었다. 차라리 본인이 서자였으면 덜 억울할 듯하다. 하여, 이렇게 생각해 본다. 이덕무, 이 사람도 얼마나 이런 막말을 내뱉고 싶었을까!
 
하지만 이덕무의 글에서 이런 분노는 보이지 않는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바로 이덕무일 것이다. 그는 가난하지만 온화한 가정에서 자랐다. 이덕무 본인도 체질이 연약하고 드센 사람이 아니었다. 처음 본 바다에서 파도에 섬이 쓸려 나갈까봐 너무 걱정하는 바람에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성격을 바꾸려고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매사에 아이와 처녀가 조심하듯 살겠다는 뜻으로 호를 영처(?處)라 지었다. 서자 집안이라 출세할 야망을 품을 수도 없었고, 기질적으로도 대범하지 못했던 사람. 그래서 그가 바랐던 삶은 가난하지만 구차하지 않은, 고귀하고 명예로운 삶이었다.
 
사소절(士小節)은 이런 삶의 지침서였다. 말솜씨나 몸가짐부터 집안의 대소사를 처리하는 법에 이르기까지 우아한 선비의 일상을 유지하는 소소한 예절을 기록했다. 예를 들어 상추 쌈을 입에 넣을 수 없을 만큼 크게 싸서 먹으면 부인의 태도가 매우 아름답지 못하니, 경계하고 경계해야 한다(?包飯 口不能容 大是婦儀之不典 戒之戒之)거나, 거처하는 집이 이웃에 닿아 있거나 한길에 접해 있으면 웃음소리와 성내는 소리를 크게 해서는 안 된다(所居接比隣而臨大路 嬉笑怒罵 不敢高聲) 라는 식으로 정말 시시콜콜한 것까지 신경 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절제된 생활은 허례허식이나 위선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만의 미덕(美德)을 갈고 닦으려는 것이었다. 이덕무는 인간의 고귀함이 빈부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 우아함은 타고난 신분이 증명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절차탁마(切磋琢磨)하여 만들어가는 것임을 보여주었다.
 
이익을 추구하는 방법은 차고 넘치도록 가르치는 이 시대에, 미덕이라는 말은 참 생소하다. 그래서 이덕무의 소소한 예절이 오히려 소중하게 느껴진다. 함부로 말하는 인간은 막 돼먹은 인간일 뿐이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고귀한 인간을 생각해 본다. 오늘 아침에도 내뱉은 말을 얼른 주워 담고 싶어진다.
 한국고전번역원(www.itkc.or.kr)


/신부순, 구리여고 교사
한국고전종합DB 활용 공모전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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